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내 마음대로 소비한다…내가 소비되지 않으려
#1층 익스클루시브 지킬 앤 하이드
“다들 엠제트(MZ)세대 하면 인스타, 더현대 그런 말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MZ세대가 아닌 것 같아.” 요즘 MZ세대(1980~2010년 출생자)에게 ‘더현대 서울’(이하 더현대)이 유행이라는 이야기에 대학생 김희선씨가 한 말이다.
2021년 9월 서울 여의도에 문을 연 복합쇼핑몰 더현대는 ‘MZ 랜드마크’로 불린다. 방문객 비율(2년간 방문객 8천만 명 가운데 30대 이하 방문객은 5200만 명·현대백화점 2023년 2월24일 발표)이나 화제성에서 20·30대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 인터뷰이 14명 중 8명은 더현대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 가보지 않았다. 경험한 사람 중에서도 희선씨 친구들은 “막상 할 게 없었다”고 했고, 박미리씨처럼 예쁜 공간을 좋아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자주 하는데도 “개장 전 한 번 가보고 이후로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는 청년도 있다.
‘MZ 랜드마크’라지만 그 열광이 동일할 수 없다. 그 열광의 실체가 수수께끼인 것은 MZ 소비의 특징이다. 한 사람 안에서도 ‘지킬 앤 하이드’처럼 각자의 개성과 주관에 따라 쓸 곳과 아낄 곳이 다르다. ‘앰비슈머’(Ambisumer·양면적 소비자)라는 말이 이를 압축한다.
자취하며 드라마피디로 취업을 준비하는 이필헌씨는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 집에서 옷을 껴입으며 버티”지만, 축구 유니폼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당연히 구매하는, 내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유니폼 상의를 풀마킹(선수 이름과 번호·구단 앰블럼 등을 기재)으로 사는데, 배송비를 포함해 18만원 정도 한다. 시즌 때는 비싸, 몇 개월 지나 사이트에서 할인할 때 주로 사는데 가격이 12만~13만원이다. 자신에게 “꿈을 준 아티스트” 가수 윤하의 콘서트는 “해이해졌을 때 스스로 다잡고 때로 위로도 받는 그런 의미의 투자”라서 다섯 번을 다녀왔다.
세종시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디자인 분야로 취업을 준비하는 서희원씨는 기차역에서 학교까지 20분 걸리는 거리를 걸어다닌다. 식당 대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컵라면을 주로 사먹는다. 하지만 아이돌그룹 앨범과 굿즈는 꼭 산다. “아이돌을 지원하는 일”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화장품을 사서 자신을 꾸민다. “내 모습, 자기관리를 위해 투자한다. 사람들이 날 봤을 때 부끄럽지 않고 싶은 것도 크고. 내가 나를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어야 한다고도 스스로 생각한다. 그 자체가 나에겐 자존감이다.”
청년들도 불황을, 일상의 질을 축소하며 견디고 비일상에서 숨통을 틔울 때 소비에 투자하는 것으로 삶을 타협해가고 있었다. ‘아수라 청년’은 그런 타협에서 나타나게 된 이미지다.
#지하 2층: 팝업, 꿈의 안식처
특유의 ‘병맛 감성’ 캐릭터에 매료된 이승연씨는 2023년 여름에 세워진 팝업스토어(사람들이 붐비는 장소에 신상품 등 특정 제품을 일정 기간만 판매하고 사라지는 매장)에 들러 몇십만원의 굿즈를 샀다. “이것저것 많이 샀다. 이 캐릭터 굿즈가 나한텐 명품이다. 휴대전화 요금제를 무제한에서 제일 저렴한 요금제로 바꾸고, 겨울에 난방비 아끼려고 씻을 때만 틀고 보일러를 안 튼다.” “몸에 열도 많고 집도 남향이라서 (보일러를) 안 틀고 버티려”는 그에게 이 캐릭터는 “평소 아껴서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같은 느낌이다”.
더현대는 청년들의 스트레스 해소처다. 꿈이자 위안이 되는 ‘비일상’이 나열된 공간이다. 더현대를 유명하게 한 팝업스토어에는 그것이 압축됐다. 더현대는 보통 2~3주 단위로 팝업스토어를 열고 닫는다. 아이돌이나 <슬램덩크> 등 온갖 ‘덕질’을 할 이벤트, 인플루언서의 방문 등 새롭고 독특한 체험거리가 열린다.
