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중국해의 중국·아세안 갈등… 서해의 교훈으로 삼아야
지난해 아세안 의장국을 맡은 인도네시아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고 중국과 아세안 간의 행동 강령에 관한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 문제는 예년처럼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 문제에 임하는 중국과 아세안 국가 특히 싱가포르·필리핀·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원칙파’ 6국 간의 입장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으로 관찰된다.
남중국해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중국 측 시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중국은 서구에서 중시하는 법률적 규율보다 역사, 권력, 상호 간의 관계 등을 중시해 온 문화가 있다. 2015년 시진핑 주석은 싱가포르 국립대에서 행한 연설 후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을 묻는 질의에 “남중국해는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이며 우리는 그 유산을 포기할 수 없다”고 답변한 바 있다.
중국은 유엔해양법협약의 성안 과정에 적극 참여했고 서명과 비준까지 마친 당사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핀이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해 제기한 중재 절차에 참여하기를 거부했고, 2016년 중재재판소가 내린 판정도 준수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남중국해 중재 판정은 중국이 주장한 역사적 권리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국은 아직까지 근거가 희박한 역사적 어업권을 들어 인도네시아 등의 배타적경제수역 내에 많은 어선을 조업시키고 있다. 기실 중국이 남중국해의 대부분을 자신의 영역으로 설정한 ‘9단선’도 1947년 국민당 정부가 일방적으로 공표한 11단선을 약간의 수정을 거쳐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반면 아세안 국가들은 국익을 지키는 절대적 기반인 해양법협약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지난 30년 가까이 진행된 남중국해에서의 행동 강령에 대한 협상에서 아세안 국가들은 해당 강령이 해양법협약을 포함한 국제법과 일치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견지해 왔다. 행동 강령에 대한 합의가 곧 이루어질 것처럼 설명하는 일부 주장과는 달리 현재까지 별 진전이 없는 근본 이유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중국은 남중국해에 지속적으로 군함을 파견하고 무인도나 환초를 군사기지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1995년 중국이 필리핀 팔라완섬에서 130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미스치프 암초(Mischief Reef)를 점령하자, 당시 싱가포르의 리콴유 선임장관은 이를 마치 큰 개가 자기 마음에 드는 나무 밑에서 한쪽 다리를 들고 영역 표시를 하는 행동과 유사한 것으로 비유했다.
그렇다면 남중국해에서 진행 중인 갈등 상황은 우리와 별 상관 없는 동남아 국가들만의 문제일까? 한국과 중국은 1996년 이래 서해상의 경계 획정을 위한 회담을 계속해 왔으나, 경계 획정의 구체적 방법에 관한 현격한 입장 차이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중국은 합의 타결보다는 시간 끌기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그러한 와중에도 중국은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 내에서 자국 어선이 불법 조업하는 것을 방치하는가 하면, 한국 측 해군 함정이 중간선보다 훨씬 한국 쪽으로 치우친 동경 124도 서쪽 해역으로 넘어와 작전하지 말라고까지 요구했다.
근래에는 양측 간 경계선이 획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시로 정해놓은 어업 관련 잠정 조치 수역 내에 석유 시추 시설이나 양식장을 설치했다는 사례까지 보도된 바 있다. 서해를 실효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명분을 미리부터 하나씩 쌓아가면서 해양법협약에서 인정되는 우리의 해양 권익을 약화시키려는 움직임이라고 생각된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남중국해에 9단선을 그은 사례가 연상되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우리 정부도 과거와는 달리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보다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하고 있는데, 우리의 주요 교역로인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유지한다는 차원뿐만 아니라 이 문제가 결국 우리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측면을 감안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중국과의 교류와 우호 협력은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되 우리의 해양 권익과 안보 이익에 대해서만큼은 원칙적인 입장을 분명히 해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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