시인 김광섭[오후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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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로 각별한 우정을 나눈 인물로는, 시인 이산(怡山) 김광섭(1904∼1977)과 화가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도 대표적이다.
1966년 어느 날의 김환기는 편지에서, 김광섭 시집을 내겠다는 출판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썼다.
1970년 느닷없는 '김광섭 별세' 비보(悲報)를 접한 김환기는 고국의 그리운 대상들을 떠올리며 찍은 검푸른 점들로 화폭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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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로 각별한 우정을 나눈 인물로는, 시인 이산(怡山) 김광섭(1904∼1977)과 화가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도 대표적이다. 1960년대 초에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이웃해 살았다. 김환기가 미국 뉴욕에서 외롭게 지내던 시기에는 편지를 통해 교유했다. 1966년 어느 날의 김환기는 편지에서, 김광섭 시집을 내겠다는 출판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썼다. ‘원색 석판화를 넣어 호화판 시집을 제가 다시 꾸며 보겠어요. 한 권에 3만 원짜리를 내야겠어요. 되도록이면 비싸서 안 팔리는 책을 내고 싶어요. 이런 게 미운 세상에 복수가 될까.’
김광섭은 시 ‘저녁에’를 잡지 ‘월간중앙’ 1969년 11월호에 발표한 뒤, 편지에 적어 보내기도 했다. 김환기가 창출한 전면점화(全面點畵) 걸작 중 하나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을 제목으로 삼았다. 1970년 느닷없는 ‘김광섭 별세’ 비보(悲報)를 접한 김환기는 고국의 그리운 대상들을 떠올리며 찍은 검푸른 점들로 화폭을 가득 채웠다. 비보는 오보였지만, 그 그림은 서울로 보내져 한국미술대상을 받고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일제강점기에 교직에서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했다고 해서 3년 8개월 옥고(獄苦)를 치른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김광섭의 명시는 ‘성북동 비둘기’‘겨울 산’ ‘산’ ‘소일(消日)’ ‘새 얼굴’ ‘생의 감각’ 등 많다. ‘반만년의 역사가 혹은 바다가 되고 혹은 시내가 되어/ 모진 바위에 부딪혀 지하로 숨어들지라도/ 이는 나의 가슴에서 피가 되고 맥이 되는 생명일지니’ 하는 시 ‘나의 사랑하는 나라’도 있다. 시 ‘마음’에선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도 그림자 지는 곳’ 한다.
그의 탄생 연도는 1905년 등으로 표기되기도 하지만,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04년으로 기록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가 탄생 120주년이어서, 그의 시들을 다시 찾아 읽게도 한다. ‘저녁에’는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하고 시작해,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하고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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