경기도민인 대학생 전예현씨는 더현대의 재미가 서울 성수동과 유사하다고 표현했다. “예전 핫플레이스였던 서울 신사동의 가로수길은 한 번 갔다오면 두 번, 세 번 거길 갈 이유가 없었는데, 성수동은 가도 가도 매번 다른 느낌이니 오히려 그 동네가 더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유잼’에는 추가 금액이 얹어져 있다. 예현씨는 음료 팝업스토어에서 “사진을 올려야만 도장을 찍어주고, 그래야 경품을 받을 수 있어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기도 했지만, 대기업 정규직인 김진영씨(25·가명)는 “팝업스토어에 가서 무료 굿즈를 얻거나 체험하려면 대체로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하는데, 그
정보가 어떻게 이용될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팝업스토어는 상품장사가 아니라 ‘광고장사’다.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수석부장은 소비문화를 다루는 한 유튜브 채널에 나와 “(요즘) 온라인(광고)이 고비용 구조라 오프라인 광고보다 비용이 더 올라간 상황이다. 팔로어를 많이 가진 인플루언서를 부르려면 웬만한 연예인보다 ‘따따블’ 비싸다”며 팝업스토어의
효과를 이렇게 말했다. 해당 프로그램 진행자는 말했다. “줄 서 있으면 그 줄 선 사람 모두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거든요. 사람들이 인지할 때 이건 진짜 고객들의 ‘찐반응’인 거예요. 사람들은 ‘찐반응’에만 반응하거든요”
마케터 조명광은 <잘 팔리는 팝업스토어의 19가지 법칙>(포르체 펴냄)에서 브랜드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건 ‘진짜 고객’ 그러니까 ‘팬덤’이라고 말한다. “팬은 고객이기도 하지만 그 기업 브랜드의 변호사이자 군대이자 병원이자 영업사원이다. 팬덤은 무너져가던 브랜드의 생명도 연장시킨다.” 이제 매출은 “가격 경쟁력에서 상품 경쟁력을 넘어, 브랜드 경쟁력에 따라 좌우된다”. 기업에 MZ는 ‘높은 매출이라는 꿈’의 타깃이다.
#지하 1층: 모든 이미지는 서울로 통한다
‘핫플레이스’ 음식점이 한데 모인 지하 1층의 이름은 ‘테이스티 서울’(Tasty Seoul)이다. 그런데 지역 그리고 외국 브랜드들인데, 포함관계를 잘못 설정한 것이 아닐까? 대전세종연구원 주혜진 책임연구원은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스리체어스 펴냄)에서 서울을 이렇게 정의한다. “서울은 이야기를 독점하고, 문화를 독점하고, 심지어 도시를 향한 한국인의 상상력에 보이지 않는 천장까지 만든다.” 이렇게 표준이 된 서울을 모방할 수밖에 없어 SNS에 인증할 ‘감성’이 떨어지는 지역은 ‘노잼’이 되어 장소성을 잃는다는 것이다. 결국 핫플레이스 중에서도 핫플레이스인 더현대는 여러 지역, 캐릭터 굿즈, <슬램덩크> 같은 지식재산권(IP) 산업, 아이돌 산업 등 각종 ‘취향’을 흡수한다. 더현대는 지역을 압축한 서울, 그 서울을 압축한 공간이다.
#2층: 컨템포러리 미니 앤 맥스
여기 양극단의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가 있다.
임상시험 업계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이정화씨는 월평균소득 450만원(세후)으로 고소득자다. 부모님께 월 30만원 용돈을 드리며 본가에서 살고 있다. 부채도 없다. 조금 여유 부려도 될 법한데, 정화씨는 “언제든지 캐리어 하나만 들고 집을 나갈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싶”은 미니멀리스트다. 방 안에는 부모
님이 반대해 버리지 못한 가구들이 속이 텅 빈 채 놓여 있다. 텅빈 책장, 필기구라곤 펜 하나인 책상, 그나마 쓰는 한 칸도 널널한 서랍, 걸린 옷이 여덟 벌 정도에 불과한 옷장은 정말 그가 바라는 “딱 28인치” 캐리어에 거뜬히 담길 것 같다.
