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기후선거’ 출발점으로…국민 60% “기후공약 투표 의향”

곽정수 기자 2024. 1. 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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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H-ESG 포럼’ 개최
기후 싱크탱크 ‘2024 정책 어젠다’ 제안
“후보들 기후위기 공약 내놔야” 한목소리
전기요금 정상화로 한전 적자 해결을
분산에너지 활성화·지역 차등요금 강조
재생에너지·탄소배출권 거래 확대도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2024년 기후위기 정책 어젠다’를 주제로 열린 에이치-이에스지(H-ESG)포럼에서 기후위기 싱크탱크인 기후변화센터, 기후솔루션,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녹색전환연구소, 에너지전환포럼(가나다 순) 대표들이 토론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4월 총선에서는 모든 정당과 후보자들이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비전과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아야 합니다.”

국내 기후위기 싱크탱크들이 ‘2024 기후위기 정책 어젠다’를 주제로 열린 ‘에이치-이에스지(H-ESG) 포럼’에서 올해 총선을 ‘기후선거’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싱크탱크들은 또 기후위기 관련 핵심 정책 의제로 전기요금 정상화를 통한 한전 적자 해결, 분산에너지 활성화와 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 탄소배출권 거래제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2022년 대선 때 청년들이 기후를 단일 이슈로 한 후보자토론회를 추진했는데, 후보자 한명의 거부로 성사가 안됐고, 그분이 지금의 대통령”이라면서 “올해 총선을 시작으로 2027년 대선까지 기후문제를 제대로 정치 의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합토론의 사회를 맡은 이원재 경제평론가는 “이번 총선에서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킬 법이 무엇인지 분명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후원으로 열린 포럼에는 기후변화센터, 기후솔루션,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녹색전환연구소, 에너지전환포럼(가나다순)이 참여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의 H-ESG 포럼은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 잡은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에 관해 토론하고 대안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2021년 출범했다. H는 ESG가 통합적 접근 (Holistic)과 인간 중심적 변화(Humanity)를 중시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의 선거는 다른 정치 쟁점에 밀려 기후위기가 핵심적인 정치 의제로 다뤄지지 못했다. 2년 전 20대 대선에서 대다수 후보가 10대 공약에 기후위기 공약을 넣는 성과가 있었지만 기후위기가 선거의 최대 화두로까지 부각되지는 못했다. 선진국의 경우 기후변화 대응이 이미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과 차이점이다. 2022년 호주 총선에서 집권 자유당이 패배한 것은 산불·가뭄·폭우 등이 빈발하는데도 환경 문제에 소극적이고, 친석탄산업 정책을 편 반면 노동당은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의제로 들고나온 게 주효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녹색전환연구소, 더가능연구소, 로컬에너지랩이 참여한 ‘기후정치바람’이 국민 1만7천명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국민인식 설문조사’를 한 결과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 또는 정당이 있다면 평소의 정치적 견해나 지지정당과 다르더라도 총선에서 투표하는 것을 고려하겠다는 응답이 각각 62.5%와 60.9%에 달했다.

박정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축사에서 “3개월 뒤 총선은 향후 100년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가 될 수 있다”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감을 갖고 포럼에서 제시한 기후위기 정책 어젠다를 국회에서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기후위기가 지구와 인류의 최대 위협 요인으로 꼽히는데도 우리나라의 기후정책은 여전히 후순위에 머물러 있다”면서 “총선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위대한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이원재 경제평론가(사회),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 사진 김경호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한전 적자 해결과 에너지 요금 정상화

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은 “에너지 생산을 위한 원료를 대부분 수입하는데, 생산 원가가 요금에 적절히 반영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에너지 요금체계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전 세계 주요국 중에서도 매우 저렴해서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세대에게는 낮게 책정하고, 미래세대에게는 큰 부담을 전가하는 에너지 요금은 세대 간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면서 “에너지 요금 정상화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알려서, 생산원가와 이용자 부담 원칙을 반영한 적정한 요금인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언론을 향해서도 “전기요금이 오르면 ‘난방비 폭탄’이라고 기사를 쓰는 일이 이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유진 소장은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이를 위해 독립적인 에너지 가격 결정기구를 구성해야 한다”면서 “전기요금에서 에너지복지와 산업지원을 분리하고, 요금인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에너지빈곤층을 지원하기 위해 에너지복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는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화석연료 가격 급등으로 인해 전력구입 금액이 급증했기 때문”이라며 “이를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탓으로 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연금의 한전 투자(지분 확대)는 적자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국민연금의 ‘탈석탄’을 촉구했다.

■ 분산에너지 활성화와 지역별 차등요금

기후변화센터는 지방정부가 주도적으로 분산에너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을 제안했다. 김소희 사무총장은 “분산에너지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주도적 역할과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을 지정할 때 진입장벽을 완화해서 적절한 계획을 수립한 지방정부는 모두 대상으로 지정하고, 전력자립률에 따른 차등지원, 건물·수송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성과에 연계한 인센티브 제공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소장도 “분산에너지 특별법 시행에 맞춰 17개 광역 지자체의 탄소중립 실현과 에너지 전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지역 탄소중립·에너지 센터 지원을 광역시도당 100억원 규모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분산에너지는 에너지 사용지역 인근에서 생산·소비하는 일정 규모 이하의 소규모 에너지이다. 국회는 지난해 6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육성, 분산에너지 설치 의무화, 지역별 요금 차등화 등의 내용을 담은 분산에너지 특별법을 제정했다. 6월 중에 시행되는 특별법은 대규모 전력 수요처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대형 발전소와 장거리 송전망으로 이뤄진 현행 중앙집중형 전력공급체계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보고, 분산에너지 확대를 통한 전력계통 안정화, 국가 전반의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전력수급 기반을 마련하는 게 목적이다.

