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비전 분야 AI, 인간보다 경제성 떨어진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수 있다는 위기론이 제기되지만 아직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안면인식 등 컴퓨터 비전 기술이 필요한 업무를 AI로 대체할 때의 경제적 이득이 투자 비용보다 적어 시장 논리에 의해 선택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닐 톰슨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미래기술연구프로젝트 책임자가 이끄는 연구팀은 글로벌 IT기업 IBM 연구팀과 함께 컴퓨터 비전 분야에서의 AI 투입 가능성을 분석해 이같은 결과를 18일(현지시간) 내놨다.
지난 2023년 8월 챗GPT로 유명한 오픈AI 연구팀은 챗GPT와 같이 대형 언어 모델을 기반으로 한 생성형 AI가 인간이 담당하던 업무의 약 50%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을 논문 사전게재사이트 '아카이브'에 발표한 바 있다. AI를 통해 급격한 공정 자동화가 이뤄질 경우 세계 곳곳에서 실업자가 대량 양산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연구팀은 컴퓨터 비전 분야의 'AI 노출도'를 기준으로 실제 AI가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산업 현장에 투입될 경우 얼마만큼의 경제적 손익이 발생할 것인지 계산했다. AI 노출도는 어떤 직무나 능력이 자동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연구팀에 따르면 컴퓨터를 통해 인간의 시각적인 인식 능력을 구현하는 연구 분야인 컴퓨터 비전은 인간 근로자가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컴퓨터 비전의 핵심은 촬영된 이미지나 영상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다. 얼굴의 특징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안면인식 기술이나 물건의 외관을 인식해 불량품을 골라내는 공정 등에 활용된다.
연구팀은 컴퓨터 비전 분야에 AI를 활용할 경우와 인간 근로자를 활용할 경우의 경제적 손실을 비교했다. 미국 노동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종 직군의 성격을 기반으로 1016개 직업과 19만 9265개 업무를 분류했다. 이 분류를 바탕으로 컴퓨터 비전 기술에 의해 대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190개 업무를 골랐다. 환자의 육체 상태를 보고 상태를 판단하는 간호 업무, 피부나 머릿결 상태를 분석하는 미용 업무 등이 포함됐다.
이어 이들 업무를 AI로 대체하기 위해 얼마 정도의 비용이 들지 계산했다. AI 개발 및 설치·유지에 사용되는 고정비용, AI 학습과 재학습 등에 쓰이는 업무수행 비용, AI 시스템의 규모에 따른 운영 비용 등이 고려됐다. 이때 각 업무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AI를 실제 업무에 도입할 경우 어느정도의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하는지 답하게 했다. 기존 방법대로 인간 근로자를 쓸 경우의 비용도 산출했다. 2022년 미국 노동부가 공개한 연봉 수준, 직급에 따른 업무의 중요도, 업무에 필요한 노동자의 수, 회사의 규모 등이 반영됐다.
그 결과 연구팀은 자연스러운 시장 경제 논리에 의해 AI가 대체 노동력으로 채택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AI 시스템을 개발하고 설치하는 데 소모되는 비용이 AI가 내는 성과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농업을 제외한 미국 내 산업군 중 약 36%는 컴퓨터 비전 기술이 필요한 분야로 분석됐다. 그중 AI에 컴퓨터 비전 기술을 맡겼을 때 경제적 이득을 얻는 비율은 23%였다. 전체 산업군으로 따졌을 때 AI로 인력을 대체해 이득이 되는 비율은 8%에 불과했다.
연구팀은 AI 개발이 가속화돼 설치 비용이 줄어들 경우엔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지 분석했다. 시스템 설치 비용이 1000달러(약 120만 원)까지 떨어지더라도 기존 인력비 지출이 낮았던 소규모 회사의 경우엔 큰 이득이 없었다. 고용 인력이 5000명 이상이고 한 직군 당 맡은 업무가 적으며 높은 연봉을 주는 대기업의 경우에만 AI 시스템 설치에 약 1억 달러(약 1339억 원)가 들더라도 투자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 비전 기술 분야에서 AI의 능력이 인간 근로자가 낼 수 있는 성과의 2배 이상을 웃돈다고 가정할 때 경제적 이득을 얻는 비율이 기존 23%에서 30%로 상승했다.
연구팀은 AI 시스템에 드는 연간 비용이 지금보다 절반으로 줄더라도 최소 2042년까지는 경제적 관점에서 인간 근로자를 대체할 수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연구를 이끈 닐 톰슨 연구원은 "AI를 훈련하고 개발하는 비용을 얼마나 더 낮출 수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며 "공정 자동화는 상당 부분 이뤄질 것이며 정부는 실업자가 대량 양산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준비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박건희 기자 wiss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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