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험지’에 숨겨진 정당 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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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혁신위원회를 이끌었던 인요한 위원장이 끝내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물러났지만 그가 남긴 메시지만큼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당 지도부 및 중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아니면 수도권 지역 어려운 곳에 와서 출마하는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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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재태 편집위원)
국민의힘 혁신위원회를 이끌었던 인요한 위원장이 끝내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물러났지만 그가 남긴 메시지만큼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당 지도부 및 중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아니면 수도권 지역 어려운 곳에 와서 출마하는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권고했다. 이른바 '윤핵관·영남 중진 험지 출마론'이다.
그가 불을 지핀 '험지 출마론'은 지금도 총선판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어있다. 한 지역구에서 연이어 당선된 중진 의원들이 세가 불리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출마해 달라는 요구가 두 다수 정당 내에서 거푸 불거지는 상황이다. 당이 '이기는 선거'를 위해 기득권자들의 헌신 또는 희생을 바라고 압박하는 속내를 헤아리지 못할 바 아니지만,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험지'라는 단어는 아무리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려 해도 낯설고 고약하다. 국회의원 총선거는 의원 다수를 각 지역구의 유권자들이 선출하는 절차인데, 정당이 그 지역 출마자를 현지 민심과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결정하는 것은 민심의 현재를 묻는 선거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표를 주는 지역구 유권자들에 대한 의리나 존중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정당의 일방적 셈법에 의해 특정 지역을 '험지'로 낙인찍는 것은 그곳 주민들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데다, 험지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도 말 그대로 험악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럴 의도로 쓰인 용어는 아니겠지만, 그 말을 듣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처지에서는 자기가 사는 곳이 이유 없이 폄하된다는 느낌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최근에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 대한 사퇴 압박 파동으로 이어진 서울 마포을 '자객 공천' 논란이나 민주당의 친이재명계 인사 공천을 지적하며 나온 '전략공천'이란 말도 볼썽사납기는 매한가지다. 지역구 민심은 아랑곳없이 당의 잇속만 채우려는 승리욕에 따른 공천이라는 점에서 보면 '험지 출마론'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자극적인 단어를 동원해 눈길을 끌어보겠다는 의도로 나온 '자객'이란 단어도 듣기에 거북스럽다. 총선을 유권자의 마음을 얻으려는 구애 행위가 아닌, B급 활극으로 변질시켜버린다는 불쾌감을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이번 총선에서 '시스템 공천'을 약속했지만 현재의 흐름으로 볼 때 그 약속이 잘 지켜질지는 의심스럽다. 지역 민심과 동떨어진 특정인을 전략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공천이 아닌 '사천(私薦)'일 뿐 아니라 지역구 유권자들을 모욕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지역 실정을 잘 아는 인물이 아닌 외지인이 불쑥 나타나 선거에 나선다면 현지 주민들이 어찌 그를 반길 것인가. 설령 그 인물이 당선된다 하더라도 지역 민심을 현지 출신보다 더 잘 반영해 의정 활동을 펼치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정당의 이익을 위한 승리를 넘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 승리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지역구 주민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명망가보다 자신들의 현실을 잘 대변하고 지역 현안을 능력 있게 해결해줄 사람을 원한다. 그걸 하라고 국회의원이란 자리가 있음도 잘 알고 있다. 앞으로 총선까지 남은 기간에는 '험지'나 '자객' 같은 고약한 말 대신 '민의 중심'의 공천이라는 말이 더 많이 들려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당 이기주의에 의해 만들어지는 험지는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해야 마땅하다. 지역구는 정치인의 욕심에 따라 마음껏 '쇼핑'할 수 있는 대상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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