에너지전환포럼의 석광훈 전문위원은 “정부가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전력을 가스발전과 송전선로 건설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수도권의 송전선로는 아마 과도한 밀집으로 송전선로 간 상호간섭과 정전위험이 커 현실성이 없다”면서 전기요금제를 선진국형인 지역별 차등요금제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막대한 송전·급전비용 차이를 투명하게 반영하면, 기업들이 전기요금이 비싼 수도권 대신 전기요금이 싼 지방으로 자발적으로 내려갈 것이기 때문에 지방소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기요금이 오르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행정수도 이전 때와 유사한 정치적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초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재생에너지 확대

기후위기 싱크탱크들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2030년까지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로 한 파리기후협정 목표에 부합하려면 재생에너지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는 “(선진국 기업들이 요구하는)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약속)은 한전에게 석탄과 원자력 발전을 종료하라는 요청과 유사하다”면서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목표를 (윤석열 정부가 낮춘 21.6%에서) 40%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최근 10년간 해상풍력 발전사업허가를 취득한 사업 중에서 인허가를 완료한 것은 2%에 불과하고, 태양광 발전은 기초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의한 이격거리 규제로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빠르고 간편한 인허가를 위해 중앙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재생에너지 사용 기업의 전기요금 부담을 키우는 ‘피피에이(PPA·직접전력구매계약) 전용 요금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PA전용 요금제는 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전력의 일부를 조달하고, 나머지는 한전으로부터 공급받을 때 적용하는 요금방식으로, 기업들의 반발로 시행이 연기된 상태다.

이유진 소장은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전력시스템 구축을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올해 수립할 주요 계획에 반영해야 한다”면서 “단기적으로는 전력수요 감축과 수도권 재생에너지 설치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국내 주요 태양광 기업들이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 계속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한국형 발전차액지원제도(FIT·재생에너지 거래가격이 기준가격보다 낮을 경우 차액을 지원하는 제도) 재개, 소규모 태양광에 대한 전력계통 무제한 접속보장제도 지속 등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녹색일자리 창출과 연계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 탄소배출권 거래제 활성화

기후변화센터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시행 중인 한국형 배출권거래제도(K-ETS)와 관련해 “배출권 유상할당 비율과 시장 유동성이 모두 낮다 보니 배출권 거래제 활성화를 막고, 배출권 가격하락을 야기한다”면서 ”배출권 할당 대상업체 수의 변경과 무관하게 연간 배출허용총량을 사전에 제시하고, 고정값을 설정하는 등 배출허용총량 결정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에 대해 유상할당 비율 일괄적용을 의무화하고, 유상활동 경매기금을 활용해서 법인세 감면 등 인센티브 지급을 확대할 것도 제안했다. 그는 이어 배출권 최저·최고 거래가격을 설정하고, 최저가격 발동기준을 올려서 향후 배출권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신호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소장은 “(2025년까지 10%로 높이기로 한) 탄소배출권 유상할당을 전환부문(발전부문)에 대해서는 100%로 높이고, 산업부문도 20~50%까지 높여야 한다”면서 배출허용총량 결정방식 개선에 찬성했다.

■ 기타 의제들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은 “건물·수송부문은 전환·산업부문과 달리 효율 향상을 통한 에너지 소비 감소와 수요의 전기화가 탄소중립을 위해 필수인데, 전환의 주체가 개인이어서 소비자 행동양식의 변화가 중요하다”면서 “건물의 단열 등급 강화, 고효율 기기 사용, 지역난방, 히트펌프 등 난방의 전기화, 대중교통 확대, 전기차와 수소차 확대, 친환경 철도로 전환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녹색전환연구소는 태안·삼천포 등 석탄발전 폐쇄 지역의 피해 최소화 등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대책 마련,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지역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 정부가 2026년 이후로 연기한 ESG 공시 규제 조기도입, 공공·대중교통 투자 확대와 전기화 추진 등을 제시했다. 기후변화센터는 “과학에 기반한 기후·에너지 교육 의무화와 기초교과 반영이 필요하다”면서 “에너지를 정쟁의 이슈가 아닌 미래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필수교육 분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전환과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솔루션은 기후테크(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기술) 혁신가를 위한 공정한 전력시스템 구축을 통해 재생에너지와 유연성 자원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전력계통 접근 보장, (시장가치가 크게 떨어진) 좌초자산인 석탄발전의 보상과 조기 종료 등을 제시했다.

기후테크 투자회사인 소풍벤처스의 한상엽 대표는 토론에서 “기후테크와 탄소중립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기회로 접근할 필요가 있고, 한국이 가진 산업 역량을 이용해 선도적인 전환을 이뤄내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기후테크 정책 관련 정부부처와 기관들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구축, 정책자금이나 공공자금 지원을 통한 기후 재원 마련, 기후분야로 자금이 흘러들게 하기 위한 인센티브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은 “기후금융 측면에서 ESG가 잘 작동하려면 기후변화 대응을 잘하는 기업, 리스크가 적은 기업이 돈을 더 잘 버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또 투자자와 금융기관이 어느 기업이 잘하고 못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공시제도가 만들어져야 하고,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이 ESG와 기후변화 요소를 고려해서 투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녹취 노영준 보조연구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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