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워도 해내는 ‘캔 두 정신’… 노사관행 개혁 앞장 ‘재계 큰어른’[Leadership]

김성훈 기자 2024. 1. 2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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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ship - 손경식 경총 회장
전자 경험없이 삼성 창업 참여
발로 뛰며 합작투자·협력 제안
“지성인은 사회 위해 책임 봉사”
대한상의·환경보전협회장 역임
韓 사회만연 ‘반기업 정서’ 타파
영상 공모·청소년교육 프로젝트
노조법 저지·최저임금 안정화
재계 입장 대변하며 ‘큰 역할’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지난해 3월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근로시간제도 개편 등 노동개혁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온화한 미소가 트레이드 마크다. 손 회장에 대해선 배려심이 깊고 유연하다는 평가가 제일 많다. 그러나 숙고를 거쳐 일단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강단 있게 밀어붙이는 결단력이 손 회장의 진짜 리더십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939년생인 손 회장이 재계의 ‘큰어른’으로서 지금도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배경에도 목표를 반드시 완수하고 책임을 피하지 않는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다. 손 회장은 2018년 3월 경총 회장으로 취임한 뒤 내부 시스템을 과감히 혁신, 노사관계 전문 단체를 넘어 종합경제단체로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무리 어려워도 해낸다” = 손 회장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왔다. 하지만 보다 창의적이면서 세계 무대를 향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경영인이 되고자 마음을 먹었다. 대학 졸업 후 은행에 잠시 다녔던 그는 미국 유학을 떠났고, 오클라호마주립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국내로 돌아와 삼성전자 창업 과정에 참여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에 불과하던 시절로, 한국에서 전자산업은 그야말로 초창기였다. 당시 판매되는 전자제품들은 마쓰시타, 도시바, 샤프, 미쓰비시, 캐논 등 일본 제품이 주류였다.

손 회장에 따르면 당시 5명으로 창업을 시작했는데 모두 전자공업 관련 경험이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발로 뛰면서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 합작투자와 기술협력을 제안하고 선진국의 전자공업을 배웠다고 한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우리는 해낸다’는 ‘캔 두(Can do)’ 정신으로 회사를 세웠다. 그 회사는 세계 굴지의 기업이 됐다. 손 회장은 젊은 최고경영진의 의지, 엔지니어들의 노력과 열정이 성공의 원동력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이후 손 회장은 삼성화재 CEO로 옮겼는데, 보험업 역시 아무런 지식과 경험이 없던 분야였다. 손 회장은 미국의 보험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미국 하트퍼드 화재보험 등을 방문해 보험 경영을 익혔다. 5위권이던 회사를 1위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그는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캔 두’ 리더십으로 회사를 이끌어 결국 목표를 이뤄냈다.

◇“국가에 대한 봉사는 지성인의 책임” = 손 회장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경제·산업계 모든 일은 손경식 회장을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방 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해 온 이유다. 경총 회장을 맡기 전에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환경보전협회 회장,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손 회장은 불가피한 사정이 아니라면 어떤 자리든 도맡아 일한다. 현재 경총 회장직도 무보수지만, 한국경제를 위해 기업을 대표하는 경제단체에서 봉사한다는 사명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손 회장은 평소 “지성인들은 더 많은 봉사를 해야 한다”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내가 맡았고, 나에게 주어진 일에는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업무를 할 때는 1분, 1초도 헛되이 쓰지 않는다’는 원칙도 손 회장이 반드시 지키고자 하는 리더의 덕목이다. 경총 관계자들에 따르면 손 회장은 출장을 갈 때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항상 밤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이용한다. 이동 시간에 잠을 자고, 출장지에 도착하면 바로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서다. 경총 관계자는 “출장의 목적만을 생각하며, 항상 업무에서 주인 의식을 강조한다”고 전했다.

