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FTA 발효 20년, 사과 수입을 경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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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재 소비하는 농식품의 70% 가까이는 외국산이다.
그렇다보니 소비자들도 수입 농식품에 큰 거부감이 없는 듯 보인다.
우리 식량자급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이유는 수입 농식품의 범람과 소비 패턴의 다양화 등에서 찾을 수 있다.
FTA 파고 속에서 우리의 동식물 검역부문이 수입 농식품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무분별한 수입을 저지하는 수문장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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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재 소비하는 농식품의 70% 가까이는 외국산이다. 그렇다보니 소비자들도 수입 농식품에 큰 거부감이 없는 듯 보인다. 우리 식량자급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이유는 수입 농식품의 범람과 소비 패턴의 다양화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시장 개방화 기조 아래의 우리 정부 통상정책도 한몫을 했다.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20년을 맞은 현재 우리나라는 59개국과 21건의 FTA를 체결해 FTA 강국(?)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다.
한건의 FTA가 체결되고 발효되기까지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대국과 밀고 당기는 협상을 반복해야 하고, 국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편익을 조율해야 한다. 피해가 우려되는 부문을 설득하고 필요에 따라 상응하는 보전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우리 농업부문은 이미 체결한 대다수 FTA에서 피해보전 대상으로 분류되었다. 즉 협상에서 비교우위 논리에 따라 시장을 내주는 대상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농업분야 협상에 있어 우리 정부는 그 나름의 원칙과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초민감품목에 속하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았고, 양보하더라도 해당 품목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국내 농산물 수입은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우리나라의 농산물 수입액은 2004년 134억8000만달러에서 2023년 501억7000만달러로 연평균 7.2%씩 증가했다. 이는 국내 농식품 수요 증가의 영향이 크지만, 농식품 수입의 비가역성(非可逆性, 되돌릴 수 없는 성질)에서 주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일단 수입이 허용되면 다시 수입을 저지할 명분을 찾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외국산은 시장 확장성이 높아 수입시장 진입 후 국산을 대체하며 시장을 잠식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FTA가 발효돼 관세율 인하에 합의했더라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수입위험분석을 통해 안전성이 검증되어야 비로소 수입이 허용된다. 8단계로 이뤄진 수입위험분석은 수입국 입장에서 비교적 유연하게 진행할 수 있어 특정 품목의 수입을 지연시키는 비관세조치로 활용되기도 한다. FTA 파고 속에서 우리의 동식물 검역부문이 수입 농식품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무분별한 수입을 저지하는 수문장 역할을 했다. 그러다보니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무너뜨리는 FTA에서 위생·검역 조치는 집중 타깃이 됐다.
최근 물가안정을 목적으로 물가당국 주도의 사과 수입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그동안 FTA 농업분야에서 정부가 고수했던 원칙, 비관세조치를 활용한 국내 농업 보호 전략을 일시에 허무는 매우 근시안적인 발상이다. 농식품 수입의 비가역성에 비추어볼 때, 초민감품목 가운데 대표성을 가진 사과 수입이 일단 허용되면 먼저 사과를 포함한 국내 과수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고 더 나아가 그 파장이 국내 농업분야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다.
전장과도 같은 글로벌 교역시장에서 스스로 무장 해제하고 적군의 침투를 허용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전술인가?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무시하고 졸속으로 수입해 공급량을 늘리는 것이 과연 소비자의 편익을 위한 것인가? 또 물가대책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게 될 피해 농가의 입장은 고려한 것인가? 식량은 결코 정치재나 포퓰리즘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정부 당국이 식량안보와 식품안전 관련 정책 결정에 앞서 보다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이다.
지성태 서울대 국제농업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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