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공항 망국론을 멈추려면

강경희 기자 2024. 1. 29.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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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감사원이 ‘정치공항’ 특감
무안공항 짓는 데 3000억원, KTX 연결에 또 2조5000억원
개항 17년에도 요원한 ‘서남권 관문’
공항은 정치적 전리품 아냐… 세계와 경쟁하는 산업
지난해 양양국제공항 대합실이 한산한 모습. 2023.5.25/연합뉴스

20년 전인 2004년, 감사원이 김제·무안·울진공항에 대한 특감 결과를 발표했다. 이미 진행 중인 대형 국책 사업을 감사원이 재검토하라고 강도 높게 요구하면서 제동을 건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 이들 ‘정치공항’은 정치권 요구에 짜맞추기 해서 수요를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세 공항의 현 주소는 이렇다.

김제공항은 김대중 정부 시절 새만금 지역의 항공 수요에 대비한다며 건설을 추진했지만 감사원 지적으로 건설은 무산됐다. 하지만 새만금 공항으로 부활을 노리고 있다. 오는 4월 총선에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은 “전북 발전에 디딤돌이 되기에 김제공항을 추진했는데 좌절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새만금 공항으로 되살린 것”이라면서 불씨를 지피고 있다. ‘김중권 공항’으로 불리는 울진공항은 감사원 지적으로 기본계획을 변경하고 겨우 완공됐으나 취항할 항공사가 없어 2010년 비행훈련원으로 용도를 바꿔 사용 중이다. ‘한화갑 공항’으로 불리는 무안공항은 개항 17년째 반쪽짜리 공항이다. 공항 짓기 전 수요예측치는 연간 992만명이나 됐다. 지난 17년간 이용객 수를 다 합해도 그 절반도 안되는 400만명 미만이다. 광주공항과 통합해 ‘서남권 거점공항’으로 만들겠다는데 무안군이 민·군 공항인 광주공항의 군 공항 이전은 못 받겠다고 반대하면서 통합이 지지부진하다. 공항 건설에 3000여 억원 들었는데 호남고속철 2단계 공사에서 무안공항역을 짓느라 2조5000억원 넘는 건설비를 또 들였다.

가덕도 신공항 등 선거가 불쏘시개가 되어 재점화된 신공항 건설 붐에 공항 망국론의 우려도 쏟아진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에는 공항이 98개나 있다. 남북 길이가 3000㎞로 한반도의 3배, 면적이 대한민국 3.8배에 달하는 크기여서 공항 수요가 우리보다 많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공항 난립은 심각한 수준이다. 각 지자체마다 1개 이상 공항을 짓는 바람에 대부분 적자다. 아직 일본보다는 상황이 낫다. 우리나라 공항 15개 중 8개는 민·군 공용이다. 필요한 공항은 지어야 한다. 지금 추진 중인 울릉도·백령도·흑산도 같은 섬의 소규모 공항은 전략적으로 짓고 관광 수요도 개발하면서 영토 활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 그리스처럼 섬 많은 나라에는 큰 섬마다 비행기가 뜬다.

문제는 양양·무안공항 같은 황당한 ‘정치공항’에 어떻게 제동을 거느냐다. 지금 같은 공항 건설·운영 방식으로는 ‘공항 포퓰리즘’이 근절되지 않는다. 공항이 국가의 전략적 판단, 경제 논리로 건설되려면 두 가지 필요 조건이 있다.

첫째, 국토부가 공항 건설 계획을 철도 건설과 연계해서 짜야 한다. 국가기간교통망의 20년 단위 장기 계획하에 추진된다지만 실제로는 ‘제6차 공항개발종합계획’(2021~2025년)과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2021~2030년)이 따로 논다. 지구 온난화 시대에 맞지 않는 구태의연한 개발 계획이다. 유럽에서 기차는 비행기의 대체재가 되고 있다. 프랑스는 철도로 2시간30분 이내에 닿는 구간의 항공 화물 운송을 금지하는 기후대응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에는 온실가스를 대거 배출하는 비행기 타고 여행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고속철 또는 노후화된 기존 철도의 현대화에 더 투자해서 육지의 공항 수요를 줄여야 한다.

둘째, 공항 건설 및 운영을 국가가 다 책임지는 구조를 깨야 한다. 정치인들은 ‘입’만 갖고 공항 짓는다. 양양·무안 공항의 실패를 뻔히 보면서도 공항 생기면 지자체 경제가 훨훨 날 것처럼 장밋빛 발언을 쏟아내고 지역 언론도 거든다. 선거 앞두고 대통령까지 달려가 공항 건설을 약속한다. 아무리 비판해 봤자 ‘공항 포퓰리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초지일관 목소리를 높이면 나랏돈으로 공항 지어주고 운영은 공기업인 한국공항공사가 도맡아 적자도 책임져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항은 이익을 내야 하는 ‘산업’이다. 해외에서는 적자 공항은 외국 기업에 팔리기도 한다. 프랑스 뱅씨 그룹 같은 회사는 세계 13국에 70여 개 공항을 운영한다. 싱가포르 창이공항도 해외 공항 운영에 참여한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유권자들에게 해외 여행 가기 편하게 해주겠다고 유혹하는 ‘정치적 전리품’으로 변질되고 있다. 지자체별로 공항 수요가 있다면 상당 부분 재원을 부담시키거나 민간 자본을 유치하게 하고, 운영도 책임지게 해야 한다. 민·군 공용으로 쓰이는 작은 국내 공항까지 그럴 필요는 없고, 명색이 국제공항 간판을 단 7개 공항은 인근 지자체들이 똘똘 뭉쳐 관광상품을 공동 개발하고 아시아 각국의 항공편 및 관광객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공항별 국제수지 통계도 따져야 한다. 일본 지방공항의 처절한 실패와 뼈를 깎는 자구책도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애물단지 공항도 살리고 지방 경제도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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