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 40만 대군의 투석기...CG가 만들고, VFX로 쐈다
기획 단계부터 공동 제작사로 참여
시각화 가이드라인 만들어 효율적 촬영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5화(2023년 11월 25일 방송분)의 마지막 장면은 시청자들을 전율하게 했다. 흥화진을 지키는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의 눈앞으로 거란군이 투석기로 던진 불에 타는 돌이 날아오는 장면이다. 이어진 6화에서 불덩이들은 흥화진 내 마을 곳곳에 날아들어 건물을 무너트렸다. 거란군 40만 명이 성을 두들겼고 이에 맞선 고려군 3,000명도 불화살을 쐈다.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 '산성 전투'의 대부분은 그래픽(CG)과 시각효과(VFX)로 이뤄졌다. 흥화진 성벽과 마을은 경북 문경시 가은오픈세트장에 만든 촬영장이다. 산성 전체는 문경시 고모산성을 스캔해 세트 양옆으로 그래픽을 이어 붙였다. 거란군의 투석기 중 진짜는 두 대뿐인데 경기 화성시 형도에서 이들을 스캔한 뒤 수십 대로 늘렸다. 이 드라마는 CG와 VFX 기술 활용을 높게 평가받아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열고 한국전파진흥협회(RAPA)가 주관하는 뉴테크 융합 콘텐츠 대상을 탔다.
드라마의 비주얼 슈퍼바이저 역할을 맡은 버추얼 프로덕션 전문 기업 비브스튜디오스 신창우 미술감독은 "그래픽 제작에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지만 같은 내용을 실제 만들어 촬영하면 그보다도 몇십 배, 몇백 배 더 많은 돈이 든다"라고 말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10815420004684)
역대급 스케일의 홍화진 전투 장면
이 드라마 기획과 촬영은 KBS의 드라마 제작 담당 자회사 몬스터유니온이 이끌지만 비브스튜디오스도 공동 제작사로 CG와 시각 효과를 맡는 것을 넘어 기획 단계부터 시각적 묘사 분야에 힘을 보탰다. 보통 VFX 기업이 드라마 후반 작업에만 참여하는 걸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고려거란전쟁은 어떤 화면을 실제 찍고 시각 효과로 어떻게 보완할지 계획했다. 신 감독은 촬영 전 콘셉트 아트를 만들고 프리비주얼을 제작해 영상화한 가이드라인을 보여줬다. CG가 들어가지 않아도 카메라 동선과 촬영 범위를 만드는 등 꼼꼼하게 준비했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CG와 현실 촬영 결과의 간극을 줄이는 게 중요했다. 예를 들어 흥화진 전투도 문경 세트장을 3차원(3D) 라이다와 드론 등으로 찍은 뒤 '포토스캔' 방식을 통해 데이터를 만들었다. 촬영 현장에서도 시각 효과가 마지막에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염두에 둘 수 있었다.
대미 장식할 귀주대첩은 VIT 계획
이전에도 사극에 CG를 자주 썼지만 CG를 중심으로 주춧돌을 쌓는 방식은 비브스튜디오스나 KBS 양쪽 모두에 도전이었다. 이 드라마의 테크니컬 슈퍼바이저를 맡은 김승준 KBS제작기술센터 후반제작부 팀장은 "이런 방식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 후반부의) 귀주대첩은 30만 명이 맞붙는 장면을 보여줘야 했다"며 "카메라 앞쪽은 실제 촬영을 넣고 먼 곳은 디지털 캐릭터의 전투로 묘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징비록'이나 '태종 이방원'을 찍을 때는 '떼샷'이 너무 무서웠다"면서 "이번엔 대규모 전투를 많이 넣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신 감독은 "CG팀에 많은 요청을 했는데도 김한솔 감독('고려거란전쟁' 연출)님이 잘 이끌어 주셨고 스태프들과도 호흡이 잘 맞아 협업이 잘 됐다"며 "우리 CG 기술도 중요하지만 결국 기획과 협업의 성과"라고 말했다.
"현장 촬영의 중요성이 줄어들 수 없어"
앞으로 드라마에선 비브스튜디오스 특유의 'VIT 솔루션'도 활용할 계획이다. 실내 스튜디오의 벽면에 대형 스크린을 덮고 언리얼 엔진으로 만든 그래픽 배경을 띄워 그 앞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찍는 방식이다.
기존에 주로 쓰이던 크로마키 촬영과 달리 실제와 같은 배경에서 찍기 때문에 연기자들도 시선 처리가 쉬워진다. '스타워즈' 세계관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만달로리안'은 가상 공간이 배경이기에 드라마를 아예 이 기술로 찍었다.
KBS에선 지난 여름 무너져 쓸 수 없는 전남 나주시 고려궁 세트장을 스캔해 뒀는데 이 데이터를 배경으로 띄워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김 팀장은 "가상 공간의 시간대도 낮과 밤으로 자유롭게 바꿀 수 있고 실제 현장처럼 찍을 수 있다"면서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가상 기술이 '만능'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신 감독은 "촬영이 잘된 진짜가 많이 담겨야 CG도 잘 나온다"라고 말했다. 김 팀장도 "대규모 전투 장면을 찍을 때 확실히 유리하지만 현장 촬영을 전혀 안 할 수는 없다"면서 "CG와 현장 촬영 내용이 겹칠 때 발생하는 '어색함'의 간극을 줄이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과기정통부와 RAPA는 AI 디지털 기술 기반의 혁신이 있는 방송제작을 지원하고 있다"며 "2024년에도 미디어 콘텐츠 핵심 응용 기술 발전을 위해 모든 역량을 모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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