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박경석의 자부심… “고통스러워도, 고통이 기쁨 아닌가”
장애인 이동권·탈시설투쟁은 비장애인에 주는 선물
“늙어서 못 움직이면 요양‘시설’행, 이게 좋습니까”
1. 1983년, 경주 토함산에서 행글라이더 추락사고를 당하다.
2. 1999년, 지금의 활동 기반이 된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나다.
3. 2001년, 서울역 지하철로를 점거하고,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고에 항의하다.
4. 2005년, 현장에서 장애인권리 행동을 하는 전장연을 건설하다.
5. 2006년,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를 6시간 동안 온몸으로 기어가다.
박경석(64)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에게 인생의 다섯 가지 장면을 꼽아달라고 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1983년 행글라이더 사고는 박경석의 인생을 바꾼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었다. 그 뒤 5년의 은둔과 칩거를 거쳐 대학 재입학과 함께 평범한 사회복지사의 꿈을 꾸었으나, 결국 운명처럼 펼쳐진 장애인운동과 만나고 말았다.
“존중은 쟁취하는 것, 동정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위 다섯 가지 장면에는 “존중은 쟁취하는 거지, 동정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명제를 실천한 한국 장애인운동의 역사가 집약돼 있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는 이 역사와 직접 맞닿아 있다. 2021년 12월3일 처음 시작한 지하철 출근길 시위도 지난 22일로 벌써 57차를 맞이했다.
박경석 대표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 단단함을 구성하는 것은 자부심이었다. 이동에 대한 권리와 각종 제도개선에 대한 요구를 조직해 실질적 변화를 끌어냄으로써 세상의 기준을 이동시켰다는 강력한 자부심이었다. 이는 욕설이나 혐오로 꺾일 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숱한 세월 동안 현장의 투쟁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지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서울시청에서 데모하다 왔다며 오세훈 시장이 해고한 권리 중심 공공일자리 중증장애인 노동자 400명에 관해 이야기했다. 지하철에서 강제퇴거를 당하듯이 매번 뒤로 밀리지만 끝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관해 이야기했다. 당장 장애인에게 필요한 조치와 제도와 예산에 관해 이야기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등 장애인 투쟁의 성과를 거둘 때마다 비장애인들이 어떤 편익과 수혜를 누리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올해는 정말 거친 시위가 아니라 대화로 풀어가길 간절히 원한다면서 4월 총선을 위한 캠페인 정당인 탈시설장애인정당을 창당했다고 했다. 총선에서 장애인의 권리에 투표해 달라고 했다.
박경석 대표는 23년간 33개의 훈장 아닌 훈장을 달았다. 2001년 1월22일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수직 리프트 추락 참사에 항의하며 그해 2월6일 서울역 지하철로를 점거한 이후에 얻은 전과다. 30년 가까이 장애인 인권운동의 최전선을 휠체어로 누빈 그를 서울 종로구 동숭길 전장연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비장애인 박경석이 지금의 박경석을 만난다면
– 몸은 괜찮나요? 22일 오전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 ‘57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하다가 다치셨던데.
“내팽개쳐졌죠. 강제퇴거 안 당하려고 쇠사슬로 계단 난간에 팔을 묶었는데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이 잡아당기니까 팔이 부었고요. 휠체어째 끌고 가는 과정에서 떨어졌어요. 하반신 마비라서 욕창이 많이 발생합니다. 욕창에 상처가 나고 목에 찰과상 입고 해서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찍었죠. 다행히 뼈가 부러지지 않아 진통제만 받고 퇴원했어요. 아무래도 한번 타격을 받으면 몸의 부담감이 다르게 지속돼요.”
–1983년 이전의 박경석, 즉 젊은 비장애인 박경석이 지금 장애인 운동가 박경석이 사는 모습을 보면 뭐라 할까요?
“그때 박경석은 지금의 박경석을 안 봤겠죠. (웃음) 봤다면 ‘불쌍하다’고만 할 거예요. 그때는 소아마비라고 부르던 지체장애인을 몇 번 우연히 볼 기회밖에 없었어요. 장애를 이해할 수도 없었고, 특히 본인이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죠. 장애를 당했을 때도 이대로 사느니 죽겠다는 생각이 강했으니까요.”
