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0만원으로 1000억대 자산 일군 주식농부 박영옥 “나는 이렇게 투자했다” [일문일답]
“모두 떠날 때 투자해야…기업 성장주기에 투자
안전장치로 배당 3∼4% 이상 주는 기업 선택”
150개 기업에 투자...10년 이상 동행한 기업 다수
코인, 채권, 해외투자 안하고 100% 한국기업만
“남들이 진저리치며 떠날 때 투자해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위기는 항상 극복돼 왔습니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스마트인컴 사무실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그와 장시간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는 세 번 놀랐다. 생각보다 소박한 그의 사무실과 낡은 가죽지갑, 그 지갑에 간직하고 있는 사진 속 어머니 이야기를 하다 목이 멘 그의 모습은 ‘슈퍼개미 투자자’가 아닌 선한 농부 같았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거버넌스 리스크, 낮은 주주환원율도 문제지만 결국 우리 자본시장과 기업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서 발생하는 문제다. 1월 효과는 보통 연말에 대주주 회피용으로 팔아놨던 자금이 연초에 다시 들어와 주가가 올라가는 것인데, 정부의 대주주 요건 완화 방침이 주식 시장 폐장 이틀 앞둔 12월 26일에 결정됐기 때문에 1월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투자심리만 회복되면 주가는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다들 어려운 시기지만, 주식은 어려울 때 투자해야 돈을 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대주주 양도세 완화 등 정부의 주주가치 제고 대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아주 긍정적으로 본다. 금투세는 자본시장이 성숙할 때까지 하면 안된다. 2013년까지는 대주주 요건 한도가 100억이었는데 그 이후 계속 줄어들자 투자자들이 자신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세금을 회피하려고 한다. 그러면 기업은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그 영향은 결국 중서민에게 간다. 노령인구가 늘어나는데 노후대책 세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65세 이상은 배당소득세 면제해줄 필요가 있다.”
-부자 감세라는 지적도 있다.
“1차적으로는 부자 감세가 맞지만 2, 3, 4차로 보면 (그 효과가) 중서민까지 흘러간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자본이 선순환돼야 한다. 주식시장은 상생의 장이다. 투자를 통해서 가계의 자산이 기업으로흘러가고 기업의 성과를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기업의 성과를 제대로 공유받지 못하니 개인투자자들이 단기투자에 매달린다고 한다. 주가의 등락이 심하니 씨 뿌려놓고 열매 맺기까지 기다리기 쉽지 않은데, 개인투자자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위기에 기업을 믿고 베팅하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진짜 공부 많이 하고 자신 있을 때 투자하라.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된다. 투자 기회는 항상 있다. 많이 공부하면 세상 보는 눈이 커지고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지금은 1등이 아니지만 잠재적으로 1등을 할, 시장을 지배할 기업을 찾아야 한다.”
-4300만원으로 시작해 1000억원 이상으로 불렸다. 어떻게 가능했나.
“(IMF 시절인) 1998년에 4300만원으로 시작했다. 2001년 미국 9.11이 터졌을 때 20억∼30억원 정도로 늘었고, 계속 재투자를 해 2010년 840억원 정도가 됐다. 2013∼2015년에 또 한 번 큰 기회가 왔었다.”
-주로 어떤 주식에 투자했나.
“제가 투자하는 기업은 배당성향이 높고 일반인이나 시장에서 인기가 없다. 가치가 있는데 시장에서 저평가 받고 있는 기업들이다. 항상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장지배력이 있고, 적절히 배당하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기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투자한 기업과 동행해야 한다. 직접 발품 팔고 확인하지 않으면 믿음이 안 생긴다. 기업과 소통이 되고 지속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기업이 외부 변수로 어려울 때도 주식을 산다.”
-100여개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했는데 포트폴리오가 궁금하다.
“나의 삶인 것 같다. 나도 한국 기업에 투자한 덕분에 이렇게 됐고, 내가 투자해야 기업들도 좋아진다는 것을 안다. 한국기업이 가치에 비해 싸게 거래되고 있지만, 정상적으로 작동되면 큰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다.”
