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우울한 나라” 원인은 합숙·경쟁·유교…미 유명작가 ‘진단’

정인선 기자 2024. 1. 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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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작가 겸 유튜버 마크 맨슨이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로 규정하고 그 원인을 찾아 나가는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해 화제다. 마크 맨슨 유튜브 채널 갈무리

책 ‘신경 끄기의 기술’로 국내에도 유명한 미국의 작가 겸 유튜버 마크 맨슨이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로 규정한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급속 성장에 대한 압박과 그로 인한 사회구조적 병폐”가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다고 짚었다.

맨슨은 지난 2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를 여행하다’라는 제목의 24분 분량 영상에서 “한국에 닥친 정신 건강 위기를 이해하려면 1990년대에 유독 한국에서 인기를 끈 스타크래프트에서 출발해야 한다”면서 “열댓명의 프로 이(e)스포츠 선수가 합숙하며 스스로를 갈아 넣고 서로를 독려하는 방식의 ‘성공공식’이 케이(K)팝, 스포츠,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 등 여러 산업 분야에 복제됐다”고 분석했다. 한국 사회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혹독한 훈련과 경쟁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스타 크래프트’의 성공 공식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은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연습생들이 합숙을 하며 케이팝 스타로 성장하고, 스포츠 선수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길러진다”고 분석했다. 이어 “심지어 삼성도 기숙사와 교통수단, 병원 등 네트워크를 (사옥에) 모두 갖춰, 직원들이 말 그대로 직장을 떠날 필요가 없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맨슨은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들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걸 뽑아내기 위해 강력한 사회적 압력과 경쟁을 도입했다”면서 “이 공식은 효과적인 동시에 ‘심리적 탈진’을 유발했다”고 짚었다.

마크 맨슨(왼쪽)이 심리학자 겸 작가 이서현 씨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마크 맨슨 유튜브 채널 갈무리

맨슨은 한국에 뿌리내린 경쟁지상주의와 성과지상주의의 배경에는 북한과의 오랜 갈등이라는 역사적 경험이 있다고 짚었다. 그는 “한국이 20세기에 이룬 경제적 기적은 야심이나 선택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면서, “인구의 15%가 사망한 끔찍한 전쟁을 겪은 한국은 북한의 위협 아래 최대한 빨리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됐고, 정부가 이를 위해 도입한 가혹한 교육 시스템이 젊은이들에게 큰 부담을 안겼다”고 분석했다.

이어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만 남은 유교 문화가 뿌리 깊은 것도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을 심화했다”고 진단하며 개인의 실패가 집단의 수치와 직결되는 분위기, 상사가 집에 간 뒤에야 퇴근할 수 있는 직장 문화 등을 예로 들었다. 맨슨은 “한국인은 유교적 기준에 따라 끊임없이 평가받는데, 문제는 그런 가운데 개인적 성과를 내라는 압박까지 받는다는 것”이라며, “한국은 불행히도 유교의 가장 나쁜 부분은 남겨둔 채 가장 좋은 부분인 가족·지역사회와 친밀감은 버린 듯하다”고 했다.

마크 맨슨은 한국인들이 우울함을 느끼는 배경을 신체 건강, 스트레스, 사회적 고립 및 외로움, 수치심 등에서 찾았다. 마크 맨슨 유튜브 채널 갈무리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 사회가 이러한 문제를 결국 해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회복력을 갖췄다”면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들여다보면 어떤 어려움과 도전에 처하든 항상 길을 찾아 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이 지닌 강력한 힘(super power)일 수 있다. 새로운 실존적 도전에 당면한 한국인들이 또다시 길을 찾을 거라 믿는다”고 했다.

이 영상은 29일 아침 10시30분까지 63만회 넘게 조회됐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누리꾼들은 그의 유튜브 채널에 저마다의 경험을 담은 댓글을 남기며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맨슨의 진단에 공감한다며 “한국 사회 젊은이들이 부모와 사회, 언론이 가하는 압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또다른 누리꾼은 “한국인 아내 및 그의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서 살고 있는 브라질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우리 부부가 밤 9∼10시쯤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오면 같은 건물 위층의 학원에 아이들이 그 시간까지 머문다. 아이들이 10대가 될 때까지 놀이를 즐기거나 어떠한 스포츠 활동도 하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슬프다”고 했다. 스스로 “대학 졸업 후 북미 지역으로 이민 온 한국인”이라고 소개한 한 누리꾼은 “덕분에 내가 다른 대륙에서조차 ‘한국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정신 건강을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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