–전장연 전에 전장협이 있었지요?
“1993년에 노들장애인야학이라는 단체에서 교사활동을 시작했어요. 대학생들을 포함 젊은 교사들이 돈을 걷어 교육받지 못한 장애인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그때 교장을 하면서 전장연 전 단계의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전장협)라는 단체의 조직국장으로 일했어요. 그런데 전장협이 1999년경 망해버렸어요. 국가보조금은 1원도 받지 않고 회비와 후원금으로만 운영하는 데다 보니 매우 가난했고 힘들었어요. 전장협은 한국장애인연맹에 통폐합돼 버리죠. 저로서는 노들야학만 남고 다 끊겨버렸어요.
그러다 2001년 1월22일 서울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수직 리프트 추락 참사가 일어나면서 이동권 연대 결성해서 이동권 의제만 갖고 한 3~4년 싸웠어요. 이것만 다루면 안 된다, 전체 장애인의 의제를 갖고 현장에서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게 하자고 하면서 2005년에 전장연을 결성한 거죠.”
당신이 탄 지하철 승강기, 장애인들이 만들어준 것
–22일 아침 4호선 혜화역에서 하신 것처럼 출근길에 지하철 탑승하는 시도를 한 게 57차더라고요. 지치지 않으세요?
“1983년에 장애를 입은 뒤 5년 동안 집에 혼자 있었어요. 그때는 ‘느끼지 못해’ 힘들었어요. 행복, 고통, 불행, 이런 것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시체처럼 무감각했죠. 괴로운 것도 없고, 감흥도 없고, 그게 힘들 때의 마지막 단계인 것 같아요. 지금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 많습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해요. 고통스럽더라도 고통이 기쁨이 아닌가. 고통이 있어야지 기쁨을 느낀다는 거였어요.
행글라이더 사고로 비극적 운명이 내게 다가왔지만, 그것도 프로메테우스처럼 내게 주어진 삶이었어요. 싸우면서 확신이 생겼던 것 같아요. 노들야학에서 학생과 교사들은 서로 함께 가르치며 배웠어요. 그들의 힘으로 이동권의 힘을 실질적인 투쟁으로 만들어온 자부심이 저를 계속 남아있게 했어요. 굉장히 자부심이 있어요. 존중은 쟁취해야 하는 거지, 동정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알게 됐는데 안 싸울 수 없죠.”
–전장연의 지하철 투쟁은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지하철에서 투쟁하지만 지하철의 문제만 제기하는 건 아니죠?
“2001년부터 지하철 승강장에서 23년을 외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잘 몰라요. 무책임과 무관심을 뚫고 전장연은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 같은 장애인거주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지금도 외치고 있답니다.
그 외침의 첫 출발이자 중요한 의제는 장애인 이동권이죠. 전장연은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특별교통수단을 포함한 모든 대중교통 이용을 이야기합니다. 전장연 투쟁으로 오히려 비장애인들이 더 많은 혜택을 입는다고 보고요. 서울 지하철의 95%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습니다.
우리 모두 늙어가잖아요. 휠체어 탄 장애인들이 투쟁해서 쟁취한 이동권 문제가 모든 시민에게 다 연결되더라고요. 저희가 최종적으로 외치는 건 발달장애인들이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지역사회로 탈출(exodus)하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이 죄인이 아니잖아요. 우리 모두 지역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살자는 거예요. 좀 이따 얘기하겠지만, 이것도 비장애인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서울 지하철 엘리베이터 100% 설치와 저상버스
–2024년, 올해는 어떤 권리를 이야기하실 건가요?
“지하철 문제는요. 예전에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그랬지만,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많이 좋아졌는데 왜 지하철에서만 싸우냐’는 지적과 볼멘소리를 해요. 저희는 먼저 리프트 타다 죽은 분들에 대한 서울시장의 공식 사과를 요구합니다. 2002년 발산역, 2017년 신길역, 2022년 양천향교역에서도 사고 났었죠. 사과가 한 번도 없었어요.
스크린도어가 없어서 시각장애인이 떨어져 죽은 경우도 있고요. 물론 서울 지하철이 다른 도시의 지하철보다 월등히 좋다는 평가 인정해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어요. 저 역시 지하철과 승강장의 간격 차이 때문에 떨어져 다친 적이 있어요. 발판을 불러와야 하는데 인력이 잘 배치돼 있지 않죠.
