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돋보기]K디스카운트 해소, '기업 밸류업'의 조건
규제당국이 주주환원정책의 일환으로 배당을 얼마로 할지 배정정책 목표치를 공시하도록 요구하는 경우는 여러 나라에서 흔히 있지만, 주가 관련 재무비율(ROE, PBR)의 중기 목표치와 이행 전략을 공시하도록 하는 사례는 미국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경영 패러다임을 성장(매출) 중심에서 주주가치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일본 정부의 자본시장 선진화 의지가 일본식 자본주의 특유의 금융정책으로 구체화한 제도 개선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기업밸류업프로그램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다소 파격이고 고무적이다. 경제민주화정책 흐름이 형성된 이래 정책 초점은 줄곧 일반주주의 권리 강화, 최대주주 의결권(감사위원) 제한, 스튜어드십코드 등 주로 투자자의 주주권과 행동주의 활성화에 맞춰졌다. 정작 자본시장으로부터 저평가를 받고 있는 당사자인 기업에게 변화를 직접 요구하는 제도 개선 사례는 찾기 쉽지 않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이런 점에서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의 지평을 투자자에서 기업으로 확장하는 의미가 있다.
동시에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주주행동주의가 단기주의보다 기업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중시하고 장기 기업가치 관점의 행동주의 흐름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공시와 대화를 균형적으로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카메라 제조사 니콘의 공시 내용을 보면 PBR 제고를 위해 2025년 ROE를 8%로 타켓팅, 목표 달성을 위해 CEO 보수를 ROE와 주가에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목표치와 전략의 적절성에 대해 투자자와의 대화를 계획하고 있다.
기업밸류업 프로그램이 도입되면 기업 가치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높아지고 투자자간의 정보부족이 해소되며 자본시장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자본 효율성이 낮고 저평가된 상장기업들이 많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PBR은 45개국 평균의 63%로 41위로 나타났다. 국내 저평가 상장기업들이 수익성 목표와 PBR 목표를 공시하고 주주들과 대화를 활성화한다면 시장 전반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며 주식시장은 재평가될 수 있다. 배당투자의 활성화로 예금에서 투자로의 머니무브를 촉진할 수 있고 은행과 자본시장은 균형 발전할 것이다.
물론 세밀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일본도 최근 절반 정도의 프라임 기업만 목표치를 공시함에 따라 기업 명단을 공개하는 챙피주기(name & shame) 수단까지 동원하며 공시를 독려하고 있다. 규모가 작고 PBR이 낮은 기업이 주로 공시에 참여하고 도요타 등 글로벌 대기업은 공시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우리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매우 높은 대기업이 많다. 아무리 자본효율이 낮고 저평가 돼 있어도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기업은 변화에 노출되는 것을 꺼릴 것이다. 행동주의펀드들의 캠페인 타켓이 SM이나 태광산업 등 일부 케이스를 제외하면 대부분 소유분산 기업이나 금융지주, 중견기업에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 의무 공시가 자율공시의 일본과 다른 점이긴 하나, 최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대기업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책 방안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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