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건설 동남아로 간다] ④'기회의 땅'서 발 넓혔지만… 中·日과의 영토 싸움 치열

조은임 기자 2024. 1.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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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필리핀서 韓건설사 두각… 日과 경쟁도
中, 캄보디아·스리랑카 등 저개발 국가 장악
”韓 건설, 기술력·고급화 인정… 그래도 긴장해야”

동남아에서 ‘K건설’ 열풍이 불고 있다. ‘맨 땅에 헤딩’ 하듯 진출해 기술력을 입증해 온 시간이 축적되면서다. 싼 값으로 밀어붙이던 중국이 주춤하는 사이에 우리나라 건설사에 기회가 왔다. ‘기회의 땅’을 개척하는 우리나라 건설인들을 필리핀, 베트남에서 직접 만나봤다. [편집자주]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등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대거 참여한 필리핀 남북철도 공사. 이 곳의 가장 남쪽 구간인 칼람바~바탕가스 구간은 본래 중국 차관을 활용해 중국 건설사가 짓기로 돼 있었다. 총 58km인 이 구간은 필리핀 3대 항구 중 하나인 바탕가스로 이어지는 핵심구간으로 꼽힌다. 하지만 삽을 뜨기도 전에 해당 공사는 백지화됐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2022년 당선되면서 중국 업체 일색이던 필리핀 건설업계의 상황이 급변하면서다. 재원부터 월드뱅크(World Bank)로 바뀌는 분위기로, 우리나라와 일본 건설사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다.

현지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글로벌 차관을 받는 공사에는 중국업체가 참여하기 어렵다”면서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 회사와의 경쟁구도가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6일 방문한 필리핀 마닐라 남북철도 N2 제1공구 현장./조은임 기자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필리핀, 베트남 등 주요 동남아 국가에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29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수주한 누적금액은 지난해 말 기준 3110억달러(한화 약 415조5000억원)에 이른다. 오일머니가 움직이는 중동(4824억달러·한화 약 644조50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태평양·북미(513억달러), 중남미(501억달러), 아프리카(300억달러) 등에서도 수주액이 늘고는 있지만 아시아 시장에서의 수주액을 따라잡긴 역부족이다.

베트남에서는 자국 건설사에 뒤를 이어 한국 건설사들이 진출이 가장 활발한 편이다. 몇 년 전 만해도 중국 업체들이 다수 있었지만, 대금추가지급 요구나 부실공사 등으로 지금은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베트남 진출이 활발한 이유는 국내 대기업들의 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나 엘지(LG)전자, 포스코, GS 등 대기업들이 공장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1~3차 벤더들도 따라 움직였다. 베트남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에도 8%대 성장률을 달성한 고성장 국가이지만, 여전히 차관공사가 가능해, 우리나라와 일본 업체들이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베트남 정부와 한국간 투자유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한국업체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면서 “중국 업체의 경우 공공공사에서는 배제되고 있어 다른 나라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했다.

중견건설사 한신공영이 캄보디아 공공사업교통부(MPWT)와 캄보디아 국도 공사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모습./한신공영 제공

하지만 캄보디아, 라오스 등 차후 높은 성장이 예상되는 저개발국가에서는 우리나라 건설사들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 현재 캄보디아에는 금호건설과 한신공영, 계룡건설, 일성건설 등이, 라오스에는 동부건설, 한신공영 등 중견 건설사들이 진출해 있다.

반면 중국은 동아시아 저개발 국가에서 발빠르게 움직였다. 중국은 국유 건설 기업인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 아래 수 많은 자회사를 둔 형태로 해외로 뻗어가고 있다. 번호가 붙은 자회사들이 국가별 공사를 배정받는 형식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 중 하나로 저개발 국가에서 중국공상은행 등이 차관을 지급, 중국 건설사에 일을 몰아주고 있는 것이다. 라오스의 경우 수력발전소의 50% 이상을 중국 건설사들이 지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과거 스리랑카의 국가파산 사태와 같은 일이 일어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스리랑카 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협력해 항구와 공항 건설, 도로망 확장을 추진하면서 대규모 차관을 도입했다. 하지만 부정부패와 얽히면서 ‘부채의 덫’에 빠졌고, 결국 국가 파산으로 이어졌다. 외환이 부족한 저개발 국가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자이카(일본 차관) 등을 재원으로 공사를 할 때는 예산이 적절하게 사용되는지, 부채를 갚을 능력이 되는지 모니터링이 이뤄진다. 반면 중국 차관은 그렇지 않아 저개발 국가에서 중국 재원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한 중견건설사의 해외사업부 관계자는 “중국에서 라오스에 사업성을 따지지 않고 철로, 민자고속도로 등을 깔았다”면서 “중화권의 의존도를 높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했다.

동남아에 진출해 있는 우리 건설인들은 동남아 내 저개발 국가는 물론 해외 포트폴리오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인 지원을 하는 중국과의 경쟁이 저개발 국가, 싱가포르, 중동 등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또 인도, 태국 등에서 기술력을 갖췄음에도 가격은 저렴하게 공사를 하는 건설사들이 나타나는 등 새로운 경쟁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동남아 현지의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질적으로 높은 결과물과 신용, 고급화, 기술화 등에 집중해 수주를 하고 있다”면서도 “중국도 기술적으로 많이 따라왔고, 비용은 여전히 더 싸기 때문에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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