서울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겠다는 약속도 했어요. 이명박 시장은 2004년까지, 그 사이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있었고, 박원순 시장이 2022년까지 다 한다고 했어요. 두 차례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어요. 마지막 남은 5%는 엘리베이터 뚫고 나오는 곳이 사유지라는 문제가 있다는데 해결해야죠. 오세훈 시장이 2024년까지 해결 약속을 했으니 지켜보려고 합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2001년에 10%밖에 없었는데, 장애인들이 떨어져 죽고 다치는 것을 지켜보며 몸뚱이로 전장연이 싸워서 95%가 된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저상버스입니다. 저희는 일반 계단버스를 차별버스라 하는데, 이것을 10년 운행하면 대폐차(판매 또는 폐차를 통한 차량 교체)해요. 차량을 바꿀 때 반드시 의무적으로 저상버스로 도입하라는 요구입니다. 2021년 지하철 타기 투쟁을 하면서 교통약자법(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을 개정해서 의무화시켜놨어요.(14조7항)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예산을 반영하지 않고 있어요. 분명한 불법이지만 처벌도 못 해요. 배 째면 그만이죠. 의지만 있으면, 외국 차 도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안 될 게 없어요.”
권리 중심 공공일자리 400명 해고 복원해야
–2023년 한 해를 돌아보면 어떤가요?
“2022년 12월 초에 오세훈 시장이 저희에게 휴전을 제안했어요. 국회 예산 통과를 지켜보자고 선심 쓰듯이 이야기해서 ‘알겠다’고 받아들였죠. 그래서 12월에는 지하철을 안 탔어요. 결과적으로는 저희가 요구했던 장애인 권리 예산이 0.8% 증액됐어요. 장애인 이동권 예산, 교육 예산, 노동 예산과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한 활동지원서비스 예산 모두 포함해 1조3천억원 증액 요구했거든요. 그런데 100억원 정도 증액된 겁니다. 우리는 열받죠. 다시 2023년 1월2일에 출근길 투쟁을 시작했어요. 지난해 10월부터 강제퇴거와 연행을 시작했고요.
오 시장은 게다가 2024년 벽두부터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고용된 400명의 장애인 노동자를 해고해버렸어요. 사업 자체를 폐지해버린 거예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참여하는 노동자는 그동안 시장에서 노동 능력이 없다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돼 버려졌던 최중증장애인들이어요. 그들은 문화예술활동으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홍보하고, 캠페인을 통해 비장애인의 인식을 개선하고 책임 있는 권력에 권리를 이행하라고 촉구하는 권리생산 캠페인 노동자이거든요. 경기도나 다른 지역은 오히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늘거나 이제 시작하고 있는데 서울시만 폐지한 겁니다.”
장애인 광역교통수단 위한 271억원 증액 요구
–어떻게 대응하실 계획인가요?
“2023년 예산은 1조3천억원 증액 요구했는데 윤석열 정부에서 씨알도 안 먹혔죠. 지난해에는 장애인 이동권 중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271억원만 해주면 출근길 투쟁 안 하겠다고 협상을 했는데 무산됐어요. 기획재정부가 마지막 단계에서 거부하고 통과를 안 시켜주는 거예요.
특별교통수단이 중증장애인 광역이동수단이에요. 휠체어 이용장애인들이 탈 수 있는 시외버스 한 대도 없는 상황에서 광역 이동에 있어 특별교통수단은 매우 중요합니다. 장애인들이 리프트 장착된 승합차 이용하려고 몇 시간씩, 아니 일주일씩 기다리기 예사입니다. 지난해 7월13일부터 교통약자법에서 광역 이동지원을 하는 특별교통수단 의무화했으니 숨통을 틔우려면 271억원 정도가 더 필요하다 했는데 그걸 무산시킨 거예요.
이제는 ‘장애인 권리예산’을 가지고 출근길 지하철 탑승으로 기획재정부에 요구해 왔던 것들을 변화시키려 해요. 그리고 시민들께 총선에서 알리려고 탈시설장애인당을 만들었어요. 선거법상 등록한 진짜 당은 아니고 장애인권리캠페인을 위한 정당(政黨)이 아닌 정당(正當), 가짜 정당입니다. 시민들께 이번 총선에서 장애인권리에 투표해 줄 것을 호소하고 캠페인 방식으로 다가가겠다고 말이죠.
