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5] 매화를 찾아서
매화를 찾아서
구름떼처럼 모인 사람들만 보고 돌아온다
광양 매화밭으로 매화를 보러 갔다가
매화는 덜 피어 보지 못하고.
그래도 섬진강 거슬러 올라오는 밤차는 좋아
산허리와 들판에 묻은 달빛에 취해 조는데.
차 안을 가득 메우는 짙은 매화향기 있어
둘러보니 차 안에는 반쯤 잠든 사람들뿐.
살면서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과 악취가
꿈과 달빛에 섞여 때로 만개한 매화보다도
더 짙은 향내가 되기도 하는 건지.
내년 봄에도 다시 한번 매화 찾아 나섰다가
매화는 그만두고 밤차나 타고 올라올까.
-신경림(1935~)
내가 사는 제주도 애월읍 장전리에는 매화가 피었다. 얼어붙은 땅에 뿌리를 박고서도 수선화가 함초롬히 피더니 이내 매화가 피었다. 앞집 마당에 핀 매화를 오가며 바라본다. 낮에 보면 햇살 부스러기 같고, 밤에 보면 달의 조각 같다. 특히 밤에는 그 둘레에도 둥그렇게 하얀 테가 생겨 마치 월훈(月暈)을 보는 듯하다. 맵고 독한 한파와 폭설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터트려 볼수록 고아하고 그윽하다.
시인은 매화를 보러 갔다 매화를 보지 못하고 돌아온다. 밤차의 차창 너머로는 달빛이 환하다. 승객들은 지쳐 곤한 잠에 들었다. 그런데 시인은 그때에 매화의 향보다 더 강렬한 향기를 맡는다. 왁자지껄하고 땀 냄새가 물씬 풍겨오던 그 개개의 사람이 활짝 핀 매화처럼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시인은 “자잘한 삶의 결, 삶의 얼룩”을 놓치지 않는 시가 귀한 시라고 말했는데, 이 시에서도 그러한 시심을 읽을 수 있다. 봄을 찾아, 꽃을 찾아 온 산을 헤맬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우리의 가옥(家屋)과 앞마당과 뒤뜰과 인파(人波)와 푸진 인심(人心) 속에 봄도 꽃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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