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스럽게… 문희답게… 스크린에 뜬 ‘2色 시니어’

이정우 기자 2024. 1. 2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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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앞두고 극장가에 때아닌 노배우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배우 윤여정(76)과 나문희(82)는 각각 대중이 떠올리는 그들의 모습과 닮은 역할로 관객과 만난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고 시크한 윤여정이 옆집의 멋진 할머니라면, 누구보다 억척스럽게 살았으면서 여전히 소녀다움을 간직한 나문희는 고향을 부쩍 그리워하는 우리네 어머니나 할머니가 떠오른다.

윤여정은 지난 26일 인터뷰에서 "내가 할 만한 대사를 누군가 썼구나 싶었다"고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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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그데이즈’ 윤여정·‘소풍’ 나문희… 극장가 ‘노배우 바람’
시크한 윤여정
‘외유내강’ 세계적인 건축가 역
기획부터 윤여정에 맞춘 캐릭터
“난 젊어봤거든” 실제 말투 닮아
소녀같은 나문희
억척스러움 속에 간직한 순수함
헌신했지만 외로움에 힘든 노년
“동무들 다 어디에” 먹먹한 대사
영화 ‘도그데이즈’와 ‘소풍’으로 각각 설 연휴에 관객과 만나는 배우 윤여정(왼쪽), 나문희. CJ ENM·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설 연휴를 앞두고 극장가에 때아닌 노배우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배우 윤여정(76)과 나문희(82)는 각각 대중이 떠올리는 그들의 모습과 닮은 역할로 관객과 만난다.

누구에게나 당당하고 시크한 윤여정이 옆집의 멋진 할머니라면, 누구보다 억척스럽게 살았으면서 여전히 소녀다움을 간직한 나문희는 고향을 부쩍 그리워하는 우리네 어머니나 할머니가 떠오른다. 어쩌면 백 세 시대에도 2030세대의 입맛 적중에만 열중해왔던 한국 영화계가 비로소 시대를 반영하는 건지도 모른다.

영화 ‘도그데이즈’(연출 김덕민)에서 윤여정은 자신과 똑 닮은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로 나온다. 민서는 겉으론 까칠하지만, 속내는 여리고 부드럽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매사에 똑 부러지게 쏘아붙이지만, 방황하는 청춘의 재능을 발견하고 넌지시 손 내밀어 준다. 20대 배우와 “라면 먹고 갈래요?”를 주고받고, 아역 배우에게 존칭을 쓰면서 배려하는 연기는 윤여정이 했기에 자연스럽다. “넌 나이 들지 마라, 이미 꼰대잖아” “너는 안 늙어봤지만, 나는 젊어봤거든”과 같은 대사는 꼰대와는 거리가 먼 어른 윤여정이 실제 생활에서 했을 법한 말들이다.

실제로 이 역할은 영화 기획 단계부터 배우 윤여정에게 맞춰진 캐릭터였다. 처음 시나리오상에 배역 이름이 ‘윤여정’ 실명으로 적혀 있을 정도였다. 윤여정은 지난 26일 인터뷰에서 “내가 할 만한 대사를 누군가 썼구나 싶었다”고 시인했다. 그는 시사회에서도 “은퇴 후 편안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집에 가지고 있던 옷들을 입고 촬영했다”고 말했다.

김덕민 감독은 “젊었을 때 이런 좋은 어른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나도 좋은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윤여정은 “그런 말(좋은 어른)은 정말 부담스럽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만 강아지들을 중심으로 갖가지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는 산만하다.

영화 ‘소풍’(연출 김용균)에서 나문희가 연기한 ‘은심’은 서울 집을 뒤로하고, 훌쩍 고향인 남해로 내려간다. 자신을 돈으로 보는 것 같은 ‘웬수’ 같은 자식은 꼴 보기 싫고, 파킨슨병으로 손은 덜덜 떨린다. 여기에 더해 자꾸 어렸을 적 엄마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평생 친구이자 사돈지간인 금순(김영옥)이 함께 여정에 나선다.

나문희가 연기한 은심은 파인 주름살과 시퍼런 핏줄이 선명하게 보이는 약해진 팔목만큼 기나긴 세월을 힘겹게 거쳐온 우리네 어머니나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다. 가족 모두에게 헌신했지만 정작 자신은 혼자 남아 외로운, 내면엔 누구보다 싱그럽고 풋풋한 소녀다움을 간직한 은심은 ‘거침없이 하이킥’의 ‘호박고구마 아줌마’로 대표되는, 대중이 생각하는 배우 나문희의 모습과 상당 부분 닮아 있기도 하다.

소풍 같은 은심과 금순의 여정엔 어느덧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한다. 별을 보며 “그 많던 동무들은 어디로 갔을까”를 내뱉는 은심의 독백은 나문희가 했기에 더 먹먹하다. 못난 자식을 향한 “그래도 너 믿어”라는 대사 역시 그렇다. 또 눈빛이나 손짓만으로 축적된 세월을 불러내고, 또 비워내는 연기도 인상적이다. 두 영화는 오는 2월 7일에 나란히 개봉한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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