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휴업 탓에 마트 매출 감소? 온라인에 뺨 맞고 노동자 일요일 뺏나

박다해 기자 2024. 1. 29. 06: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4년 1월22일 서울 서초구 이마트 양재점의 휴일 운영 안내문. 서울 서초구는 올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일요일에서 수요일로 변경했다. 연합뉴스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다른 평범한 가족들처럼 휴일을 아내,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한달에 두번 일요일을 쉴 수 있게 된 게 저희 가족에겐 축복이었습니다.”

2006년부터 서울 서초구 킴스클럽 강남점에서 근무해온 정주원(46)씨는 2012년 둘째·넷째 주 일요일 의무휴업이 도입되기 전을 이렇게 기억한다. 휴일에 함께 못 놀아주니 아이에게 늘 미안했고, 평일엔 퇴근 뒤 속 깊은 대화를 하려 해도 쉽지 않았다. 동료 직원의 삶도 정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8일부터 정씨와 동료들의 삶은 다시 12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서초구가 구청장 재량에 따라 관내 대형마트 3곳과 준대규모점포(SSM) 31곳의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꾸고, 일요일 영업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서초구 유통기업상생발전 및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 등에 관한 조례’의 영업시간 제한 관련 조항엔 ‘근로자의 건강권 보장’이 있지만 변경 과정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틈은 없었다.

동대문구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윤정임(51)씨 사정도 마찬가지다. 동대문구는 2월부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수요일로 변경한다. 윤씨는 “(평일 전환 영향을 받는) 당사자인데도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에서 평일 변경을 반대하는 직원과 입점 업주 250여명의 서명을 받아 구청에 제출했지만 달라진 건 없다. 점장 면담도 신청해봤지만 거부당했다.

그동안 ‘남들이 쉬는’ 휴일에 같이 쉬면서 친구를 만나거나 경조사를 참석하는 건 윤씨와 동료들에게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소속감을 줬다. 윤씨는 “2014년 입사할 때 계산 담당 직원이 50명이 넘었는데 16명까지 줄면서 업무량도 가뜩이나 늘어난 상황”이라며 “앞으로 꼭 휴무가 필요한 일요일에 쉬려면 동료들끼리 서로 눈치 보면서 일정을 어렵게 조율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시-자치구는 ‘눈치싸움’ 중

국무조정실이 지난 22일 공휴일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는 원칙을 폐지한다고 밝히면서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이 다시 탄력을 받게 됐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서울시의회다. 김지향 서울시의원은 23일 ‘의무휴업일을 공휴일 중에 지정한다’는 문구를 뺀 ‘서울시 유통업 상생협력 및 소상공인 지원과 유통분쟁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조례안에는 시 전체가 동일하게 의무휴업일을 적용하도록 시장이 구청장에게 권고한다는 내용도 있어 사실상 서울의 모든 자치구가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꿀 수 있는 문이 열린 셈이다.

서울시 자치구들은 눈치만 보고 있다. 25일 한겨레가 서울 25개 자치구의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검토 여부를 조사해보니, 이미 평일 전환을 결정한 서초구, 동대문구 외에 실제로 평일 전환을 검토한 자치구는 성동구뿐이다. 다만 성동구는 마트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해 현재 전환 절차가 사실상 중단됐다. 성동구 관계자는 “마트 노동자가 (평일 전환에) 공감을 해야만 휴일을 바꾸는 협약을 하기로 했는데 아직 (공감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트산업노조 관계자는 “성동구 마트 노동자들의 반대 의견서를 모았고 이를 구청에 전하라고 회사에 요구한 상태”라고 했다.

