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부산 산재사망 76%는 ‘50인 미만’ 업체서

문영만 지역노동사회연구소 소장·부경대 교수 2024. 1.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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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만 지역노동사회연구소 소장·부경대 교수

부산에서 산업재해로 매년 7000여 명이 다치고, 100명 가까운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도 부산의 업무상 재해자 수는 7176명이고 이 중 84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재해자 수가 감소하지 않고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2018년 6088명→2020년 6108명→2022년 7176명).

부산 사업체 규모별 재해자 수를 살펴보면, 전체의 73.4%(5266명)와 사망자의 76.2%(64명)가 50인 미만 소기업에서 발생했다. 부산의 업종별 산업재해 사망자수는 ‘기타의 사업’을 제외하고 건설업(26명)이 가장 많고, 부산 건설업 사망자의 73.1%(19명)가 공사금액 ‘50억 미만’ 소규모 업체에서 발생했다.

산업재해의 원인은 노동자들의 안전수칙 미준수 등 개인의 부주의보다는 ‘산업안전보건관리시스템’의 미비 등 구조적 요인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 최근 부산노동권익센터에서 발간한 ‘부산지역 건설노동자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 및 정책 방안(2023, 문영만 외)’에 따르면, ‘안전보건 인력·시설·장비, 작업전 안전점검회의(TBM), 위험요소 발견 시 작업중지권’ 등 산업안전보건관체계와 관련된 7개 항목의 모든 부분에서 공사금액 ‘50억 미만’ 업체가 ‘50억 이상’ 업체보다 현격하게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산업재해 예방의 필수적 요소인 ‘안전보건 인력·시설·장비’를 잘 갖추지 않고 운용한다는 비중의 경우 공사금액 ‘50억 미만(43.4%)’ 업체가 ‘50억 이상(24.9%)’ 업체보다 배 이상 높았다. 이러한 ‘산업안전보건관리시스템의 미구축은 필연적으로 높은 산업재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산업안전보건관리시스템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산업현장의 실태와는 정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2021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5명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을 제외했으며, 50명 미만(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체에 대해서는 3년간 법 적용을 유예했다.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산재예방은 자본의 이익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만으로는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이러한 입법취지를 무시하고 3년간의 유예기간을 주었음에도 준비가 부족하다는 사업주의 일방적인 요구를 받아들여 또 다시 법 적용 유예를 추진했다. 산업재해 사망자의 76.3%가 ‘50인 미만’ 업체에서 발생하고 있는데도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법 적용 배제를 추진한 것은 국가의 기본권인 노동자의 건강 보호의무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 결국 여야의 합의 불발로 지난 27일부터는 50명 미만 사업체에도 법안이 적용되고 있다.


경제학의 비용편익 이론에 따르면, 어떤 행위의 선택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편익과 비용의 크기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즉 산업안전관리시스템 미구축에 따른 편익이 안전관리에 투입되는 비용보다 크다면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은 산재예방시스템 구축에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중소영세 사업주의 입장만을 고려하여 산업재해 위험성이 더 높은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달리 취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반헌법적인 중대재해 범죄의 역사적 공범이 되는 길이다. 오히려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특히, 건설산업 중대재해율 높은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준비가 부족한 ‘50억 미만’ 소규모 사업체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고, 산업안전보건 전문인력 지원 등 산업재해 예방시스템 구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중대재해 비율이 높은 건설업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발주처·원청의 안전보건 책임 강화’, ‘불법 하도급 근절’, ‘최저가 낙찰제 폐지’, ‘적정 공사기간 보장’ 등의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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