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 스포츠 워싱?…비난만 할 수 없는 이유
탈석유 시대 사회·경제구조 다각화 일환 시각도
#카타르는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을 개최했고, 현재 아시아축구 국가대항전 아시안컵을 치르고 있다. 2023년에는 세계유도선수권대회를 열었고, 올 여름에는 세계 아티스틱 수영 챔피언십도 개최한다. 2027년 세계 농구 월드컵도 아랍 국가 최초로 연다. 2030년 아시안게임 개최지도 카타르다. 카타르 사람들은 육상, 농구, 핸드볼, 배구, 크리켓, 수영 등을 즐긴다. 카타르 자본은 프랑스 최고 축구단 파리 생제르맹도 소유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프로축구리그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 나스르), 카림 벤제마(알 이티하드), 네이마르(알 힐랄) 등 글로벌 스타들이 뛰고 있다. 연봉은 2500억원 안팎이다. 사우디는 2022년 ‘LIV 골프대회’를 창설했고, 지난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로부터 자발적 합병을 받아냈다. 2027년 아시안컵, 2034년 아시안게임도 사우디에서 열린다. 2034년 월드컵 개최지도 사우디로 굳어졌다. 올 여름에는 세계 최대 규모로 ‘e스포츠 월드컵’을 개최할 예정이다.
#아랍에미리트(UAE)는 2018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했다. 맨시티는 2022~2023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을 싹쓸이했다. UAE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스포츠는 축구다. 모토스포츠, 크리켓, 배드민턴, 사이클, 승마, 골프, 아이스하키, 스쿼시, 탁구 대회도 자주 열린다. 지난해 아부다비에서는 미국프로농구(NBA) 프리시즌 경기도 벌어졌다.
석유 의존 탈피, 생존 위한 과제로
펑펑 터지는 기름과 가스 덕분에 편안하게 살아온 산유국들이 왜 스포츠에 적극적으로 투자할까. 일단 저유가 시대, 궁극적으로 석유 고갈 등에 대한 걱정이 지배적이다. 석유, 가스 등 천연자원에 의존한 경제 구조를 다각화해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게 생존을 위한 당면과제인 셈이다.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풍부한 자금력을 앞세워 차세대 세계 중심이 될 수 있는 길을 국가 차원에서 모색 중이다.
UAE는 서남아시아국가 중 가장 먼저 국제화에 나섰다. 두바이는 현재 세계 항공교통의 허브이자 세계적인 관광도시다. UAE는 카타르월드컵 특수도 누렸다. 카타르와 UAE 간 비행시간은 45분이다. 항공편도 하루 30회 안팎이다. 월드컵은 카타르에서 보고 숙박, 여행은 두바이에서 하는 관광객이 많았다. UAE는 음주가 가능하고 남녀 차별이 거의 없으며 제도적 규제도 유연하다. UAE는 2018년 석유·가스 산업 의존도가 26%였다. 그게 2020년에 17%로 줄었다. 무역업, 금융업, 제조업, 건설업 비중은 조금씩 늘었다. 탈석유 경제, 스마트시티를 추구하는 아랍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6년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 계획으로 석유산업 의존도를 낮추고 민간 경제를 육성하는 게 핵심이다. 비전 2030은 ‘활기찬 사회’, ‘번영하는 경제’, ‘진취적인 국가’ 등 3대 영역으로 구성됐다. 3대 영역을 아우르는 게 스포츠다. 사우디는 무려 780조원 규모로 국부펀드(PIF)를 조성해 운영 중이다. 이 돈으로 LIV 골프를 개최했고, 다양한 국제대회 유치, 축구 스타 영입, 축구단 인수 등도 했다. 스포츠를 정권 안정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이슈페이퍼에서 ‘스포츠 산업에 진심인 아랍’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이철규 스태츠퍼폼 한국지사장은 “아랍이 스포츠에 투자하는 가장 큰 배경은 정권 안정”이라며 “자국민 처우개선 등에 정부 지출이 크게 늘면서 이전 형태로는 체제를 지속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사우디의 평균연령은 30.8세(한국 43.2세)다. 20세 이하 인구는 33.4%(한국 16%)다. UAE 평균연령은 38.4세, 20세 이하 인구는 18.6%다. 아랍청년여론조사, 사우디아라비아 가치여론조사 등에 따르면, 젊은 세대는 종교, 가족, 공동체, 민족이라는 전통적 가치 대신 탈전통, 탈민족주의, 탈종파주의를 중시한다. 그동안 부족주의 네트워크 안에서 강력하게 작동한 기득권 연줄 문화(와스타)로는 젊은 층을 잡기 힘든 상황이다.
개방·진보에 스포츠 이벤트 활용
카타르는 사우디, UAE와 비교해 기술 근거 산업에 집중한다. IBM은 수도 도하에 핀테크, 스포츠테크 등 기술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혁신센터를 설립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도 도하에 아랍본부를 두고 있다. 정부는 카타르국립은행. 카타르스타즈리그, 베인 미디어 그룹과 함께 카타르 스포츠텍(Qatar SportsTech)을 설립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국제스포츠혁신센터(GSIC)와 손잡고 덴마크 기반 세계 최대 테크 스타트업 네트워크인 ‘스타트업 부트캠프(Startup Bootcamp)’와 연계해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고 있다. 이철규 지사장은 “스타트업들은 타스무(TASMU)라는 국가디지털화 프로그램 스포츠 부문을 활용해 사업성을 검증받고 세계 진출도 꾀한다”고 말했다.
현재 서남아시아가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비만이다. 남녀 성인 비만율을 보면, 카타르는 남성 33.46%, 여성 44.60%다. 사우디는 남성 31.73%, 여성 43.74%다. UAE는 남성 28.44%, 여성 42.46%다. 세계 20위 안에 들어가는 비만국이다. UAE는 지난해 ‘국가 스포츠 전략 2031’을 수립해 국민이 한 가지 이상 운동을 하도록 목표를 설정했다. UAE는 2013년 세계 비만율 5위까지 오르자 파격적인 비만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청소년부를 스포츠부로 변경하기도 했다. 비만 문제, 자국민 의무 고용 정책에서 비롯된 안일한 근무 태도 등을 해결하는 데 스포츠만 한 게 없다. 또 높은 실업률 등으로 다소 무기력한 젊은 층에 국제 수준에 부합하는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맞는 산업, 교육, 문화 인프라를 갖출 필요성도 있다.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이 대규모 이벤트를 유치하면 서방 언론은 ‘스포츠 워싱(Sports Washing)’이라고 비판한다. 스포츠 워싱은 좋지 않은 국가 이미지를 대형 이벤트 개최 등을 통해 세탁한다는 뜻이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서남아시아의 스포츠 투자에도 ‘스포츠 워싱’ 꼬리표가 어쩔 수 없이 붙는다”면서도 “보수적 사회 성향, 높은 비만율과 실업률, 석유 고갈 위기 속에서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국가 정책을 바꾸는 데도 스포츠가 활용되고 있다. 스포츠 워싱이라고만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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