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고분고분할 것, 올해도 경비원 해고대란
이런 일자리가 있다. 최저임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일하는 기간이 정해진 계약직이다. 그 기간이 1년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요즘은 3개월짜리 계약을 맺는 곳이 많다. 하루 24시간 일하고 다음 날 쉰다. 24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도 전부 일한 시간으로 치진 않는다. 일터마다 차이가 있지만 하루에 평균 8시간은 쉬는 시간으로 보고 임금을 안 준다. 그렇다고 쉬는 시간에 집에 가서 쉴 수는 없다. 근무지에 머물면서 쉬어야 하고, 때로는 이 시간에 일도 해야 한다. 용역업체와 계약하고 일을 하지만, 업무지시는 이 업체한테 받지 않는다. 업무지시를 하는 사람, 실질적인 고용주가 몇백명일 때도 있고, 많으면 몇천명도 된다. 상전 노릇을 하는 이가 많으니, 감정노동은 필수적이다. 그 많은 상전 중에 갑질하는 사람이 없을 리 없다.이 일을 하는 사람 4명 중 3명이 비인격적인 대우를 경험했다고 한다.
용역업체 바뀔 때마다 고용 승계 걱정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 같은 이 일자리가 어떻게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으면서 이어지고 있을까. 더구나 초단기 계약으로, 3개월마다 새로 사람을 구해야 할 때도 있는데 말이다. 조건을 크게 따지지 않는 구직자들의 존재가 이를 가능케 한다.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60대가 가장 많고, 70대가 뒤를 잇는다. 대부분 은퇴한 남성이다. 정년 제한으로 일할 수 있는 곳 자체가 많지 않으니,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이 일터로 몰려들 수밖에 없다. 퇴직 후 소일거리와 건강관리를 위해 일을 시작한 사람도 더러 있다. 하지만 70%가량은 생계를 위해 이 일을 한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급격한 고령화는 이 일을 희망하는 구직자의 규모를 키울 가능성이 높다. 대체자가 많으니 해고는 더 손쉬워지고, 일터에서 요구하는 조건도 더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높다(비인격적 대우 현황, 평균적인 노동조건 등은 2019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보고서 참조).
이 직업은 아파트 경비원이다. 입주민과 관리사무소는 이미 경비노동자에게 업무수행과는 관련 없는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고분고분한 태도다. 경기 평택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 일을 보던 A씨(71)는 지난해 연말 해고됐다. 올해부터 이 아파트의 경비 업무를 맡게 된 용역업체는 8명의 경비노동자 중 A씨를 포함한 2명의 고용을 승계하지 않았다. 다른 한 사람은 고령 등이 문제가 됐다. A씨는 아무런 해고 사유도 듣지 못했다. 입주민들과의 관계도 문제가 없었고, 주민 민원이 들어온 것도 없다고 했다. A씨로선 정확한 해고 사유를 모르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짐작가는 이유는 있다. 지난번 해고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A씨는 추측한다. 그는 2022년 12월에도 이 아파트에서 한 차례 해고됐다. A씨 입장에선 억울한 해고였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A씨가 근무시간에 잠을 잤다고 주장했다. A씨는 휴게시간에 너무 더워 휴게실이 아닌 초소에서 잤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바뀌는 건 없었다. 당시 A씨는 적극적인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평택지역 아파트 경비원들의 노조에 가입해 있었다. 노조는 그해 12월 30일부터 이 아파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등 입주민들과 지역사회에 A씨의 부당해고 사실을 알렸다. A씨의 1인 시위 등이 이어지자 용역업체는 한발 물러서 A씨와 다시 계약을 체결했다. 직전까지 A씨와 동료들은 근로계약서를 3개월마다 한 번씩 쓰고 있었는데, A씨와 노조의 문제 제기가 있은 후 1년짜리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해고되면 새 일자리를 찾는 다른 경비원들과 달리 A씨는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부당해고와 초단기 계약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정당한 요구였고, 마땅한 결과였다. 하지만 경비노동자의 권리 요구를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었다.
A씨는 “지난 1년 동안 주민들과 문제도 없었고, 남들보다 일을 못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노조에 가입돼 있어 그런 게 아니겠나 싶다. 일을 시켜도, 괜히 잘못된 걸 시키면 시끄러워질까봐. 사실은 반대인데, 노조원이라고 말 나올까봐 더 신경쓰고 눈치 보면서 일하는데”라고 했다.