오프라인 공간뿐 아니다. SNS 계정과 유튜브·네이버 앱은 모두 삭제했고, 스마트폰 속 디지털 사진 파일은 5천 장만 남기는 것을 목표로 지우고 있다. 추억의 물건은 사진만 찍은 뒤 버렸다. 5년 정도 사용해 내부 코팅이 벗겨져 못 쓰던 텀블러도 몇 달을 참았다가 서로 ‘생일선물 계’를 하는 친구들 단체대화방에서 새로 얻었다. 정화씨는 삶을 최소한의 필요로만 채우려 한다.
같은 나이의, 개발자에서 비주얼머천다이저(VMD·시각적 상품기획자)로 전직을 준비하는 이미현씨는 맥시멀리스트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미현씨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세계 모두 두루두루 다채롭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일주일에 두 번은 나가고 영화관, 방탈출 카페, 운동, 미용, 미술 레슨, 덕질 굿즈 수집 등 ‘취미 부자’다. 디지털 콘텐츠와 멤버십 구독 목록도 유튜브, 여러 개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전자책, 클라우드 서비스, 이모티콘, 멤버십 등으로 빼곡하다.
미현씨도 불황을 충분히 체감한다. 이 불황도 ‘맥시멀’로 정리한다. 가계부 쓰기나 ‘무지출 챌린지’는 기본이고 신용카드를 체크카드처럼 쓰면서 양쪽 혜택 모두 활용하기, 40개에 달하는 통장 쪼개기 및 관리, 이것도 모자라 ‘가짜돈’을 구매해 일별 현금 거치대와 주별/명목별/저축별 다이어리로 관리한다. 자취방 공간 관리도 빡빡하다. 매번 늘어나는 취미 물품을 정갈히 수납하기 위해 “두어 달에 한 번씩 갈아엎어” 정리한다. 취미에 쓰는 비용은 월 26만원 정도다.
#3층: 어바웃 퓨처
이렇게 양극단처럼 보이는 미현씨와 정화씨의 소비 가치관은 모두 같은 전망에서 나왔다. 불확실한 미래라는.
정화씨는 우선 “평생 살 내 집을 갖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집값 자체에 드는 비용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릴 때부터 이사가 잦았던 개인사도 있지만, 뉴스에서 어렵게 보금자리를 마련한 사람들이 갭투자로 인한 손실이나 전세사기를 당하는 일을 보고서는 “차라리 그게(내 집 마련) 안 된다면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사는 동안에도 이동이 쉽게 내 삶을 좀 비워놓는 게 좋다”고 여기게 됐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손주에게 물려줄 “가치가 영원한(timeless) 물건” 딱 하나만 남기려는 것이다.
전직을 준비하면서 미현씨는 일하지 않고 있다. 예전에는 소득 공백기 없이 이직과 전직을 했다. “환승이 국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도 그렇고 주변에 “쿨 퇴사”를 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차라리 “쉬면서 앞날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 한다”는 것이다. 새로 일할 곳을 찾기 전까지 버티기에는 업계의 비전과 발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서다. 특히 미현씨가 이직 대신 전직을 택한 이유는 업계에서 “잘못된 루트를 탔”기에 자신의 경력이 “물 경력”으로 취급돼서다. “차라리 중소(기업)에서는 ‘구르면서’ 배울 수 있”고 “대기업은 신입 양성 시스템이 있”지만, 중견기업은 그게 없으니 이직한 곳에서 “(사실상) 신입인데 (이미 아는 게 있으니) 제대로 교육은 안 되고, 그렇다고 막 대리급 퍼포먼스를 낼 수 없는 상황”이어서다. 그럴 바에는 “좋아하는 일(비주얼머천다이저)을 하기 위해 나한테 투자하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미현씨에게 취미란, 외부 환경이 어떻든 스스로에게 절대적 행복을 주는 것이다.
#4층 리빙: 아이 돌보는 삶 & 아이돌 보는 삶
정화씨의 맥시멀 분야가 있다. 전세사기나 깡통주택 위험이 없는 제도인 주택마련저축은 매달 꼬박꼬박 하고 있다. 연애 중이고, 향후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어서다. 반면 미현씨는 연애를 쉰 지 7년이 넘어가고, 이제 연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혼자 생활해도 이 정도 규모로 소비하는데 연애하면 감당이 안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니멀과 맥시멀은 크게 미래의 규모 있는 지출을 염두에 두느냐 아니냐로 갈렸다.
