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테일러노믹스를 보면서
지역 경제 살린 공로 인정…이름 딴 경제 용어도 등장
지난해 12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23년 올해의 인물’로 미국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를 선정했다. 대중예술가가 단독으로 뽑힌 건 처음이다. 스위프트의 경쟁자는 찰스 3세 영국 국왕,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등이었다. 타임은 예술과 상업적 측면에서 핵융합 같은 에너지를 분출했다고 설명했다.
스위프트를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간단하게 소개한다. 198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나 컨트리 가수를 꿈꿨다. 두 번째 앨범 ‘피어리스(Fearless)’로 19세에 세계적인 팝스타로 떠올랐다. 2010·2016·2021년 세 차례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역대 네 번째였다. 또 앨범 ‘1989’(테일러스 버전)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에서 5번째 1위에 올라, 총 68주 동안 이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1956년부터 2002년까지 10개 앨범으로 기록한 솔로 가수 최장 기록 67주를 넘어섰다. 전 세계적으로 팔린 앨범도 2억 장이 넘는다. 뒷담화를 조금 보태면 남자 친구와 헤어진 뒤 연애사를 노래에 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35세의 스위프트는 현재 세계 최고 아티스트다. 그런데 스위프트는 그 반열을 넘어 또 다른 세계로 올라섰다. 그건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스위프트는 지난해 음반과 저작권료 콘서트 굿즈 등으로 18억2000만 달러(약 2조4000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특히 60회를 소화한 순회공연 ‘에라스 투어’는 매출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를 기록했다. 미국 대중음악 콘서트 투어 사상 첫 10억 달러 돌파였다. 3시간 30분 동안 44곡을 부르는 공연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지난해 7만여 명의 관객이 가득 찬 시애틀 루멘필드 경기장 주변에서 규모 2.3의 지진이 감지됐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회당 평균 7만2489명의 관객이 들어왔으며, 티켓 평균 가격은 238.95달러(약 31만9000원)로 일반 공연보다 비쌌다. 그것도 구하기 어려워 재판매사이트에선 1600달러(약 214만 원)를 지불해야 했다.
분석을 좋아하는 사람과 기관이 현미경을 갖다 댔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경기 동향 보고서 ‘베이지북’에서 “스위프트 콘서트로 지난해 5월 필라델피아 지역 호텔 매출과 시카고 전역의 대중교통 이용률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에라스 투어’가 열린 지역은 호텔 가격이 뛰고 관광 수입으로 경제가 살아났다. 심지어 스위프트 공연이 지난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을 43억~57억 달러(약 5조7000억~7조6000억 원) 정도 늘렸다는 분석까지 제기됐다.
스위프트가 몰고 온 현상을 규정하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스위프트의 영향력을 ‘테일러노믹스’(Taylornomics)로 명명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이름과 ‘경제학’(economics)을 합성한 단어다. ‘스위프트노믹스’(Swiftnomics)로 부르기도 한다. WSJ는 코로나19로 억눌려 있던 미국 지역 소비를 회복하는데 스위프트의 투어가 도움이 됐다고 분석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지난해 3분기 미국 실질 소비지출 증가에 투어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이제는 테일러노믹스가 그냥 만들어진 명칭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테일러노믹스가 우리에게 완전히 생소한 단어는 아니다. 이미 경험한 적이 있다. 트로트 가수 임영웅이 2020년 이후 출연한 광고마다 대박을 치자 ‘히어로노믹스’(영웅+economics)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방탄소년단(BTS)은 팬덤 ‘아미’를 앞세워 ‘팬덤 경제’의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줬다. 미국의 한 잡지는 2018년 BTS의 연간 수입이 한국 GDP의 0.3%를 차지한다고 주장했다.
스위프트 열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호주 멜버른 대학은 다음 달 스위프트의 이름을 딴 학술대회 ‘스위프트포지엄’을 연다. 미국 명문 하버드대는 봄 학기부터 ‘테일러 스위프트와 그녀의 세계’ 강의를 신설해 스위프트의 음악 세계를 탐구한다. 플로리다대와 뉴욕대도 스위프트에 대한 강의를 개설했다.
이 정도면 타임이 올해의 인물에 선정한 이유도, 세계 최고 아티스트의 반열을 넘어 다른 세계로 올라섰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위프트는 예술성과 상업성을 갖춘 아티스트와 콘텐츠가 대중예술뿐만 아니라 산업, 즉 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새삼 대중예술과 콘텐츠의 힘에 놀라게 된다.
궁금한 것은 다음이다. 스위프트가 길을 개척했다면, 누가 배턴을 이어받느냐는 것이다. 이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K-컬처일까?
김희국 편집국 부국장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