해고 사유는 A씨의 짐작대로일 가능성이 높다. 주간경향은 해고 사유를 묻기 위해 용역업체에 연락을 취했으나, 담당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만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고용승계가 되지 않은 분(A씨)은 노조에 가입돼 있으면서 시위를 했다고 한다. 만약에 신뢰가 쌓인 분이라면 고용을 승계하는 게 맞다. 그렇지만 신뢰가 쌓이지 않은 사람의 경우는 무조건 승계를 해줘야 하는 건 아니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신뢰가 깨졌다”라고 했다. 결국 노조에 가입해 해고 부당성을 주장한 것이 이번 해고의 원인이라는 얘기다. 노동조합법은 노조 가입이나 활동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본다. 부당노동행위를 한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3개월 계약은 쉽게 자르려는 의도”
A씨의 해고 이후 고용이 승계된 동료 경비노동자들의 계약기간은 종전의 1년에서 3개월로 도로 줄었다. 관리사무소는 이에 대해 “계속 3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회사처럼 수습기간이 있으니 3개월 계약을 하고, 이후에는 9개월 계약을 하고, 그다음부터는 1년 계약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A씨가 속해 있는 민주일반연맹 평택안성지역노조의 김기홍 위원장은 “새로 채용된 분들이 아니고 기존에 일하던 분들인데 왜 수습기간을 두는지 모르겠다. 3개월 계약은 언제든 쉽게 자르려는 의도”라고 했다. A씨와 노조는 올초부터 이 아파트단지 앞에서 부당해고 철회와 초단기 계약 철폐를 요구하는 1인 시위 등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의 경비노동자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정초부터 해고대란을 맞았다. 이들에게 연말연시는 늘 치명적이다. 용역업체가 바뀌면 고용승계 여부를 걱정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올랐다며 관리비 절감을 위해 인원을 감축하는 사례도 많다. A씨 경우처럼 경비노동자를 쉽게 통제하려는 의도로 해고가 이뤄지기도 한다.
서울 강남 대치동의 한 아파트는 지난해 연말 76명의 경비노동자 중 절반 이상인 44명을 해고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용역업체 변경에 따른 계약만료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그러나 “노조 활동에 따른 보복성 해고”라고 본다. 이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노동자 B씨는 지난해 3월 관리소장의 갑질 의혹을 제기하며 목숨을 끊었다. 이후 동료 경비노동자들은 속속 노조에 가입해 관리소장의 퇴출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이어왔다. 한때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이 42명에 이르기도 했다.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가 빈번히 이뤄지는 데다, 이 아파트도 3개월 단위 계약을 맺고 있어 고용불안이 극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적잖은 수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들고일어난 셈이다.
이 아파트에서 5년간 일하다 이번에 해고된 홍모씨(72)는 “노조에 가입했던 사람들 거의 전부가 이번 해고 대상에 포함됐다. 반장이나 소장한테 말대답하고, 미운털 박힌 사람 순번대로 44명이 잘렸다. 소장의 갑질을 호소하면서 사람이 죽었는데도 입주자대표회의가 소장을 감싸면서 소장은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대량 해고 이후 절반 이상의 경비노동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현재는 10명 남짓한 인원이 남아 이 아파트 앞에서 부당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이어가는 중이다.
노조 가입하면 불이익 감수해야
기형적인 초단기 계약은 경비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 주장을 갈수록 어렵게 하고 있다. 2개월, 3개월 단위의 짧은 계약이 ‘쉬운 해고’를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단기 계약은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2019년 수행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보고서’를 보면 당시만 해도 1년 단위 근로계약이 63.7%로 가장 많았다. 6개월 이하 계약은 30.4%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경기도가 도내 아파트를 대상으로 수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6개월 이하 계약이 68%로 비중이 가장 높았다. 지자체별로 준칙 개정 등을 통해 1년 이상 계약을 맺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권고사항에 그쳐 실효성은 미비한 실정이다.
대구지역에서 아파트 경비원들의 단체 설립 등을 지원하고 있는 정은정 대구노동세상 대표는 “3개월 계약한 경비노동자들은 불만이나 문제점을 얘기할 수가 없다. 입주민들의 민원제기가 있을 때 갈등을 안 만들려 하니까 약자를 내보낼 수밖에 없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년 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자체나 노동부 차원에서 행정지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표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법률지원팀장은 “경비노동자에 대한 입주민 민원이 들어오거나, 경비노동자와 관리사무소 간 분쟁이 있을 때 자르는 게 가장 편하기 때문에 3개월 단위 계약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고령의 노동자를 쉽게 통제하려는 것이다. 지자체별로 경비노동자와 1년 이상 계약을 맺은 아파트에 보조금을 지급할 때 인센티브를 주고 있지만, 가점 비중이 너무 낮아 실효성은 없는 상황이다. 행정적 지원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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