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방폐장 확보까지 최소 30년… 지금이 ‘특별법’ 제정 최적기”

박수진 기자 2024. 1. 2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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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학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장 인터뷰
국내 ‘처분기술 개발 연구’ 활발
여야의견 통일·정부의지도 강해
법 제정땐 선도국 금방 따라잡아
원전건설-해체-방폐물은 유기적
패키지로 개발해야 경쟁력 제고
올해 1월 취임한 정재학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이 지난 24일 서울 중구 삼선빌딩에서 진행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백동현 기자

정재학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은 지난 24일 “여야 모두 입법 취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행정부의 의지도 어느 때보다 강한 만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 특별법)을 제정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며 “기술적으로는 격차가 크지 않은 만큼 특별법 제정으로 제도만 정비되면 선도국을 따라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1월 제11대 방사성폐기물학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이날 서울 중구 삼선빌딩에서 진행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특별법 제정이 또 무산되면 앞으로 상당 기간 법제화가 어려울 것”이라며 특별법 국회 통과를 강력히 촉구했다. 고준위 특별법은 사용후핵연료 같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을 위한 부지 선정 절차 및 일정, 유치 지역 지원에 관한 근거가 담긴 법으로 이번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방폐물학회는 방폐물과 사용후핵연료에 관한 학술 발전과 기술 교류를 위해 2003년 설립된 학술단체다. 정 회장은 2년의 임기 동안 △고준위 방폐물 법제화 지원 △영구정지 원전 본격 해체 준비 및 해체 후 부지의 지속 가능한 재이용 방안에 대한 학술적 논의 착수 △소형모듈원전(SMR)과 후행 핵주기 기술 동반 개발 △모든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성 확보에 집중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방폐물 종류별 저장·운반·처리·처분 관리의 단계별 안전성만 강조하던 그동안의 ‘개별적 접근’에서 벗어나 방폐물 전 과정의 원활한 흐름에 기반한 ‘통합적 접근’으로 패러다임 대전환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시점에서 방폐물에 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는.

“원전과 부산물인 방폐물은 하나의 몸통처럼 엮여 있다. 방폐물에 관한 논의가 원자력 기술 도입과 함께 시작돼야 한다는 의미다. 고리1호기가 1978년 상업운전에 들어가고 거의 반세기가 지났다. 이 기간 내내 책임을 방기해 온 셈이다. 방폐장 확보 등 고준위 방폐물 최종 관리단계(영구처분)까지 완성하는 데 최소 30년 이상 장기간이 소요된다. 지금 시작해도 빠르지 않다. 더 늦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바로 착수해야 한다. 핀란드, 스웨덴 등 고준위 방폐물 관리 선도국은 1970년대 말∼1980년대 대형 원전 도입과 거의 동시에 이 문제를 고민했다. 40년이 경과한 이제야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방폐물 관리는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 1992년 리우회의에서 ‘안전하고 환경적으로 건전한 방폐물관리’가 ‘어젠다(Agenda) 21’의 한 챕터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쌓아두고만 있었다. (원전 내에서 사용된 작업복 등 방사능 함유량이 미미한) 중·저준위 폐기물의 경우 2015년부터 영구처분이 시작돼 선도국과 관리 수준이 거의 유사하다. 문제는 사용후핵연료 같은 고준위로, 원전에서 발생한 후 부지에 저장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물론 연구·개발(R&D)을 열심히 해온 덕분에 처분 기술 개발은 선도국 대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관리시설 확보를 위한 부지 선정 과정과 논의가 제로(0)에 가깝다는 점이다. 고준위 특별법 제정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고준위 특별법 폐기 시 국민에게 어떤 피해가 가나.

“고준위 방폐물 관리는 30∼40년 이상 걸리는 초장기 사업이다. 중간에 여러 의사결정 단계가 있어 견고한 법률적·제도적 체계가 필수적이다. 특별법 없이 정부정책으로 추진할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정권교체 등 정치적 상황에 따라 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다. 실제로 2013∼2015년 공론화를 거쳐 2016년 ‘1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20대 국회에서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2019∼2021년 재검토 위원회를 통한 공론화, 2021년 ‘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 수립, 특별법 발의가 다시 한번 이뤄졌지만 이번에도 회기만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의 근본 원인이 바로 ‘입법의 불비(不備)’다. 20년 동안 답보하다가 2005년 특별법 제정 후 그해 부지 선정에 성공한 중·저준위 사례가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미국, 프랑스 등 선도국을 보면 행정부가 모두 떠안지 않고 입법부가 제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법과 제도 없이 하다 보면 과거 안면도·굴업도·부안에서 발생한 갈등처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 지금 여야 모두 입법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고 행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 일반 국민 모두 특별법 제정을 독려하고 있는데 왜 (통과가) 안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저장용량이나 관리시설 도입 시점 명시 등 사실 쟁점이 아닌 부분을 쟁점화하며 ‘워딩’을 갖고 싸우고 있다. 이번에 무산되면 앞으로 상당 기간 법제화가 어렵다고 본다.”

―이번 정부 원전 정책 평가는.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기존 원전 계속운전, SMR 개발 투자 이외에 아직 가시적인 원전 확대 정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신한울 3·4호기 이후 대형 원전을 더 지을 건지, SMR을 얼마나 넣을 건지 명확하지 않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언제 어떤 원전을 얼마나 도입할 것인지에 대한 큰 틀의 계획이 있어야 한다. 또 후행 핵주기 사업도 원전 사업과 별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SMR만 봐도 원자로에 대한 고민만 해서는 안 된다. 증가하는 수요에 대비해 안정적 연료공급을 준비하고 안전한 해체 기술 및 방폐물 관리까지 패키지로 개발해야 경쟁력이 높아진다. 현재 제정 중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구체적인 그림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정치권에 제안하고 싶은 바는.

“에너지 자체는 이념이 없고 중립적이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편향성을 부여했다. RE100(재생에너지 100%)이든 CF100(무탄소에너지 100%)이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지 않나. 탄소중립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떤 에너지를 쓸 것인지에 대한 정답은 명확하다. 지속 가능한 발전 측면에서 경제적이고 안정적이며, 경쟁력 있는 기술이 살아남아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국가별 특수성도 반영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원전은 뒤떨어지지 않는다. 원전 업계 내부에서도 ‘이용’과 ‘해체 및 방폐물’이 상반된다고 보는 견해가 일부 있다. 하지만 원전해체와 계속운전은 상호보완적이고 건설-운영-해체-방폐물 문제는 모두 연결돼 있다. 반핵, 친핵으로 만들어놓은 틀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박수진 기자 sujininv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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