◇노동개혁을 위한 열정과 강단 = 노동개혁이 미래 세대를 위한 핵심 개혁과제로 제시되면서 불합리한 노사관계 관행 개선, 법치주의 확립, 노사 간 힘의 균형 회복을 위한 법·제도 개혁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손 회장은 경제계 대표로 앞장서서 노동개혁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손 회장은 노동 관련 제도·규제 개선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 장차관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과 적극적으로 협의했다. 지난해엔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개정과 관련해 오랜 경륜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의견 개진에 나서며 경영계 대표로서 해야 할 역할을 수행했다. 그 결과, 노란봉투법에 대해 지난해 12월 1일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되고 12월 8일 법안이 폐기되는 성과를 이뤄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강화 움직임에도 단호하게 대응했고, 최저임금과 관련해서는 기업의 지불 능력과 법에 예시된 결정기준 등 주요 지표들을 토대로 기업들이 더 이상의 대폭 인상을 감당할 수 없는 실정이란 점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결과적으로 2024년도 최저임금은 사용자위원 안(전년 대비 2.5% 인상된 시급 9860원)으로 결정됐다. 손 회장이 이끈 경총이 기업 경쟁력 강화, 국내 산업 활성화라는 목표를 갖고 강단 있게 대응한 덕에 최저임금 인상률이 물가상승률보다 소폭이나마 낮은 수준에서 결정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손 회장은 올해도 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제도 개선을 유도하는 데 온 힘을 쏟을 계획이다. 근로시간 제도 및 해고·파견 관련 제도의 개선, 연공 중심 임금체계의 개편 등을 위해 정·관계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손 회장의 리더십이 중요한 국면이기 때문이다. 손 회장은 특히 주요 기업과 전문가가 참여하는 노동개혁 태스크포스(TF) 구성을 계획하고 있다. 산업현장의 구체적 애로사항을 듣고 개선방안을 연구, 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제계 대안을 제시한다는 구상이다.

◇반기업 정서 극복에 앞장 = 손 회장은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가 정신이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를 해소하는 것이 곧 경제성장의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손 회장은 특히 2021∼2022년 2년 동안 기업가 정신 알리기에 집중적으로 힘을 쏟은 바 있다. 경총이 앞장서서 대국민 영상 공모전과 청소년 경제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토록 했다. ‘국민과 함께하는 기업’ ‘우리 사회를 위한 기업의 역할’ 등을 주제로 영상 공모를 받아 반기업 정서에 대한 국민인식 개선, 기업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신뢰도 제고를 꾀했다. 특히 청소년기에 올바른 시장경제관을 확립하고 기업가 정신을 키울 수 있도록 전국 중·고등학교 100곳에서 4800여 명을 교육했다.

손 회장은 “기업가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라고 했다. 이병철·정주영·구인회 등 많은 창업주가 부강한 대한민국을 꿈꾸며 도전과 혁신을 지속했고, 그 결과 ‘한강의 기적’이라는 눈부신 성과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손 회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급속한 기술의 진보는 다양한 신산업을 태동시키고, 이를 성장기반으로 또 다른 기술혁신을 낳는 선순환 구조를 통해 사회·경제구조의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며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기업가 정신이 곳곳에서 발휘돼 우리 기업들의 연구·개발(R&D)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손 회장은 기업들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재들이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기업문화를 구축하도록 설득해 왔다.

◇합리적 소통은 기본 = 손 회장은 과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으로 사회적 대화에 참여했고, 2019년 2월 ‘탄력근로제 개선을 위한 노사정합의’를 이끈 바 있다.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참가해 노사관계 현안 해결과 갈등 해소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기여해 왔다. 손 회장은 지난해 12월 14일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으로 개최된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에도 참석해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총은 손 회장의 뜻에 따라 노사갈등·단체교섭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원사를 대상으로 노사관계 합리화와 체계적 노무관리 시스템 구축 지원 사업을 추진했다. 특히 일부 대기업 협력사 및 계열사로부터 단체교섭권을 직접 위임받아 법과 원칙에 따른 대응을 통해 합리적 노사관계의 기틀을 마련했다. 경총을 통해 ‘단체교섭 체크포인트’를 발간해 임금체계 개편, 정년연장, 임금피크제, 근로시간 유연화 등 주요 교섭 쟁점을 파악하고 기업들이 유의해야 할 사항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정식(왼쪽부터) 고용노동부 장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ESG 경영위 출범 주도… 정부 부처와 소통하며 ‘규제→자율문화’ 강조

