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처법 50인 미만 확대 시행되자…중기 “추가 채용 동결…성장 포기”

2024. 1. 2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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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사고 안 늘리려면 한국서 회사 성장은 포기”
빵집 등 소상공인, “아예 5명 미만으로 줄일까 고민”
“안전관리자 뽑았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 없더라”
지난 27일부터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업종과 무관하게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됐다. 이에 건설,제조업은 물론 소상공인들까지 인력 감축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 없음[연합]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적용범위를 확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지난 27일 시행에 들어갔다.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무대책’ 상태라고 했다. 고용 규모가 커지면 사고 위험성도 같이 커지는데, 그같은 위험을 감수하고 채용을 계속할 수 있겠냐고 주장한다. 한 빵집 사장은 현재 6명인 고용 인원을 4명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지난 27일부터 새롭게 중처법 적용 대상이 된 사업장은 5인 이상 50인 미만인데, 이를 비켜가겠다는 취지다. 이처럼 소규모 사업장에서 중처법 때문에 채용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중처법 시행 당일인 지난 27일 토요일 수도권의 한 건물 유지·보수 건설업체 관계자는 “법이 시행됐다고 일과에 변동이 생긴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상시근로자 수 12~13명을 유지하고 있는데, 아침 조회 시간에 ‘오늘 하루 안전하게 작업합시다’, ‘안전모 잘 착용했는지 확인하세요’, ‘2인 1조로 작업하세요’ 등 주의사항을 구두로 전달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이 관계자는 “중처법 시행 전부터도 하고 있던 것이고, 앞으로도 (안전 관련 대응이)기존에 하던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원래도 작업자들은 자기가 다치는 게 싫어서 조심해서 작업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안전관리자도 소장이 겸직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자격증 갖춘 사람을 뽑기에는 직원수 12명 회사에 너무 큰 인건비 부담이 된다. 그리고 중대재해가 발생한 뒤부터가 문제다. 지금 당장 절박한 느낌은 없다”고 털어놨다.

울산광역시 소재 페인트 및 합성수지 생산업체의 김 모 상무도 “보통 중소기업들은 중처법 뿐만 아니라 이런 법들에 대한 대처가 항상 ‘터지고 나면 대응하는 식’”이라며 “여력이 없는데 벌써부터 준비해야 할까 고민하고, 또 그동안 여러번 많은 법들이 수차례 유예되고 번복되는 걸 보면서 학습된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년 전 52명이었지만 중처법 시행을 1년 더 유예하고자 49명으로 감원했다. 김 상무는 지난 1년 동안 공공기관, 지자체에서 하는 중처법 관련 강연을 찾아다니며 정보 수집에 나섰고, 1000만원을 들여 안전보건관련 컨설팅업체에 컨설팅까지 받았다. 안전보건관리자도 따로 채용하며 준비를 마쳤다.

김 상무는 “어찌저찌 준비는 해놓았지만 그간 불안이 극심했고 정부에서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며 “강연은 듣고 뒤돌아서면 항상 ‘그래서 무얼 준비해야 하는건가’ 의문이 남았다. 매번 처벌이 어떻다느니 겁만 주고 솔루션은 제공하지 못하는 자리들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 회사는 고용을 더 이상 할 생각이 없다”며 “50명이 일하다가 사고 나는 비율하고 30명이 일하다가 사고 나는 비율 중 어느 쪽이 더 높겠나. 그러니까 회사를 더 키우는게 더 힘들게 된 셈”이라고 밝혔다.

대구에서 46명 규모로 섬유 업체를 운영하는 대표 손 모씨도 “현재 직접비, 즉 인건비, 각종 공공요금 인상,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담 등이 한꺼번에 덮친 상태라 안전관리 전담 직원 채용이 어렵다”며 “준비는 해야겠지만, 여력이 없어서 꼼짝 못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손 대표는 “직접비가 증가하니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고, 가격 경쟁력 약화로 중국산에 밀릴 판”이라며 “여기에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대표를 구속하는 법까지 더해지니 앞으로 우리나라에 제조업은 설 자리가 없는 것 같다. 저 역시 더는 회사를 성장시킬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처법을 먼저 적용받은 50인 이상 중기에서는 가이드라인에 맞춰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직원들에게 체감되는 안전상 변화는 미미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120여명이 일하는 경기도 시화공단의 한 반도체 부품 제조업체는 지난해 봄 1명이 있었던 안전관리자를 추가로 채용해 안전 전담팀을 구성했었다.

이 회사 관리자급 인사는 “대기업 고객사에서 심사 나올 때마다 요건을 갖췄는지를 계속 점검해서 안전 분야를 강화하게 됐다”며 “하지만 안전관리 직원을 더 뽑은 것과 일반 직원들이 일하는 작업장 환경에는 큰 연관이 없다. 작업장 곳곳에 ‘중량물을 들 때 자세를 어떻게 취하라’는 등의 포스터가 붙은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밝혔다.

한편, 제조업, 건설업체들은 ‘추가 채용 동결’을 말하는 한편, 소상공인들은 적극적으로 5명 미만으로 직원 수를 줄일 지까지도 따져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바이트 직원 2명을 포함해 상시근로자 6명인 서울 서대문구의 N베이커리 사장은 “지금까지 무탈하게 잘 운영해왔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모르는 것 아니냐”며 “좀 지켜보다가 아르바이트 2명을 내보낼 지 결정하겠다. 하지만 이 법을 피해가자고 남은 4명으로 가게를 돌리려니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해야하나 벌써부터 억울하다”고 말했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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