그런데도 출근길 지하철 타는 것을 지속하는 것은 오세훈 시장의 ‘전장연 죽이기’의 갈라치기 혐오 정치 때문입니다. 오 시장에겐 권리 중심 공공일자리 400명 해고한 거 복원하고, 대화해 나간다면 출근길 지하철 타기 안 하겠다 했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어요. 강제퇴거, 강제연행 안 하고 대화를 하겠다고 하면 저희도 협조할 의사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안 나서고 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해봐라? 해봤더니…
–어느 인터뷰에서인가 욕 한 트럭을 먹어도 상관없다고 하셨습니다. 시민들의 욕, 신경 안 쓰이시나요?
“활동가들은 데모하다 욕먹으면 상처받죠. 기사에 달린 악플에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그래도 무관심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부모가 자식 죽이고 같이 죽는 사건들이나, 부모가 장애인 자식을 시설로 보내는 경우도 매우 많은데 관심이 없어요. 그냥 안타까운 일로만 봅니다. 정부의 무책임과 구조적인 사회적 차별에 관심이 없어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혐오와 욕설은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이자, 왜 그동안 무관심했는가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그냥 가만히 있고,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 살아가는 데 유해하지 않으면 장애인은 그냥 불쌍한 사람이에요. 그 불쌍한 사람이 갑자기 출근길에 나와서 부닥치니까 괘씸한 놈이 되는 거죠. 왜 우리가 지하철 타야 하는가를 이야기하지는 않죠. 그 혐오와 차별에 우리의 권리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게 99%가 되더라도 1%의 희망이 있으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장연은 그런 힘이 있어요. 혐오와 욕설이 오히려 싸움 독려하더라고요. 상처를 받지만.
다른 방식으로 해보라 하는 소리도 많이 듣는데, 그럼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안 했냐 묻지요. 노무현·박근혜 정부 때 위원회 같은 곳에 들어가 협의하면서 의견 제시하면 돌아오는 말이 ‘기획재정부가 돈을 안 준다’예요. 협의 내용은 물 건너 가고요. 이게 끝이에요. 대한민국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 안에 든다고 하는데 장애인 지출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끄트머리에 속해요.”
현미경을 들고 우주를 보려 한다
–전장연에 욕을 퍼붓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더 해주고 싶은 말씀은?
“사실 지하철 출근 투쟁 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무겁고 죄송합니다. 다만 이런 문제를 진작 책임졌어야 할 국가권력에 장애인이 당연히 누려야 할 시민의 권리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얘기해달라는 거예요.
이동권은 비장애인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장애인만 시설에 가나요? 비장애인들도 늙어서 능력 없어지면 가족들과 지역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요양시설에 격리되어 사는 것이 능사입니까? 마지막에는 다 시설 가서 살라잖아요. 이런 문화가 당신들에게도 좋냐 이거예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출근길 지하철 컨베이어벨트에서 생기는 당장의 불편함 때문에 전장연이 제기하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 주기를 바랍니다.”
–지하철 출근길 투쟁 나가기 전날 밤, 잠이 잘 오나요?
“긴장되죠. 몇 명이나 나올 수 있을까, 특히 장애인 당사자가 몇 명 나올까 걱정도 되고요. 돈으로 조직하는 게 아니니까요. 처음에는 휠체어 탄 사람이 10명만 나오면 부흥 수준의 기쁨이 있었어요. 부흥했다! 지난 1월22일에는 휠체어 탄 사람이 60~70명 나왔어요. 그것도 아침 8시에 저 멀리 경기도에서 나오거든요. 그러려면 집에서 5시에 나와야 합니다.
매번 과정이 제일 중요하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늘 이 과정을 준비하고 참여하는 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져요. 이 작은 투쟁 하나가 세상의 기준을 이동시킬 수 있다는 흥분감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망원경을 들고 세상을 보려 하기도 하죠, 저는 현미경을 들고 우주를 보려 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동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실제로 세상을 이동시키더라고요. 너무 느려서 힘들지만 느려도 좋아요. 투쟁은 과정이니까요.”
