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애플 잡으려다 네카오 죽일라"…'깜깜이' 혼란만 키운 이 법안

최우영 기자 2024. 1. 29.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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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플랫폼법 추진에…학계 "자국 기업에만 유리천장" 지적
"美빅테크 잡으려는 EU 규제, 'K-플랫폼' 굳건한 국내에는 맞지 않아"
"실증 조사, 소통 부족" 비판도…공정위, 법 초안 마련 후 업계와 간담회 추진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사진=뉴스1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플랫폼경쟁촉진법(플랫폼법)이 국내 기업들에게 역차별로 작용해 오히려 외국 기업들만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규제를 신설하는 외국의 사례와 달리, 오히려 자국 기업에만 유리 천장을 설정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법안 추진 과정에서 실증 조사, 업계와의 소통도 부족해 업계와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기업활동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쟁 촉진해서 시장점유율 찢어놓으면..."오히려 생태계 위축"
28일 공정위에 따르면 플랫폼법을 추진하는 가장 큰 목적은 시장지배적 플랫폼의 출현을 막고 다양한 플랫폼을 육성함으로써 소비자와 관련 업계의 선택 폭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의 '자사 서비스 우대' 등을 금지해서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전문가 의견이 나온다.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글로벌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은 채 네이버와 같은 자국 플랫폼을 가진 나라가 전 세계에 거의 없다"며 "플랫폼법을 통한 규제는 이러한 국산 플랫폼이 국내 소상공인이나 입점업체들에게 주는 혜택, 그들이 만드는 생태계를 해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EU가 미국 빅테크 기업들로부터 자국 기업들을 보호하려고 2018년 GDPR(개인정보보호규정)를 제정했지만, 오히려 규제가 EU 내의 스타트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규제로 인해 웹사이트들이 소규모 업체보다는 큰 업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져, 오히려 빅테크에 유리한 형국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EU 기업들을 지키려던 규제가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 결과로 돌아온 것이다.
"말 잘 듣는 국내 기업만 옐로카드 받는 꼴"
레이 장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 한국대표. /사진=머니S
국내 사업자들에 대한 강력한 규제는 해외 기업들의 반사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정명령이나 압수수색 등에 노출된 네이버, 카카오 등과 달리 본사가 외국에 있는 구글, 애플 등에 대한 법 집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2021년 시행된 인앱결제강제 금지법, 일명 '구글갑질 방지법'은 제3자 결제시스템 등을 통한 법맘 우회가 등장하면서 휴지조각이 된 바 있다.

강형구 한양대 경영학 교수는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축구하는 데 공정하게 하라면서 정작 카드는 한국 선수들에게만 남발하는 행태"라며 "심판은 '반칙 안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국내 업체만 규제하는 식으로는 글로벌 빅테크와의 경쟁이 성립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강 교수는 "구글코리아 같은 경우 중소기업 수준의 세금을 내면서 국내에서 수천억원의 이득을 보고, 망 사용료도 안 내는데 이러한 병폐는 놔두면서 국내 기업들에만 왜곡된 공정을 강요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플랫폼을 '디지털 유전(油田)'이라고 하는데, 정작 정부가 나서서 유전을 불태우면서 국익을 해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벼락치기 법안 추진에 시장 불확실성 가중
구글 /사진=뉴시스
법안 추진 과정에서 국내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상우 교수는 "미국 등에선 법안, 특히 규제를 만들 때는 수년간 토론회도 하고 실증연구를 거치는데 지금 공정위는 '4월 회기 전'이라는 시기만 못 박아두고 법안의 세부 내용도 없이 깜깜이로 추진하고 있다"며 "변변한 자체 플랫폼이 없던 EU에서 자국 산업 경쟁력을 희생하면서라도 미국 기업을 억제하기 위해 쓰던 규제전략을, 자체 플랫폼을 가진 우리나라가 졸속으로 법까지 만들며 추진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공정위가 플랫폼법의 수혜자로 예상하는 스타트업들의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은 오히려 플랫폼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코스포는 지난달 성명을 통해 "회사가 성장하면 더 많은 규제로 활동이 어려워질 테니 현행 수준을 유지하라는 '전족'(纏足) 같은 조치"라고 비판한 바 있다.

강형구 교수는 "국내 플랫폼을 통해 소상공인도 혜택을 보고, 무엇보다 소비자 후생이 늘어난 측면이 큰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플랫폼을 보호해야 한다"며 "국산 플랫폼이 사라지고 알리바바나 테무 같은 외국 플랫폼들이 지배하는 시장은 소비자들에게도 부정적인 결과로 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의 정확한 목적과 내용, 시기를 알고 대응한다면 기업활동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을 텐데 현재 공정위는 구체적 내용도 없이 형식상의 간담회만 추진하고 있어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공정위는 법안 초안이 마련되는 다음 달부터 업계와 간담회를 추진할 예정이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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