어떻게든 친구와의 약속은 줄이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다른 인터뷰이 사이에서 단호히 절약한다고 답한 장현영씨도 결혼을 구체적 목표로 한다. 저렴한 곳을 알아보거나(승연), 그럴듯한 핑계를 댄다고(필헌) 답한 이들보다 소득이 높지만, 아예 친구들에게 “(나) 거지”라고 말한다고 했다. “나한테 많은 거를 바라지 말라”는 의미에서다.
그래서 과거에는 휴대전화 케이스도 “3만원이면 테슬라 0.1주인데”라는 생각 때문에 지금은 다이소에서 5천원짜리를 사용한다. 대신 현영씨는 결혼식에 드는 비용 5천만원 예산을 포함해 1억5천만원의 결혼자금을 목표로 두고 있다. 박미리씨는 결혼할 생각이 크게 없지만 주변에 결혼 예정인 지인들은 “어차피 결혼에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엄청 다른 생활적인 것에서 돈을 많이 세이브하려 한다”고 말했다.
지금 청년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아이 돌보는 삶 vs 아이돌 보는 삶’으로 나뉜다는 밈은, 지금 출산을 염두에 둔다면 아이돌 ‘덕질’처럼 취미를 즐기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제 출산은 부채를 낳는 일(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유튜브 채널 <삼프로TV> ‘자식은 부채다’)이 됐다.
비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뚜렷하게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는 청년들은 대체로 미현씨처럼 취미에 최대 1회에 40만원가량을 썼다. 이은빈씨는 돈 버는 이유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고 싶어서”를 꼽았다. 취미에 큰 위안과 즐거움을 얻는 희원씨나 필헌씨 모두 ‘미래 가족을 꾸리는 나, 공동체와 관계 맺는 나’를 고려하는 여유 대신 ‘현재에 충실한 나, 개인적인 만족을 중시하는 나’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두고 허세다, 사치다, 이기적이다라는 지적을 넘어 ‘공금 횡령’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다.
#5층과 6층: 워크 앤 라이프
공금 횡령의 원리는 이렇다. 한 기성세대는 연사 예능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MBC)에서 MZ들이 ‘텅장’(텅 빈 통장)인 이유를 설명한다. 월급 소득자라고 가정할 때 “월급은 정말 운 좋은 사람이 평생 400번(33.3년) 받으면 끝”인데, 이 돈은 “5년·10년 후의 나, 20년 후의 나, 30년 후의 나와 지금의 나가 같이 사용하라고 주고 있는 것”이라며 월급은 인생의 공금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MZ들의 해외여행이나 쇼핑은 ‘내돈내산’이 아니라 “공금 횡령”이라는 것이다. 이는 ‘노력하지 않는 청년들’의 이미지와도 이어진다.
하지만 청년들은 노력 자체를 싫어하지 않았다. 현영씨는 지금 직장과 관련 없는 아나운서 준비에 20대 때 알바 하며 모았던 돈을 다 썼지만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전수현씨는 곧 이직할 곳까지 포함하면 총 다섯 직업을 거쳤다. 처우가 열악한 곳도 있었고, 불안정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돌아봤다. “한곳에 계속 있는 것을 오히려 불안해요. (경험을 통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객관화가 된 것 같고, 좌절을 이기고 나갈 지구력이 높아져서 성장할 수 있다”는 이유다. 정화씨도 “진짜 인생 경험”은 여행이나 서핑 등 돈 쓸 때의 즐거움보다 아르바이트나 사회생활 등 “돈 벌 때” 얻는다고 말했다.
직장을 다니는 인터뷰이들은 입 모아 입사 초기의 열정은 이내 빠졌다고 한다. 직장에서 장기근속에 대한 기대도, 현재 근무를 통한 성장도, 업계의 미래와 한국 사회 자체에 대한 무기력과 불신이 크기 때문이다. ‘월급 중독’이라는 표현도 쓴다. 근로소득으로는 거주할 집과 노후를 보장할 수 없는데 거기에 안주하게 된다는 뜻이다. 대신 인터뷰이들은 ‘엔(n)잡’(여러 개의 직업)이나 스펙업, 전직, 주식투자, 저축 등 근로소득 바깥의 소득을 모색한다.
