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팀 앞세워 압박?... ‘호화 출장·쪼개기 후원·1兆 피소’ 논란의 KT&G

유진우 기자 2024. 1. 29.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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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위 담배 업체 KT&G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KT&G는 2000년대 초반 민영화한 ‘주인 없는 기업’이다. 민영화 이후 20년이 넘도록 사장 교체기마다 잡음이 일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현 백복인 사장은 지난 10일 4연임 포기를 발표했다. 사장이 바뀔 기미를 보이자 이후 재임 시절 불거진 경영 관련 이슈가 줄지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부에서는 경영진을 둘러싼 호화 출장과 불법정치자금 지원 같은 온갖 부정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외부에서는 1조원 단위 대형 소송에 휘말린 가운데, 이와 별도로 1조5000억원이 넘는 장기예치금마저 못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회사 안팎으로 드리운 위기감은 투자자들에게도 번졌다. 올해 초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서 9만원을 넘었던 KT&G 주가는 17일 8만3000원대까지 떨어졌다.

KT&G는 아직 확실한 대응책을 밝히지 않고 있다. 오로지 법무 관련 임직원을 동원해 입막음에 골몰하는 모양새다.

그래픽=손민균

최근 보름 사이 KT&G에 관해 터진 논란과 의혹은 크게 네 가지다.

① 사외이사 외유성 호화 출장 의혹

가장 최근에는 KT&G 전·현직 이사들이 매년 회삿돈 수천만원을 들여 외유성 출장을 떠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업계에 따르면 KT&G 사외이사들은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0∼2021년을 제외하고 2012년 이후 매년 한 차례 일주일 가량 해외 출장을 갔다.

KT&G는 사외이사들에게 비즈니스석 항공권과 고급 호텔 숙박료를 지원했다. 여기에 별도 식대·교통비 명목으로 하루 500달러를 추가로 지급했다.

그러나 일부 사외이사들은 이 돈으로 그리스·이탈리아·이집트 등에서 크루즈 유람선 관광을 했다. 해외 출장에 배우자를 데려간 사외이사도 있었다.

KT&G는 “해외사업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 제고는 의사결정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비용은 항공료를 제외하고 1인 평균 680만원 수준으로 사내 규정을 준용했다”고 해명했다.

그래픽=손민균

담배 규제 완화·매출 증대 목적 ‘쪼개기 후원’ 의혹

KT&G는 2017년 다수 국회의원에게 이른바 ‘쪼개기 후원’ 방식으로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쪼개기 후원은 정치자금법상 후원금 제공이 금지된 기업이나 단체, 협회들이 직원들 이름을 빌려 10만원 이하 소액을 후원하는 행위다. 정치자금법상 1회 10만원 이하 후원은 익명 처리가 가능해 주로 은밀하게 정치자금을 지원할 때 이 방법이 쓰인다.

KT&G 내부 문건에 따르면 KT&G는 2017년 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3명과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 1명에게 쪼개기 후원을 했다. KT&G는 직원 213명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팀을 꾸렸다. 이들은 1명당 10만원씩 익명으로 2130만원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KT&G 측은 쪼개기 후원 의혹에 대해 “해당 사안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없다”며 “향후 필요한 경우, 사실관계부터 확인해 본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법조계 관계자는 “정치자금법 위반 공소시효는 7년”이라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올해까지 관계자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③ 행동주의 펀드와 1조원대 소송전

의혹뿐 아니라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KT&G 이사회 눈 앞에 닥친 가장 큰 문제는 1조원대 송사다.

지난 10일 싱가포르계 행동주의 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는 KT&G 감사위원회 위원장 앞으로 소 제기 청구서를 보냈다. FCP는 KT&G 지분 1%대를 보유한 주주다.

FCP는 KT&G 전·현직 사외이사들이 감시 의무를 소홀히 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1조원대에 이르는 자사주 약 1085만주를 KT&G 재단과 기금에 무상으로 증여하는 것에 대해 묵인하거나 동참했으니, 백복인 사장과 KT&G 전·현직 이사 21명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도다.

‘자사주 편법 활용을 감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외이사에게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국내 상장사 가운데 처음이다.

KT&G 감사위원회는 FCP가 보낸 소 제기 청구서를 검토해 다음 달 10일까지 회사 차원에서 배상금 청구 소송을 진행할지 결정해야 한다. 만일 청구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FCP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KT&G는 “출연 당시 이사회는 관련 법령 등 적법한 절차에 따라 관련 안건을 의결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④ 미국 장기예치금 1조5400억원 반환 불가 논란

의혹과 소송이 이어지는 가운데 KT&G가 미국에서 경영상 중대 실책으로 미 법무부와 식품의약국(FDA)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까지 불거졌다.

KT&G는 2022년부터 사업보고서에 “미국 법무부의 미국 내 판매 중인 담배 제품의 규제 준수 현황에 관한 포괄적 문서제출명령을 받아 조사받고 있다”며 “최종 결과와 그 영향은 예측할 수 없다”고 밝혔다.

KT&G 내부 문건에 따르면 KT&G는 현재 담배와 관련한 미 보건 당국 규제를 위반하고, 담배 제품 승인과 심사 과정에서 자료를 누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KT&G는 이 사실이 외부에 드러나자 법무팀을 동원한 감사까지 언급하면서 직원들을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미 당국 조사 결과에 따라 KT&G가 미국 주 정부에 낸 장기예치금 1조5400억원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KT&G는 “미 법무부가 조사 중 사안에 대한 비밀 유지 의무를 부여한다”며 “구체적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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