-가장 오래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얼마나 됐나.
“17년간 투자한 기업도 있고 한경 TV, 고려제강 등 10년이상 투자한 기업도 여러개다. 그러나 동행할 기업을 4개 정도로 줄일까 한다.”
-2022년 3월 삼성물산과 KT&G에 자사주 소각을 요청하는 주주서한을 보내 관철하셨다. 2023년에도 농심홀딩스, 넥센 등 13개 기업에 주주제안을 하거나 주주서한을 보냈는데 응답이 있나.
“자사주 소각은 기업가치 제고해서 모든 주주들이 기업의 성과 누릴 수 있고, 또 회사가 건강히 갈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 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 지난해 농심홀딩스 주주총회에 가서 “농심도 이제 내수 아닌 글로벌 기업이니 해외시장에 신경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린 경영을 해야 하며 배당을 통해 성과 공유하고 액면 분할을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시가총액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다. 현대차의 시가총액이 테슬라의 25분의 1이다. 일론 머스크가 어떻게 저렇게 많은 사업을 하겠나. 증시 통해 자금을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투자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며 주주행동주의에 나섰다. 하지만 기업들이 항상 응답하지는 않았을텐데.
“5년이상 투자한 기업은 아무리 불편해도 대부분 지배주주와도 만나고 소통하며 동행해왔다. 그런데 17년간 투자한 회사에 내부거래가 의심돼 회계장부 열람을 신청했더니 ‘주가조작범’ 프레임을 씌워 공격했다. 너무 허탈했다. 지배주주나 대주주들이 장기간 손익거래를 통해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경우 많은데 일반투자자들이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기업과 싸운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나.”
-한국기업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배당성향을 올리려면?
“항공우주 관련주,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제약바이오, 농심 등 K푸드, 증권주를 좋게 보고 있다.”
-150개 기업에 투자하려면 굉장히 부지런해야 할 것 같다. 주식농부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
“잠이 없어서 새벽 4, 5시에 일어나지만 해외주식을 안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주식 창을 보지 않는다. 차트도 잘 안본다. 사람도 잘 만나지 않는 편이다. 다만 내가 투자한 회사는 내 회사라고 생각하며 발품 팔아 기업 동향을 파악한다. 주주총회 등에도 꼭 참석한다.”
-자녀들에게도 투자를 가르치나.
“3남매인데 모두 투자와는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아빠 자산은 ‘노터치’하라고 했다. 아빠 재산을 내꺼라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이 피폐해진다. 너희들은 나보다 좋은 조건에서 시작하니 인생을 개척하면서 사는 즐거움을 맛보라고 했다. 무슨 일을 하던 내버려두고 믿는다고 했다.”
-많이 벌었으니 이제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실 법도 한데.
“나도 편하게 살고 싶은데 뜻대로 안된다.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자랐다. 돈 없어서 중학교도 못 갈뻔 했는데 선생님이 학비를 내주셔서 진학할 수 있었고, 4년간 공장에서 일하면서 주경야독으로 방송통신고등학교를 거쳐 중앙대에 등록금 면제받고 조기졸업했다. 증권사에 들어가 37세 교보증권 압구정지점장이 됐다. 교보증권에서 상품운용팀 과장하던 1994년 7월 내 꿈은 노후에 자사주 2만∼3만주 갖고 2억∼3억원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30만주 이상 보유한 대주주가 돼 있다. 열심히 살다보니 이렇게 된 것 아닌가.”
-앞으로의 계획은.
“2001년 9.11 때 돈을 벌고 나니 우리나라에도 존경받는 투자자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식시장은 상생의 장이자 중서민에게는 희망의 사다리이다. 투자자와 기업이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자는 것이 내 ‘농심투자철학’이며 내 인생 철학이기도 하다. 주식투자가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는데 일조하고 싶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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