현영씨가 일하는 업계에서는 이직이나 승진을 좌우하는 건 ‘스펙업’과 같은 노력이 아니라 인맥으로 좌우되는 경향이 심하다. 그래서 “내가 뭔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식”이라고 생각했다. 동료들과도 주식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눈다.
그 월급을 담보로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는 것은 전체 삶으로 따져봤을 때 오히려 ‘악덕 경영자’인 것이다. 부동산과 비교해 어쩌다 누리는 호캉스는, 아이 양육과 비교해 PT(개인 트레이닝)나 오마카세는 ‘가성비 좋은 소비’다. SNS에 보이는 초호화 명품이야말로 일부의 MZ가 과대 대표되는 것으로 보였다. 이를 두고 청년들의 허세와 낭비로 싸잡아서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청년이라는 이름에 대한 횡령일 것이다.
#나가는 곳: 혐생과 갓생 넘어
카카오프렌즈는 최근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 ‘갓생’을 주제로 캐릭터 인테리어를 했다. 하루하루 자신만의 투두리스트와 루틴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뜻의 갓생(God生)은 우리나라에서 팬데믹 초창기 때 시작된 트렌드였으나 이제 본격적인 라이프스타일 담론으로 등극했다. 내 가치를 올리려면, ‘몸이 열 개인 것처럼’ 시간 농도를 올려야 한다. 근래 자기계발 멘토들이 강조하는, 노동자의 삶에서 ‘엑시트’(탈출)해서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는 이야기와도 닿아 있다. 과거의 자기계발 담론처럼 스펙업해서 근로소득 모델에 대한 믿음으로 승진이나 이직 등을 목표로 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연애-결혼-출산이라는 정상 생애주기부터 대학 간판과 스펙업이라는 교육을 통한 계층 사다리, 직장에서의 장기근속, 제조업 중심의 국가 성장, 단일민족주의, 기후까지 온 차원의 ‘미래’가 층층이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텅 빈 삶의 서사 공간에 청년들은 하루 안에서나마 ‘미라클 모닝-명상하기-오운완(오늘의 운동 완료)’ 루틴(습관)으로서, 혹은 외국어 학습 앱 캐릭터의 ‘브론즈-실버-골드-사파이어-루비-에메랄드-자수정-펄-흑요석-다이아몬드’라는 레벨로서 각자 삶의 이정표를 한땀한땀 새겨보고 있다.
만약 이마저도 불안하다면, 청년들은 미래를 점쳐준다는 사주나 타로 클래스를 수강한다. 아예 그 ‘텅 빔’을 애써 채우지 않고 니트족(NEET·교육이나 훈련에 참여하지 않고 취업도 하지 않는 청년층)이 되기도 한다.
지금 청년들에 대한 트렌드로 초개인, 핵개인, 혼삶, 미 퍼스트(Me First) 등 ‘혼자’로 규정짓는 말이 많다. 하지만 인터뷰한 청년 대다수가 ‘혼밥’일 때는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우더라도 친구와의 약속은 포기하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식사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핫플레이스를 찾았다. 물론 친구와 밥 먹는 데 아끼지 않는 이유에는 체면을 위해서라거나 ‘엔(n)빵’할 수 있어서 그나마 부담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핵심은 ‘소중한 관계’였다.
미니멀리스트인 정화씨도 직장 동료 등 사회생활로 알게 된 사람들은 노력 안 하면 금방 끊어질 관계지만, 친구는 “내가 당장 (관계 유지에 여력을 내는) ‘퍼포먼스’를 내지 못해도 계속 자리가 마련돼 있고, 돈 주고도 얻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한 인터뷰이는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연인보다 만나는 빈도는 적을지언정 더 소중하다고 봤다. 우정에는 여전히 ‘미래’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친구에 대한 애정을 ‘우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실마리로 삼을 수 있을까? 분명한 길은, 지금 청년들에 대해 ‘금성에서 온 기성세대, 화성에서 온 MZ’처럼 피상적인 분석으로, 매출 대상으로서 소비 주체나 노동력으로서 직원으로만, 푯값으로서 유권자로만 이해하려는 것 너머의 마음을 품는 것이다.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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