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빈곤시대]⑦ “한국 청년은 왜 가난한가요?”… 촘촘한 청년 지원책 갖춘 독일·싱가포르

싱가포르=김보연 기자 2024. 1.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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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책 앞선 독일, 싱가포르 르포
독일 학기 평균 등록금 약 43만~58만원
대학에 육아 시설 있어 출산률 증대 효과
싱가포르는 ‘저축’ 중심 사회보장제도 정착
월 20만원 저축하면 정부가 20만원 지원
촘촘한 지원에 한국 청년 빈곤 공감 못해
빚의 수렁에 빠진 한국 청년들과 달리 해외 청년들은 정부의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바탕으로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독일 청년들은 저렴한 등록금, 두터운 청년 복지 제도를 통해 학업에 매진하고 아이를 키우며 여가 생활을 즐겼다. 싱가포르 청년들은 정부 주도의 생애주기별 자산형성 지원 프로그램 덕에 비싼 등록금과 집값이 전혀 부담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에게 빈곤에 허덕이는 한국 청년들의 현실은 공감할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지난 11일 독일 헤센주 카셀에 있는 카셀주립대학교 전경. /김수정 기자

◇ 독일 대학 등록금 40만~50만원

“독일 대학생은 대학을 졸업했을 때 빚이 없어요. 무상 수업료에 생활비까지 지원해 줘 학생들이 온전히 학업에만 집중할 수 있죠. 교육에 있어 학생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지우는 건 기회의 평등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요.”

지난 11일 독일 헤센주에 있는 카셀주립대학교에서 만난 토비아스 루이스(25)씨는 등록금 부담 없이 캠퍼스 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공과대학 3학년인 루이스씨는 아르바이트를 하지도, 부모의 지원을 받지도 않으면서 학업과 문화 생활로 대학 생활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대다수 독일 대학생이 이런 생활을 즐긴다고 했다. 독일은 대학 등록금이 저렴하고 생활비 지원 제도가 활발해 학생들이 돈에 얽매이지 않고 학업과 여가에 집중하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낸 등록금은 주로 학생 복지에 사용되고 있다. 카셀주립대학교의 학기 당 등록금은 340유로(약 49만원)에 불과했다.

루이스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도 있지만, 여행을 가거나 본인 여가를 즐기기 위한 목적이 대다수다”라며 “학비나 생활비로 아르바이트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학비나 생활비 때문에 막대한 대출을 받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픽=정서희

독일 대학교 등록금은 매우 저렴하다. 주(州)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대학생이 매 학기 학교에 내는 돈은 평균 약 300~400유로(약 43만~58만원) 정도다. 이마저도 학생 교통비, 학생회비, 학생 복지비, 문화 지원비 등 주로 학생을 위한 항목들로 구성된다. 학교에 낸 등록금으로 독일 대학생들은 학생증을 제시하면 주를 포함해 일부 교외 지역까지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탈 수 있다. 주 내 모든 박물관, 미술관, 극장을 무료로 관람하는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등록금이 대학 운영비용이 아닌 학생 복지에 사용되고 있었다.

한국 대학을 졸업한 후 카셀국립대학 예술대학에 재입학한 이연정(32)씨는 저렴한 수업료가 학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한국 대학교를 졸업한 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유학을 선택하게 돼 재정적인 고민이 컸는데 여러 나라 중 독일이 학비가 가장 저렴해 선택하게 됐다”며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는 주 20시간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했는데, 독일에서는 경제적 압박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공부에만 집중하면 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독일은 학생들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바푀크(BAföG)제도가 있다. 개인의 생활조건과 가정형편에 따라 지원액 차이가 있지만, 부모에게 독립해 생활하는 경우 매달 주거비 250~450유로(약 36만~65만원)를 포함해 최대 750유로(약 108만원)를 제공한다. 10세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는 신청자의 경우 한 명당 130유로(약 18만원)를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다. 상환 부담도 적다. 지원비의 절반은 무상이며 절반은 이자 없이 원금만 갚으면 된다. 이마저도 빌린 금액이 많으면 원금의 일정 부분만 장기간에 걸쳐 갚아도 된다.

지난 11일 독일 헤센주 카셀에 위치한 카셀주립대학교 캠퍼스에 있는 유아방(왼쪽)과 유치원(오른쪽). /김수정 기자

카셀주립대에서 만난 4학년 요하나 슈페히트(28)씨는 20세에 아이를 낳은 미혼모다. 성인이 된 후 주변 친구들이 대학 진학이나 직업훈련학교(아우스빌둥)를 갈 때, 슈페히트씨는 홀로 아이를 양육했다. 하지만 슈페히트씨는 공부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아이가 4세가 돼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 대학 원서를 작성했고 대학생이 됐다. 미혼모지만 대학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카셀주립대가 ‘가족 친화적 캠퍼스’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카셀주립대 내에는 2개의 유아방과 5개의 놀이터, 유치원, 수유실 등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이 모든 시설은 아이가 있는 학생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일·가정 양립’을 추구하는 독일 사회는 직장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가족 친화적 환경을 추구한다. 독일의 이런 교육 제도는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는 사회의식 속에 이뤄진 성과다. 1971년 독일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평등권을 대학 교육에 관한 평등한 접근으로 해석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독일 대학 등록금은 폐지됐다. 이 판결은 대학 등록금제를 강력히 반대한 학생, 학부모, 교직원의 투쟁 결과였다. 이들은 등록금이 사회 불평등을 심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만큼은 국가의 책임을 키워 기회의 사다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싱가포르 전경. /김보연 기자

◇ 0세부터 목돈 마련 돕는 싱가포르… “교육·주거 걱정 없다”

“싱가포르 집값 비싸죠. 대학등록금도 비싸지만 이곳 청년들은 걱정 안 해요. 결혼을 하거나 35세가 되면 공공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고, 학비 보조금과 정부 지원금도 많기 때문이죠. 한국은 왜 청년들이 가난한가요?”

