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괴롭힌 고물가, 올해는 나아질까

안광호 기자 2024. 1.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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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상승률 3.6%…정부 “하반기 2%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
지난 1월 23일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 메뉴판 /연합뉴스

지난해 서민들을 가장 힘들게 한 건 고물가였다. 치솟은 밥상물가와 공공요금은 서민 삶을 더욱 팍팍하게 했다. 정부는 올 하반기에 물가가 2%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물가를 자극할 변수가 많다. 지난해 고물가 원인이었던 전쟁과 이상기후에 따른 국제 원자재 가격 불확실성, 농수산물 가격 불안, 공공요금 인상 등이 올해도 물가 불안을 키울 수 있다.

작년 물가, 얼마나 올랐나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였다. 2022년 5.1%에 비해 상승폭은 줄었으나 물가안정 목표치(2%)를 훨씬 웃돈다. 먹거리물가와 공공요금이 고물가를 주도했다. 대표 먹거리 지표인 가공식품 물가상승률은 6.8%로 전체(3.6%)의 1.9배, 외식 물가상승률은 6.0%로 1.7배를 기록했다. 가공식품 물가는 2년 연속 전체 물가상승률을 상회했다. 2022년(7.8%)을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8.3%)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았다. 외식 물가는 전년(7.7%)보다 낮아지긴 했으나 1994년(6.8%)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높았다. 외식의 세부 품목 중 하나인 구내식당 물가의 경우 6.9% 올라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01년 이후 최고치를 보였다. 전기·가스·수도 물가는 전기료와 도시가스 등의 가격 인상으로 무려 20.0%나 올랐다.

먹거리 물가가 오르면 저소득층 비용 부담은 상대적으로 더 커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소득하위 20%(1분위) 가구의 평균 처분가능소득(전체 소득에서 이자·세금 등을 뺀 것으로 소비나 저축에 쓸 수 있는 돈)이 91만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0.6%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상승률은 1분위 가구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의 각각 10.5배, 9.0배였다.

정부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민생대책으로 추진했다. 28개 농식품에 대해서는 소위 ‘빵 서기관’, ‘라면 사무관’ 등과 같은 관리 전담자를 두는 물가안정책임관제가 이명박(MB) 정부 이후 부활했다. 고물가 현실을 반영한 말들도 물가 관련 보도에 자주 등장했다. 가격은 그대로 두거나 올리면서 제품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와 물가 상승인 ‘인플레이션’을 합친 ‘슈링크플레이션’, 원윳값이 우윳값을 밀어 올리고 연쇄적으로 빵·과자류 물가를 자극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서 일반 물가도 상승시킨다는 뜻의 ‘애그플레이션’ 등이다.

이동훈 한국물가정보 선임연구원은 “작년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제조와 유통 등 산업현장 전반적으로 비용 부담이 커진 데다 공공요금 인상, 기후 이상에 따른 작황 부진 등이 겹치면서 1년 내내 고물가가 지속됐다. 올해 설 차례상에 오를 품목의 비용을 조사한 결과만 봐도 밀가루와 식용유 등 일부 공산품을 제외한 대다수 품목에서 가격이 올랐다. 고물가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월 24일 전문가격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올해 차례상 비용(4인 가족 기준)은 전통시장 기준 28만1500원으로 역대 최고치다. 밀가루와 식용유의 경우 2022년에 국제곡물가격이 급등하자 지난해 정부가 식품 원료 7종에 대해 연말까지 0% 할당관세(수입 물품에 대해 기본 관세율보다 낮은 관세율을 적용하는 것)를 적용하고 원료 수입선을 다변화하면서 가격이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월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겸 물가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해 참석 장관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2%대 진입 전망, 합리적인가

정부는 올 하반기에 물가가 2%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월 21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상반기까지 3%대에 머물다 하반기에 가서야 2%대 초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앞서 1월 4일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올해 물가 상승세가 완만하게 둔화해 연간 2.6%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의 주요 물가안정 대책은 상반기에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공공요금을 동결하고, 채소·축산물·과일 등에 관세를 면제하거나 할당관세를 적용하는 내용이 골자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12월 20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올해 연말로 갈수록 2% 부근에 근접할 것으로 봤다.

