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엽의 IT프리즘]단말기 유통법 폐지의 전망과 과제
(서울=뉴스1)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 온 세계가 AI가 만들어 낼 변화에 주목하고 있는 지금 한국의 디지털 생태계도 삼성이 최초로 출시하는 온디바이스 AI를 탑재한 갤럭시 24로 떠들썩하다. 또한 대통령실에 디지털 정책을 포함한 과학기술정책을 조정할 과학기술수석도 신설되어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나아가 정부는 단말기유통법(단통법)을 폐지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것은 물론 동시에 제4이동통신사를 선정하기 위한 주파수 경매를 시작했다. 유독 한국은 AI와 함께 통신 시장이 디지털 정책의 핵심 의제가 되고 있다.
2014년 제정된 단말기 유통법의 제정 목적은 크게 2가지였다. 첫째, 불투명하고 차별적 단말기 지원금 지급으로 인해 소비자 후생 배분이 왜곡되는 것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즉, 단말기 지원금은 모든 이용자의 요금수익을 바탕으로 재원이 마련되지만, 지원금 지급이 일부 이용자에게 집중되어 이용자 차별이 심했다는 것이다. 특히, 동일한 단말기 구입자 간에도 가입유형(번호이동, 기기변경 등), 구입시기 및 장소 등에 따라 지원금 차이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둘째, 번호이동에 집중되는 혜택을 좇는 빈번한 단말기 교체 현상으로 불필요한 가계통신비 증가와 자원의 낭비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어떨까. 이런 입법목적을 달성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긍정적인 평가로는 이용자 차별이 대폭 해소되었고, 가계통신비도 감소하여 가구 소비지출 구성 중 통신비의 비중이 단통법 시행 전 6.0%에서 법 시행 후 5.2%로 감소했다. 또한 선택약정할인 제도의 도입과 요금제에 비례한 지원금 지급으로 인해 고객의 사용량에 맞는 요금제를 선택하는 등 합리적 통신 소비가 정착되고 있다는 평가이다.
다만, 부정적인 평가도 여전하다. 이는 단통법 폐지 주장의 주요 논거이기도 한데, 보조금 경쟁이 사라져서 이용자의 단말기 구입부담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반면 보조금과 마케팅 비용을 줄여 사업자의 영업이익만 증가하였다는 것이다. 정부의 단통법 폐지발표 이유도 통신사, 유통점 간 자유로운 지원금 경쟁을 촉진하고, 국민들이 저렴하게 휴대전화 단말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 단말기유통법의 경우 미국·영국·프랑스 등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없는 한국만의 특유의 규제법이며, 그것도 시장에서 마케팅을 제한하는 매우 이례적인 규제법이다. 통신 시장에서 요금, 품질 경쟁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보조금 경쟁마저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단통법의 폐지나 개정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또한 최근 이용자가 유통점을 거치지 않고 자급제폰을 구입해 본인이 선택약정할인 등 요금제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등 합리적인 통신소비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는 점도 단통법유지의 근거를 악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과연 단통법을 폐지하면 바로 정책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사실 단통법 폐지의 핵심 내용은 통신사가 지원금을 공시하도록 한 의무와 유통점이 제공하는 추가 지원금의 상한선(공시지원금의 15%) 규정을 없애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공시지원금 상한액은 2017년 일몰되었고, 따라서 법 폐지 효과는 유통점의 추가 지원금 한도를 없애는 것뿐이다. 결국 공시지원금 상한선이 폐지되었음에도 보조금 경쟁이 없는 것은 규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시장포화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갤럭시 24 출시에도 불구하고 공시지원금은 종전과 다르지 않은 상황도 이를 반영한다.
또한 단통법 폐지로 인해 짚어봐야 할 문제도 있다. 먼저, 이용자와 판매자 간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예전처럼 소위 호갱이 속출할 수 있다. 주로 취약계층이 고가에 단말기를 구입하는 형태의 피해가 나올 수 있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또한 단통법 폐지로 보조금 무한경쟁이 이뤄지면 자금력이 부족한 제4이동통신사업자나 알뜰폰은 경쟁이 어렵게 되어, 정부의 경쟁 활성화 정책의 한 축이 무너지게 될 수 있다.
한편 단말기의 가격 인상은 단통법으로 인한 것은 아니며, 따라서 단통법이 폐지된다고 해도 단말기가 가격이 바로 인하되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그동안 통신 요금이 아닌 단말기 가격의 가파른 상승이 가계통신비 인상으로 이어졌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삼성과 애플 독과점 체제로 바뀌면서 제조사의 장려금 비중이 크게 줄었으며, 특히, 애플은 판매 장려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어 삼성도 판매 장려금을 늘릴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결국 통신사도 제조사도 지원금이나 판매 장려금을 지원할 유인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종래의 통신정책과 같이 이번 단통법 폐지 정책 역시 소비자의 단말기 구입 부담 경감과 가계통신비 인하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번에도 이통사를 겨냥하고 있다. 이 정책의 초점은 소상공인인 유통점과 통신 이용자의 혜택 확대에 있다. 그러나 진정 통신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통법 폐지로 인해 이용자 차별 이슈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후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다른 경쟁정책과의 조화나 단말기 정책의 재설계도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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