지난달 27일 싱가포르에서 만난 로 케빈(23)씨는 청년 빈곤 문제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해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졸업 후 동영상 플랫폼 기업 ‘틱톡’에 취업했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청년 대부분은 교육, 주거 문제에 대한 고민이 크지 않았다. 대다수가 학비 부담이 크지 않다고 답했으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금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할지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 배경엔 ‘저축’을 기반으로 한 사회보장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싱가포르의 복지정책은 전(全) 생애주기별로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성인이 됐을 때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물적 기반을 형성시켜 주는 것이 목표다.

싱가포르 정부는 아이가 태어나면 0세부터 6세까지 ‘아동발달계좌(CDA)’를 통해 일대일 매칭 방식으로 보육, 교육 등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7세가 되면 ‘대학교육계좌(PSEA)를 만들도록 해 학비를 미리 쌓을 수 있도록 한다. 이 돈은 30세가 되면 국민연금과 유사한 ‘중앙적립기금(CPF)으로 이전돼 주택을 살 때 쓸 수 있다. 20세가 되자마자 제로에서 시작하는 한국 청년들과 달리 싱가포르 청년들은 정부 지원으로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래픽=정서희

싱가포르에서 2022년 아이를 낳은 한국인 이모(37)씨는 아이의 출생신고 직후 정부로부터 CDA에 가입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원하는 은행을 선택해 계좌를 만들면, 이씨가 납입하는 돈만큼을 정부가 일대일로 매칭해 지원한다. 이씨가 20만원을 납입하면 정부가 추가로 20만원을 지원하는 식이다. 정부의 최대 지원금은 첫째 자녀 6000싱가포르달러(약 600만원), 둘째 9000싱가포르달러, 셋째·넷째 1만2000싱가포르달러다. 남은 돈은 PSEA로 이전된다. PSEA도 정부의 지원 방식은 같다.

조선비즈가 싱가포르국립대에서 만난 십여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CDA와 PSEA가 교육비 부담 완화에 도움이 됐다고 답한 비율은 100%였다. 이들은 주로 자금을 대학 등록금에 활용했다고 했다.

싱가포르국립대에 재학 중인 조쉬 앵(25)씨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작성 중이다. /김보연 기자

조쉬 앵(23)씨는 “싱가포르는 고등교육을 받는 16세부터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대학 진학을 위해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고, 직업 교육을 받거나 바로 사회에 나갈 수도 있다”며 “이때부터 PSEA 계좌가 주어지는데 저의 경우 대학등록금에 일부를 쓰고 나머지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학비는 연간 대략 4000만원 가량이지만 정부 지원금인 ‘튜이션 그랜트’를 받으면 1000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며 “이 밖에 장학금 제도가 많아서 연간 600만원 정도를 학비로 냈고, 부모님은 PSEA에서 일부 자금을 충당했다”고 했다.

교육저축계좌(에듀세이브·Edusave)를 유용하게 사용했다는 답변도 있었다. 에듀세이브도 정부 지원금을 쌓도록 한 계좌인데, PSEA와 달리 저축보다는 당장 교육비에 지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6세에서 16세까지 지원되며, 자녀의 학비 및 각종 납부금, 현장학습비 등에 쓸 수 있다.

조나단 티옹(25)씨는 “에듀세이브로 지원받은 돈을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사용했다”며 “부모님이 훨씬 적은 경제적 부담을 질 수 있었던 점에서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싱가포르는 모든 청년이 원한다면 차별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국가와 차별점을 갖는다”며 싱가포르의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10점 만점에 9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래픽=정서희

주택 구입에 대한 부담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5%였다. 올해 졸업을 앞둔 대학원생 데이먼 웡(27)씨는 “CPF 적립금이나 주택개발청이 2%대로 제공하는 대출을 이용해 다른 나라의 청년들보다 훨씬 쉽게 집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결혼하기 전에 일찍 독립이 어려운 것도 장기적으로는 고민해 볼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창근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싱가포르의 사회보장제도는 저축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라며 “전 국민이 저축계좌를 갖도록 제도화해 자산 형성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 [청년빈곤시대] 글 싣는 순서

① 학자금 대출에 빚투, 결국 불법사채로… ‘빚 수렁’ 벼랑끝 2030

② 출발점 달랐던 두 청년, 10년 후 모습은… 빈곤 대물림 겪는 2030

③ 상위 20% ‘금수저’ 청년 평균 자산 10억 육박… 42%는 “난 빈곤층”

④ 주거 사다리 끊겼다… ‘부모 찬스’ 없으면 평생 월세 신세

⑤ 복지 사각지대 내몰린 2030… 기초생활수급자 5년 새 44% 증가

⑥ 20대 금융이해력 49점… 범죄·사기 노출된 금융문맹 청년층

⑦ “한국 청년은 왜 가난한가요?”… 촘촘한 청년 지원책 갖춘 독일·싱가포르

⑧ “아프니까 청춘인 시대 끝나… 복잡한 청년 문제 맞춤형 정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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