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류희림 방심위’ 제재 93%는 정권비판 보도 찍어내기
법정제재 561건 전수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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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법정제재가 류희림 위원장 취임 이후 월평균 7건을 넘는 등 과거에 견줘 크게 늘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정부 비판 보도와 프로그램이 주요 대상이었다.
방송심의규정의 ‘공정성·객관성 조항’을 적용한 방송심의 비율이 류 위원장 체제에서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점도 새롭게 드러났다. 윤석열 정부에서 비판 언론 옥죄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방심위의 정치 심의 행태가 구체적 수치로 입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8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방심위의 ‘1∼5기 보도·교양 프로그램 법정제재 현황’(2008~2023년) 561건 전체를 분석해보니, 방심위는 류 위원장 취임 이후 채 넉달이 안 되는 기간(2023년 9월11일~12월) 동안 모두 27건의 법정제재를 의결했다. 월평균 7.04건꼴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때 위촉된 강상현 위원장(2.88건), 정연주 위원장 체제(0.64건)는 물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인 1~3기 방심위보다도 많은 수치다.
류 위원장 체제에서 이뤄진 법정제재는 대부분 정치적·주관적 판단의 결과물로 분류된다. 구체적으로는 법정제재 27건 중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9조(공정성)와 13조(대담·토론 프로그램), 14조(객관성)를 적용한 심의가 25건으로 대다수(92.6%)를 차지했다. 이 또한 과거 위원장 시기(1~5기)에선 절반을 넘지 않았다는 것(29~48%)과 비교할 때 압도적인 비율이다. 방송심의규정은 방송법에 따라 방심위가 정해놓은 것으로, 이 규정 1절(공정성)에 속하는 9조와 13조,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처럼 방송하면 안 된다”는 내용인 14조(객관성) 등 세 조항에 따른 심의를 학계에서는 모두 ‘공정성 심의’로 간주한다. 이들 조항을 적용한 심의는 위원회 구성이나 각 심의위원의 성향 등에 따른 주관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워 ‘정치 심의’ ‘편파 심의’ 논란이 이어져 왔다.
문제는 공정성 심의로 묶이는 9·13·14조 조항 적용 심의가 자칫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 보도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해당 조항의 내용이 모호하거나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각 심의위원의 추천 경로나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정책연구위원을 지냈던 이남표 용인대 교수는 “공정성에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부터 불편부당성까지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다”며 “특히 불편부당성을 판단하려면 방송사의 시사·보도를 전수조사해야 하는데, 보통은 특정 보도만 다룬다. 이러면 ‘미운 방송 찍어내기’라는 시선을 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류 위원장 체제의 방심위가 공정성 심의를 통해 법정제재를 의결한 25건의 내용을 살피면, 그간 방심위가 정치 심의를 벌여왔다는 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심의 대상 모두가 윤석열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이나 정부 정책 비판 등을 다룬 시사·보도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무마 의혹과 관련한 제재만 13건(52%)이나 됐다. 그 밖에 대통령실의 문화방송(MBC) 전용기 탑승 거부, 코바나컨텐츠 후원 건설사의 서울중앙지검 증축 설계용역 수주, 천공의 관저 개입 의혹,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이태원 유가족 단체 면담 거부, 정부의 안전운임제 폐지와 화물연대 파업 관련 보도 등도 법정제재를 피하지 못했다. 공정성 심의가 아닌 다른 두 건은 의료·건강 정보 관련 프로그램이 대상이었다.
반면 과거 위원장 시기(1~5기)에는 보도·교양 프로그램에 대한 법정제재 건수나 공정성 심의 비율 자체도 상대적으로 적거나 낮았지만, 여기에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이 아닌 한국방송(KBS) ‘브이제이(VJ) 특공대’나 ‘생생정보통’, 문화방송(MBC) ‘생방송 오늘 아침’과 ‘티브이 특종 놀라운 세상’, 에스비에스(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등 일반 교양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 결과가 모두 포함돼 있었다.
법정제재의 강도도 이례적으로 높았다. 방심위의 결정은 행정지도 단계인 ‘의견 제시’와 ‘권고’, 법정제재인 ‘주의’와 ‘경고’ ‘관계자 징계’ ‘과징금’ 등으로 나뉜다. 법정제재부터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에 그 결과가 반영되는 만큼 중징계로 분류된다. 이처럼 방심위의 결정은 자칫 방송사의 존립을 위협할 수도 있는 만큼, 역대 방심위는 법정제재의 수위를 결정할 때도 신중함을 유지했으나 류 위원장 체제는 달랐다.
특히 방심위는 지난해 11월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무마 의혹(‘윤석열 검증보도’)과 관련해 검찰에서 수사 중인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 파일’을 인용한 보도 5건, 의혹 사실을 다룬 보도 1건을 심의해 방송사 4곳에 과징금 1억4천만원을 부과했다. 과징금은 방심위가 결정할 수 있는 최고 수위의 징계다. 이전까지 2008년 출범한 방심위 역사상 과징금 처분은 2건(2019년)에 그친다. 그마저도 기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인터뷰이의 음성인 양 변조한 조작 보도에 1500만원씩 부과한 것으로, 이번과는 결이 달랐다.
방심위는 지난 18일 류 위원장과 지상파 4개사 사장 간 간담회 소식을 알리면서 보도자료에 “류희림 위원장은 방심위의 심의 원칙은 ‘최소 규제’와 ‘자율규제 활성화’라며, 방송사의 의견을 경청하였다”고 썼다. 여기서 거론된 최소 규제는 사실상 국가 행정기관 노릇을 하는 방심위가 언론 보도에 규제를 남발할 경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검열, 위축 효과가 나타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영역에 한정해 신중하게 심의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날 류 위원장은 방심위의 최근 실상과 정반대의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미디어학부)는 “방심위는 구조상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기구이지만, 한국 사회에는 방송의 공정성을 위해 규제하길 바라는 심리가 있다. 방심위의 생래적 문제와 사람들의 현실적 요구 사이 타협점이 최소 규제 원칙”이라고 설명한다. 이어서 강 교수는 “공정성은 누가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를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최소 규제라는 거창한 개념까지 동원할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류희림 체제의 방심위가 그동안 윤석열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 보도를 옥죄기 위해 노골적으로 ‘정치 심의’를 벌여왔다는 사실이 구체적인 수치로도 밝혀졌다”며 “독립적이어야 할 방심위의 심의 기능을 허물어뜨리면서 ‘청부 민원·셀프 심의’ 위법 논란까지 일으킨 류 위원장은 즉각 사퇴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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