우리는 간디에 맞선 빔 암베드카르와 닮았다
–전장연을 이끄는 힘은 무엇인가요?
“전장연의 힘은 지역사회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겠다는 의지와 가치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전장연은 인도의 간디가 아니라 간디와 맞선 빔 암베드카르(인도의 불가촉천민 출신 사회운동가, 1891~1956)의 행동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쓸모없다가 버려진 사람들, 인도 카스트 제도(신분제)에도 속하지 않아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달리트’(불가촉 천민) 사람들, 대한민국 비장애인 중심 신분사회에서 감옥 같은 거주시설에 격리되고 배제되어 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최중증장애인’들.
그들이 서로 관계맺고 몸뚱이를 보여주며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로 가기 위한 몸뚱이 투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이 함께해요. 그래서인지 전장연에는 젊은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많이 참여해요. 다른 사회단체는 전장연 활동가들을 보며 부러워한대요. (웃음) 전장연을 지탱하게 해주는 중요한 축이 그들이지요.
또 중증장애인들은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승강장을 지키고 있어요. 이런 게 소중합니다. 돈도 매우 중요해요. 정부 보조금을 1원도 받지 않는 전장연에 가치적 활동을 지원하는 후원자들이 많아요. 지하철 요금 후원이라고 해서 1350원 후원 요청을 트위터를 통해 뿌렸는데, 저희 잡혀 가는 거 보면서 시민들이 후원을 많이 해줬어요. 지난해 11~12월 대략 1만명의 시민이 지하철 요금 플러스알파를 계좌로 보내줬어요. 너무 감사해요.”
죄없는 시민들은 정말 죄가 없습니까
–마지막으로 꼭 하실 말씀 있다면.
“총선이잖아요. 저희는 탈시설장애인당으로 장애인 권리를 알리려고 해요. 지하철에서 저희를 혐오하고 욕했던 사람들 있죠. 그 사람들이 아무리 많다 해도, 저희를 지지하는 시민분들이 윤석열 지지자들의 두배 이상은 넘을 거 같아요. 정당한 권리라는 인식이 있지만 방법론 때문에 망설이잖아요. 이번 총선이 기회입니다. 2021년부터 전장연의 출근길 투쟁에서 마주쳤던 이 문제는, 책임있는 정치인에게 심판하는 투표로 해결할 수 있어요.
솔직히 묻고 싶습니다. 장애인들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동하며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23년을 지하철 승강장에서 외친 것을 생각하신다면 죄없는 시민들은 정말 죄가 없습니까? 이번 총선에서는 탈시설장애인당에 가입해주시고 후보의 장애인 권리정책을 보시고 투표해주십시오. 그래야 우리도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무작정 지하철에서 강제퇴거하는 방식으로 목소리 못 내게 하는 건 불가능해요. 강제퇴거는 안 당해요. 왔다 또 갈 거니까. 또 가고 또 가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그 힘은 투표잖아요. 장애인 권리에 투표해 주십사 바랍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어느 고등학생의 행동
박경석 대표는 끝으로 ‘인생의 다섯 가지 순간’에서 하나를 더 추가해 달라고 했다. 2022년 봄 출근길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에 관해서였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전장연을 “비문명적”이라고 공격하면서 지하철 출근길 투쟁에서 시민들의 혐오 섞인 눈빛과 손가락질이 더 심해지던 때였다. 일부 시민들과의 충돌로 시위현장이 아수라장이 되기까지 했다. 시민들에게 직접 구타를 당하지는 않았으나 집기를 부수는 이들이 있어 위협을 느꼈다.
그 정신 사나운 현장에서 고등학생 한 명이 ‘이동권 지지’라는 글씨를 띄운 휴대전화를 한 손으로 높이 들고 소리 없이 서 있는 걸 보았노라고 했다. 아무리 정치권과 언론이 갈라치기 해도 말없이 지지해주는 시민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박 대표는 그 장면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 등장해 그만두고 싶다는 다음 출근길 투쟁은 2월6일 서울역(1호선, 시청방향)에서 한다. 그날은 오이도역 리프트 참사에 항의한 서울역 선로 점거투쟁이 23주년 되는 날이다.
후원 국민은행 009901-04-017158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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