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중계권의 경제학: 쿠팡이 걸은 길 티빙이 걸을 길 [분석+]
K리그 중계권 따낸 쿠팡플레이
월 4990원 유료화 논란 컸지만
차별화 중계로 팬 불만 잠재워
프로야구 중계권 원하는 티빙
부분 유료화 전략 추진 가능성
독보적인 중계ㆍ투자 힘든 상황
쿠팡플레이의 길 밟을 수 있을까
지난해 쿠팡플레이는 K리그 중계권을 따냈다. K리그 팬들은 들불처럼 일어났다. K리그를 보려면 월 4990원짜리 쿠팡의 와우멤버십에 가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팡은 차별화한 중계와 과감한 투자로 K리그 팬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KBO 온라인 중계권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마자 '유료화 논란'에 휩싸인 티빙은 쿠팡플레이의 길을 밟을 수 있을까.
요즘 야구팬들이 삼삼오오 모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가 있다. OTT 플랫폼 티빙이 2024~2026년 KBO 리그 뉴미디어 중계권의 우선협상자에 등극한 이야기다. 본계약 절차에서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2006년 이후 네이버에서 인터넷 야구 중계를 봐왔던 야구팬들은 이제 티빙을 이용해야 한다.
고질적인 적자에 시달리는 티빙이 '유료화 전략'을 꺼낼 수 있어서인지 몇몇 야구팬은 벌써부터 "공짜로 보던 야구를 돈 내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섣부른 기우는 아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중계권 경쟁을 붙일 때 '보편적 시청권'을 강조해 '전면 유료화'는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부분 유료화'는 얼마든지 꺼내들 수 있는 카드다. 업계 관계자는 "티빙이 광고를 포함한 일반화질 중계는 무료로 제공하고, 유료회원에겐 고화질을 서비스하는 '부분 유료화' 전략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티빙은 그간 독점 제작한 드라마나 예능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런 티빙이 느닷없이 스포츠 콘텐츠인 야구 중계권에 손을 뻗은 덴 쿠팡플레이의 영향이 크다.
2023년 K리그 독점 중계권을 확보한 쿠팡은 눈부신 성장세를 거듭하며 토종 OTT 시장에서 월간활성사용자수(MAU) 1위를 차지했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쿠팡플레이의 MAU는 664만7884명으로 서비스 출시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K리그 중계를 시작한 같은해 2월(401만4887명) 대비 65.6%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티빙의 MAU는 9.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런 티빙 입장에서 야구 중계는 쿠팡플레이처럼 반등을 꾀할 수 있는 효율적인 카드임에 분명하다. 최근 티빙의 모회사 CJ ENM은 목표 MAU를 2024년 1000만명, 2025년 1500만명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스포츠 콘텐츠의 가장 큰 매력은 실시간성이다. 이용자들이 경기를 진행하는 시간에 접속해야 하기 때문에 폭발력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일반적으로 주당 6경기를 펼치는 프로야구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실시간 뷰'를 기록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티빙이 쿠팡플레이처럼 성공하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유료서비스 중인 쿠팡플레이 역시 처음엔 K리그 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쿠팡플레이와 계약하기 전엔 K리그 팬들은 네이버와 다음에서 무료로 K리그 온라인 중계를 볼 수 있었지만, 2023년부터 쿠팡의 와우멤버십(월 4990원)을 결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만, 쿠팡플레이는 이런 불만을 금세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 원동력은 중계의 질質과 과감한 투자였다.
쿠팡플레이는 라운드당 1경기씩 K리그1 주요 경기를 '쿠플픽 매치'로 지정해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영상을 제공했다. 카메라 17대와 '레이싱 드론' '슈퍼 슬로 캠' 등 특수촬영기기를 투입해 중계의 질質을 한단계 끌어올렸던 거다. 국내 축구팬 김현지(가명)씨는 "처음엔 OTT로 경기를 보는 게 익숙지 않아 거부감이 많았지만, 중계 퀄리티가 남달라 만족하는 팬들이 갈수록 늘어났다"고 말했다.
쿠팡플레이는 투자도 과감하게 단행했다. 무엇보다 2022년 한국프로축구연맹과 포괄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2025년까지 K리그의 발전을 위한 파트너십 관계를 구축했다. 그 연장선에서 K리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K리그 굿즈상품도 판매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미디어 업계 전문가는 "지금 와서 보면 쿠팡플레이가 'K리그 효과'를 쉽게 누린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말을 이었다. "중계 퀄리티를 끌어올리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지 않았다면, 유료화에서 불붙은 K리그 팬들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했을지 모른다."
이는 쿠팡플레이의 성공 사례를 밟길 원하는 티빙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티빙이 기대한 효과를 거두려면 '특별한 혜택'이 필요하단 방증이어서다. 문제는 티빙이 쿠팡플레이처럼 '중계의 질'과 '과감한 투자'를 담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쉬운 게임'이 아니라고 꼬집는다.
무엇보다 야구와 축구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스포츠다. 한팀당 144경기를 소화하는 KBO리그는 K리그에 비해 경기수가 월등히 많은데다, 경기시간도 훨씬 길다. 쿠팡플레이처럼 '독보적인 중계'를 펼치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티빙이 '통 큰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티빙의 적자는 2020년 61억원, 2021년 762억원, 2022년 1192억원으로 갈수록 커지고 있다. CJ ENM의 재정 상황도 신통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KBO 온라인 중계권을 따내는 데 총 1200억원(3년)을 베팅했으니 곳간이 성할 리 없다.
물론 티빙도 나름의 히든카드를 갖고 있다. '2차 콘텐츠'의 창작을 허용한 거다. 네이버는 그동안 SNSㆍ유튜브 등에서 프로야구 영상 소스를 사용하는 걸 금지했다. 구단이 경기 영상을 활용하려면 별도 계약을 맺어야 했다. 야구팬 역시 비상업적 용도로 만든 영상이나 움짤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2차 콘텐츠' 허용이 유료화란 벽을 넘어설 만한 카드인지는 의문이다. 컨설팅업체 오픈루트의 김용희 연구위원은 "티빙이 유료화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획기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중계권을 따내더라도 구독자 수가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을 수 있다"면서 "특히 국내 프로야구팬은 상당히 열정적인 데다 여론을 형성하는 능력이 좋기 때문에 부가 서비스 부분을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총 1200억원을 베팅한 티빙은 과연 '쿠팡플레이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까.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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