친환경선박 건조실적 인정 등
기업들 건의사항 해결 이끌어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위원회 출범을 주도, 기업 사이에서 이제는 필수가 된 ESG 경영 시스템 도입에 앞장섰다.

경총에 따르면 손 회장은 세계 기후변화 대응과 책임투자 확대, 글로벌 공급망 관리 등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우리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소신이 있었다. 하지만 각 분야의 국내 대표 기업들 사이에서도 초기 ESG 이슈에 대응하는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다. 이에 그는 주요 기업들이 참여하는 ESG 경영위원회 출범에 공을 들였고, 그 결실로 지난 2021년 4월 제1기 ESG 경영위원회가 닻을 올렸다. 10대 그룹을 포함한 18개 주요 그룹의 사장단급 대표가 참여하는 민간 최고위 ESG 협의체다.

손 회장은 처음부터 만장일치로 위원장에 추대돼 ESG 위원회 업무를 챙겼다. ‘ESG 자율경영 실천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및 코스닥협회와 업무협약을 맺어 국내 경제단체 최초로 중견·중소기업을 위한 ‘ESG 스타트 매뉴얼’도 발간했다. 손 회장은 정부 부처나 주한 외교사절단, 국제기구 등 만나는 인사마다 ESG 경영위원회를 소개하고 이해관계자 간 소통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인들은 손 회장에게 ‘ESG 전도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ESG 경영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ESG가 경영 화두로 부각되는 것을 내심 부담스러워하던 기업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위원회가 내세운 비전이 ‘기업주도 ESG 자율경영 확립’이었기 때문이다. 분기마다 발간하는 회보에 각 그룹의 ESG 경영 추진 현황뿐 아니라 애로사항을 수록해 정부 부처와 국회 ESG 포럼 소속 여야 의원 58명, 그리고 우리 기업의 주요 투자자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등에 배포했다. 글로벌 경쟁의 최일선에 있는 우리 기업들의 ESG 경영 노력을 적극 알려서 규제보다는 기업 자율로 ESG 경영이 이뤄지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특히 지난해 5월 제2기 ESG 경영위원회 출범 이후로는 ESG 자율경영에 장애가 되는 불합리한 규제의 개선을 적극 건의해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손 회장은 조선업계 애로사항을 파악해 선주만 신청할 수 있었던 ‘친환경선박 인증’을 제조사도 신청할 수 있게 하고, 친환경선박 건조실적이 친환경 녹색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시행령 개정을 이끌어냈다. 순수 지주회사의 경우 임원급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의 겸직금지 의무를 완화하는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개정도 견인했다.

돌봄·요양 등 사회서비스에 대해서는 ESG 경영위원회를 통해 구조적 한계를 분석, 수혜대상을 중산층으로 넓히고 다양한 지불제도 도입과 대기업 참여를 통해 사회서비스 전달체계를 고도화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이는 정부의 제1차 사회서비스 기본계획(2024∼2028)에 반영됐다.

손 회장은 해외 입법례에 비해 성급하게 추진되는 규제에 대해서는 비판했다. 기업에 실사 의무를 부여하는 인권·환경보호법안 대응이 대표적이다. 손 회장은 부당한 경영개입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이나 하도급법과 충돌 가능성이 크고, 최대 5년까지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ESG 공시제도 도입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 2025년부터 실시하기로 했던 ESG 공시 의무화 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하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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