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충고·조언은 오지랖, 롤모델? 우스워…자기 인생 살면 돼" [MD인터뷰](종합)

강다윤 기자 2024. 1. 2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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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 / CJ ENM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텔레비전 할 때, 연기에 대한 피로감도 있었죠. 그런데 그때 난 실용적인 사람이라 먹고살려고 연기를 했어야 됐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다 내가 받은 수업이에요. 지금은 내가 돌아볼 것 밖에 없잖아요, 바라볼 것보다는. 다 반추하는 나이가 돼서 지금은 아주 노배우가 됐어요."

윤여정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는 2월 7일 영화 '도그데이즈'(감독 김덕민) 개봉을 앞두고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도그데이즈'는 성공한 건축가와 MZ 라이더, 싱글 남녀와 초보 엄빠까지 혼자여도 함께여도 외로운 이들이 특별한 단짝을 만나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갓생 스토리를 그린 영화. 세 마리의 강아지 완다, 차장님, 스팅을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는 휴먼드라마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윤여정은 극 중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민서는 날카로운 충고를 참지 않는 까칠한 성격이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하나뿐인 가족, 반려견 완다만큼은 누구보다 사랑하는 인물이다.

영화 '도그데이즈' 포스터. / CJ ENM

이날 윤여정은 "나는 너무 오래 한 배우이기 때문에 시나리오도 좋고, 명망 있는 감독이고, 돈도 많이 주는 건 나한테 안 들어온다. 언젠가부터 혼자 결심을 했다. 이번에 감독을 보면 시나리오랑 돈을 안 봐야 한다. 시나리오만 볼 거면 시나리오만 봐야 하고, 어떨 때는 돈만 본다. 그때그때 다르다. 이번에는 감독님만 보고했다"며 작품 출연 이유를 밝혔다.

'도그데이즈' 김덕민 감독이 조감독일 적 윤여정은 작품을 함께했다. 윤여정의 표현에 따르면 김덕민 감독도 윤여정도 모두 '노바디'(별 볼일 없었다는 뜻)였다. 취급을 받지 못한 두 사람은 그렇게 전우애를 쌓았다. 그런 김덕민 감독이 19년 동안 조감독을 하느라 입봉을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김덕민이 입봉을 하면 내가 꼭 하리라. 그렇게 윤여정의 '도그데이즈' 출연이 성사됐다.

시나리오가 아닌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을 묻자 "내가 어떻게 보겠나. 내가 찍었으니까. 나는 내가 한 영화로 내가 자화자찬을 못한다. 보면 '왜 저렇게 찍었지' 이런 것만 보이는 사람이다. 그런 건 잘 모르겠다"며 답했다. 첫 시나리오에서는 이름부터 '윤여정'일 정도로 본인을 염두에 둔 작업에 대해서는 "싫다. 그런 게"라고 딱 잘랐다.

배우 윤여정. / CJ ENM

윤여정의 솔직함은 함께한 파트너 완다조차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완다와는) 호흡이라 그럴 수 없다. 투쟁이다. 감독이 '액션' 해도 말을 못 알아듣지 않나. 걔 마음대로 뛰고 마음대로 하니까 진짜 괴로웠다"며 "교감도 없었다. 현장에서 제일 괴로운 존재가 아역배우와 동물이다. 왜냐면 컨트롤할 수 없으니까. 얘는 뭐 어떻게 할 길이 없이 길길이 뛰고 난리를 쳤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정 많은 MZ라이더 진우 역의 배우 탕준상과는 어땠을까. 2003년 8월 13일 생인 탕준상과 1947년 6월 19일 생인 윤여정의 호흡은 많은 화제를 모았던 터. 윤여정은 "걘 사람이니까 괜찮았다. 뭐 잘하는 배우니까 뽑혔을 거다. 그래서 아무 문제 없이 찍었다"면서도 "내가 할 말이 없으니까 젊은 배우들한테 '어머니가 몇 살이시니' 그런 걸 잘 묻는다. 근데 얘는 아버지가 75년생이더라. 깜짝 놀랐다. 내 아들이 75년 생이다. 내가 너무 배우를 오래 했구나 생각했다"라고 털어놨다.

