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법원, ‘헝다’에 청산 명령... 443조원 빚잔치 돌입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4. 1. 2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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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부채, 계획된 청산”
파산 위기에 놓인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이 지은 베이징의 한 아파트 단지. /로이터 연합뉴스

홍콩고등법원이 29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빚을 진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 헝다(恒大·영문명 에버그란데)그룹에 청산을 명령했다. 부동산 시장이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초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가 망하도록 정부가 방치하겠느냐는 ‘대마불사(大馬不死)’ 논리를 깨고 헝다에 사실상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린다 챈 홍콩고등법원 판사는 이날 오전 헝다에 청산 명령을 내리면서 “구조 조정 계획을 제시하는 데 명백한 진전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법원이 회사에 해산 명령을 내리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했다. 홍콩고등법원의 이 같은 결정은 2022년 6월 채권자 가운데 하나인 사모아 톱샤인사(社)가 법원에 “헝다를 청산해 달라”고 청구한 지 1년 6개월여 만이다. 1996년 설립된 헝다가 30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빚잔치 수순을 밟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증권시보는 “홍콩 증권시장이 사상 최대 수준의 부동산 기업 파산 사태를 맞이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2017년 한때 주당 31홍콩달러를 넘어섰던 헝다 주식은 법원 명령 직후 주당 0.16홍콩달러(약 27원)로 거래가 중단됐다.

홍콩고등법원의 청산 명령에 따라 향후 헝다의 자산을 현금화하는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샤오언 헝다그룹 CEO(최고경영자)는 법원 결정 직후 “법에 따라 관련 절차를 이행하겠다”고 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은 헝다 자산 대부분을 관할하는 중국 본토 법원이 홍콩고등법원의 청산 결정에 일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보도했지만, 중국 현지에서는 홍콩고등법원 판결로 청산 결정이 사실상 마무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정인성

헝다는 중국의 개발 붐을 타고 한때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 업체로 급성장했다. 전기차·생수·테마파크 업종까지 문어발 확장을 일삼으며 몸집을 키웠지만, 지난 2021년 과도한 기업 부채를 우려한 중국 정부가 대출을 죄자 그해 말 해외 채권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며 중국 부동산 위기에 불을 붙였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헝다의 자산은 1조7440억위안(약 323조9000억원)인 반면, 부채는 2조3882억위안(약 443조6000억원)에 달한다.

중국의 부동산 위기가 2년 넘게 이어진 가운데 뒤늦은 청산 결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사모아 톱샤인의 청산 청구 이후 법원은 “헝다와 채권단이 구조 조정안에 합의하는 것이 원금 회수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무려 7차례나 심리일을 연기했다. 2017년 헝다를 제치고 중국 부동산 1위에 올라선 비구이위안(영문명 컨트리가든)마저 디폴트를 선언하며 시장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금융 위기로도 번진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중국 당국의 ‘계획된 청산’ 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장정석 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장은 “회생 불능 상태에 놓여 있던 헝다를 중국 정부가 2년 이상 생명 연장하다가 시장에 미칠 영향이 최소화된 시점에 사태의 매듭을 짓는 것”이라며 “지난해 중국 경제 실적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올해 초에 청산 명령을 내린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헝다에서 ‘인공호흡기’를 떼고 비구이위안 등 다른 부동산 기업과 금융시장 안정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25일 중국인민은행(중앙은행)은 은행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낮추는 유동성 확대 방안을 냈다. 또 중국 금융 당국은 29일부터 주식 대여를 제한, 공매도에 제동을 걸어 증시를 부양하겠다고 했다. 법원의 청산 명령에도 홍콩 증시는 비교적 안정세를 보였다. 이날 홍콩 증시에서 항셍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6%, 홍콩H지수는 0.5% 상승했다.

서방 투자자와 언론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헝다의 중국 내 자산이 중국 채권자의 빚을 갚는 데 먼저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영국 법무법인 프레시필즈의 한 구조 조정 전문가는 NYT에 “외부에선 헝다 청산 과정에서 채권자 권리가 존중되고 있는지 지켜볼 것이고, 이는 대(對)중국 투자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헝다는 디폴트에 직면한 이후로 수십만 채 주택 공사를 중단했고, 수천 개의 하청 업체에도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정부가 국영 기업들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헝다 청산 과정에 개입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쉬자인 헝다 창업주가 지난해 9월 구속된 이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라, 향후 청산 작업은 남은 헝다 경영진과 중국 당국 몫이다.

29일 홍콩 시민들이 홍콩고등법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날 홍콩고등법원은 빚더미에 앉은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에 청산을 명령했다./로이터 연합뉴스

한편 헝다가 본격 청산 절차에 돌입하면 단기간에 중국 부동산·금융 시장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충격이 가해질 전망이다. 헝다는 디폴트에 직면한 이후로 수십만 채 주택 공사를 중단했고, 수천 개의 하청 업체에도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정부가 국영 기업들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헝다 청산 과정에 개입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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