지역에 전통시장이 많은 강남구, 은평구, 성북구 등은 “주말 의무휴업일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종로구, 도봉구, 용산구 등은 일단 현행 유지를 하면서 주변 구 상황을 지켜볼 계획인데, 서울시가 정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용산구 관계자는 “구청장협의회나 시 차원에서 정리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종로구 관계자도 “전통시장, 중소상인, 마트 노동자 등 다양한 의견 수렴이 필요한데 일방적으로 움직일 순 없다”며 “서울시는 물론 모든 자치구와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자치구가 결정할 일”이라는 태도다. 서울시 관계자는 “2~3개 자치구가 추가로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꾸면 전 자치구로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서울시는 앞서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변경한 대구, 청주가 (평일 전환 이후)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정도”라고 밝혔다.

마트산업노조는 지난 23일 동대문구청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과 관련해 마트 노동자와 논의할 것을 이필형 구청장에게 요구했다. 박다해 기자

의무휴업일 ‘무용론’ 비판도

정부가 의무휴업 평일 전환을 추진하는 건 표면적으론 ‘소비자의 편익’ 때문이다. 대형마트가 일요일에 쉬어도 애초 취지처럼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매출을 늘리는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무휴업일을 바꾼 대구시는 신용카드 빅데이터로 매출 증감률을 분석한 한국유통학회 자료(‘대구시 의무휴업일 분석 결과’, 2023년)를 근거로 평일 전환의 긍정 효과를 강조한다.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뒤 6개월(2023년 2월12일~7월31일)간 대구시의 슈퍼마켓, 음식점 등 주요 소매업 매출을 보니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19.8%, 전통시장은 32.3% 늘었다는 것이다.

유병국 인천대 무역학부 교수는 이런 매출액 기반 분석은 불완전하다고 반박했다. 폐업하거나 전업한 사업체 상황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가정보데이터를 활용해 대구시 중소소매업체의 사업체 등록 변화를 검토해보니, 한해 전 86.2%였던 소매업 유지율은 의무휴업일 전환 뒤 20%로 급격히 떨어졌다”고 말했다. 또 유 교수는 “(전환 이후) 대형마트 주변에서 사라진 업체는 주로 음식료품, 종합소매점 등 대형마트 판매 품목과 대체 관계에 있는 소비재 업종”이라며 “대형마트의 입지나 규제완화 정책에 따라 계속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비 증감의 원인을 ‘의무휴업일’이란 단일 원인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대형유통점들이 고문과 이사로 대거 참여 중인 한국유통학회 자료(‘대형마트, SSM 규제 정책의 효과분석’, 2019년)는 의무휴업일 도입 이후 전통시장 소비 증가율이 줄어 해당 제도가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대형마트 소비 증가율은 더 큰 폭으로 감소했다”며 “이는 온라인 유통의 발달로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모두 매출이 줄었다는 것을 보여줄 뿐 (전통시장 소비 감소가) 의무휴업 규제 때문인지 알긴 어렵다”고 강조했다.

광주시 서구 양동시장. 광주시 제공

평일에 쉬니 마트 노동자 피로만 늘어

유통산업발전법에 명시된 ‘근로자 건강권’이 평일 전환 이후 침해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조건희 활동가가 충북 청주 지역 이마트·홈플러스 매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평일 전환 이후 생긴 변화를 조사해보니, 응답자의 60%는 “직장 생활과 가족·개인 생활이 충돌해 갈등이 있다”고 답했다. 평일 전환 이후 “신체적 피로가 늘었다”는 응답(84.8%)과 “정신적 피로가 늘었다”는 응답(78.8%)도 이어졌다. 이 밖에 “(지인 사이에서) 나만 외톨이가 됐다” “평일엔 쉬어도 업무 문자가 와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말엔 상품 입고가 두배로 늘어 감당하기 힘든데 휴일근로수당도 없다” “동료들하고 불화가 있다”는 반응도 있었다.

현재까지 의무휴업일 제도를 원래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힌 지방자치단체는 광주시뿐이다. 광주시는 25일 “골목상권과 소상공인의 거센 반대, 마트 노동자의 휴식권과 건강권을 고려했다”며 “공휴일 의무휴업 원칙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승재 광주시상인연합회장은 “광주시의 방침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다해 손지민 김용희 기자 doal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