"차에서 내려서 걔네 집 앞에서 라면 먹자는 장면인데, 그렇게 애드리브를 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내가 그런 거 보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죠. 그래서 '그렇게 하고 싶니?' 그랬더니 하고 싶대. 근데 틀려서 못하더라고. 애드리브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에요. 무슨 군소리 같은 걸 넣고 싶어 하더라고"

배우 윤여정. / CJ ENM

그러면서 윤여정은 애드리브를 굉장히 싫어한다 고백했다. 스스로를 '구식배우'라 칭하며 그렇게 훈련을 받지 않다고, 상대하고 나하고 서로 약속을 했는데, 느닷없이 그러면 곤란한, '텔레비전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이야기라고. 젊은 애들이 많이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슬쩍 웃었다.

또 한 번 스스로를 '구식배우'라 칭하며 전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현장에서 조명을 받쳐둔 쇠가 손등에 떨어져 윤여정의 손등에 시커멓게 멍이 들었지만 아무도 이를 몰랐다. 윤여정은 나중에 김덕민 감독에게만 생색을 냈다. 현장에서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개인적인 일로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기에. 윤여정에게 일하러 나온 자신이 모두의 시선을 빼앗고 촬영을 멈추게 하는 것은 민폐였다.

배우 윤여정. / CJ ENM

극 중 민서가 입은 옷들은 전부 윤여정의 개인 소장품이다. 이에 대해 그는 "다 내 옷이다. 이번엔 다 내옷이다. 내 옷, 내 신발. 의상값이 하나도 안들었다. 그렇게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며 "나하고 비슷하게 써놨으니까 나같이 하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작품 때는) 그렇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윤여정이 생각하기에도 민서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는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지만 다소 외로운 인물이다. 마당까지 딸린 넓은 집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며 민서만이 홀로 남았다.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아들에게는 아플 때조차 쉽사리 연락하지 못한다. 윤여정은 어떨까.

"달라진 건 없고요. 일상에서 외로운 건 늘 외로워고. 외로운 연습은 해야지 되는거라고 생각했고. 늙어가는게 외로운 거죠, 뭐. 그리고 유명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던데. '늙을수록 외로워지라고'. 외로움을 즐기는 건 아니지만 난 외로운 걸 좋아해요. 가만히 혼자 있는 걸."

배우 윤여정. / CJ ENM

민서와 윤여정의 차이는 외로움뿐만이 아니다. 민서는 진우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윤여정은 '민서의 충고가 어린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비슷했는지' 묻자 "작가가 나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라며 "나는 청년들 보면 이야기를 안 한다. 나랑 다른 세상에 사는데 걔네한테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들을 리도 없고 오지랖이다. 걔네들 인생이니까 걔들이 사는 거다. 난 그런 충고의 말, 조언 너무 싫어한다. 나는 그런 말 안 한다"라고 선을 그었다.

민서에 대해서도 "난 상투적으로 봤다. 전부 나를 놓고 써서 내가 연기했다"며 "걔(진우)도 '뭔데 충고하냐, 자식은 아픈데 오지도 않고 그렇게 사냐' 맞는 말 하지 않나. 그러니까 민서가 아무 말 못 한다. 남이 나한테 말하는 게 진짜다. 나는 나를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민서는 또 진우가 청춘이라고 생각해서 안된 마음에 나름 충고를 하는 거 아니냐. 잘 쓴 거다 작가가"라며 덧붙였다.

충고와 조언은 오지랖 같아서 좋아하지 않는다는 윤여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후배들은 그를 롤모델로 꼽는다. 하지만 이번에도 윤여정은 "그것도 난 우습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왜 롤모델이냐. 롤모델은 무슨. 자기 인생대로 살면 되는 거지 왜 남을 롤모델로 삼느냐"라며 "인생은 다 다르다. 당신이 살 인생하고 내가 살 인생이 다르다. 내가 이렇게 살았다 그래서 나를 쫓아서 살고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난 롤모델이라는 말이 애당초 맘에 안 들었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배우 윤여정. / CJ ENM

인터뷰 중 윤여정은 '로망이 있느냐'라는 물음에 "이 인터뷰를 빨리 끝내고 집에 갔으면 좋겠다. 나 무슨 약장수 같다. 약장수 같으니까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토로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리고 윤여정은 "내가 원체 이렇게 다정다감한 성격이 못 된다. 난 뭐 로망도 없다. 그래서 내가 무슨 시를 읽다 '아, 이 시인도 나 같은 인생을 살았구나' 그렇게 생각했다"며 시 한 소절을 읊었다.

"'난 후회도 변명도 낙담도 아양도 없이/한 길로 살아온 길이 외진 길이었을 뿐'이라는 마종기 시인의 '이슬의 명예'라는 시예요. 보면서 '아, 이 시인도 나 같은 삶을 살았구나'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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