정부 진단대로 최근 물가 추이는 완만한 하향세를 보이는 중이다. 국내 물가는 2022년 7월 고점(6.3%)을 찍은 후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과 기저효과 등 영향으로 고물가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흐름이 낮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하반기 월별 물가상승률을 보면 9월 3.7%, 10월 3.8%, 11월 3.3%, 12월 3.2% 등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들의 물가 전망도 하향 쪽이 우세하다. 한은의 1월 24일 ‘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1월 기대인플레이션은 전달보다 0.2%포인트 하락한 3.0%로, 2022년 3월(2.9%) 이후 최저치다. 기대인플레이션은 소비자들의 향후 1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을 나타낸다. 석유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올해 상반기 공공요금이 동결되고 먹거리 물가 상승폭이 다소 둔화한 영향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팀장은 “재정당국이 내수를 부양시키기 위해 올 상반기에 기존 계획보다 세출을 늘리면, 하반기엔 세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감소해 물가를 자극할 만한 요소가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지난해 고물가에 따른) 기저효과도 일부 반영되리라고 본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올 하반기에 무난하게 2%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올해 물가 상방 압력 요인은

다만 대내외 변수가 많아 경계감을 풀긴 어려운 상황이다. 물가 상방 압력 변수로는 작황 부진에 따른 농수산물 가격 상승, 중동 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 리스크 확산, 총선 이후 또는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 등이 있다.

한은에 따르면 11월 생산자물가는 1년 전과 비교해 1.2%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로 5개월 연속 상승세다. 딸기와 사과 등 농산물의 작황 부진과 수요 상승, 오징어 등의 어획량 감소 등의 영향 때문이다. 생산자물가는 통상 1~2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단계적으로 반영된다.

서울시 지하철 기본요금은 경기도와 인천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 관계 기관과 협의를 거쳐 하반기에 150원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 300원 인상된 서울 시내버스 요금과 마찬가지로 지하철도 300원 인상 방안을 추진했으나, 서민 물가 상승 부담 등을 이유로 150원을 먼저 올리고 추후 나머지 150원을 다시 인상하기로 한 바 있다.

다음은 국제유가 불확실성 증폭 가능성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상반기 평균 배럴당 75달러, 하반기 평균 80.3달러로 연간 77.6달러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어진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러시아 등 비회원 주요 산유국 협의체)의 감산이 올 들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홍해 교전으로 중동지역 리스크가 심화해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면 공급자 측 가격 상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연구원은 “주요 산유국의 감산 강화와 중동지역 리스크 등에 따라 배럴당 80달러 안팎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환율 역시 물가를 끌어올릴 변수다. 중동지역 확전 가능성, 중국 경기침체 심화 등의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하면서 달러화 강세가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소비자물가 상승세를 키울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월 1일 발표한 ‘2024년 글로벌 트렌드’에서 “물가는 상당 기간 중간 수준(중물가)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며, 세계 수요가 반등할 경우 고물가 현상이 재현될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분석했다. 이부형 팀장은 “물가가 완만한 하향세를 보일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올해 물가를 자극할 변수가 적지 않다. 대외적으론 환율의 변동성 확대와 (우리와 동조성이 높은) 중국 경제의 회복 속도, 전쟁과 국제 분쟁 등을 꼽을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하반기에 미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설 경우 우리도 (그에 따라 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원화량이 늘어 경기와 물가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 1월 18일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공급 측면에서 보면 중동지역 긴장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양상의 확대, 예멘 후티 반군 사태 등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고, 대내적으론 유류세와 공공요금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물가 상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수들 때문에 물가 안정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월 11일 기준금리 동결(연 3.50%)을 결정한 후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함으로써 물가 안정을 이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다”면서 금통위원 의견이 아닌 사견을 전제로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규철 실장은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가 2%대 초반을 유지하는 흐름을 보일 때 (물가가 안정권에 들었다는) 판단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4.0%로, 전년(4.1%)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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