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정신’ 지키려 민노총이 던진 돌 기꺼이 맞았다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한석호가 대중에게 각인된 건 작년 3월 윤석열 정부의 상생임금위원회에 전격 참여하면서다. 민노총은 “임금을 삭감하려는 윤 정부의 노동 개악에 명분만 주는 꼴”이라며 사퇴를 요구했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민노총이 던지는 돌멩이를 기꺼이 맞겠다”고 맞선 한석호는, 한 달 뒤 “염치조차 상실한 진보의 외투를 벗겠다”고 선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자신의 발언이 정쟁으로 번질까 우려했다. 다시 연락이 닿은 건 위원회 활동이 끝나가던 지난 연말이다. 한석호는 정부와 민노총 모두에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목이 타는지 그는 커피를 물처럼 들이켰다.
◇민노총이 돌을 던질지라도
-작년 4월엔 거절한 인터뷰를 재고(再考)한 이유가 궁금하다.
“노동의 이중 구조 문제에 보수도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민노총 조직실장을 지낸 인사가 보수 언론과 인터뷰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 배신자로 낙인찍는 그런 낡은 진보의 외투를 벗겠다고 한 것이다. 노동조합 바깥에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과 영세 사업주들에게 국가적 관심이 모여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민노총 비난에 ‘죽을 줄 알면서도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더라.
“내 40년 운동가의 삶이 끝장날 수 있다는 악몽에 시달렸다. 민노총은 내 청춘을 다 바친 조직이다. 그때마다 전태일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했다. 전태일 또한 무엇이라도 했을 것이다.”
-상생임금위원회를 일반 국민은 잘 모른다.
“대기업·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격차, 고용 안정성 격차로 빚어지는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주도로 발족한 위원회다. 민노총은 임금체계 개편이란 명목으로 임금을 하향 평준화하려는 반노동 기구라고 판단해 참여를 거부했다.”
-민노총이 반대하는데 왜 참여했나.
“현재의 노동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노사 갈등뿐 아니라 노노 갈등, 사사 갈등, 노상 갈등, 청장년 갈등, 남녀 갈등까지 얽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방식으로 풀어내려다 갈등만 증폭했다. 정규직 중심 민노총은 ‘기승전-임금 인상’만 외치지 이 문제에 소극적이다. 하청 기업들은 원·하청 고리에 묶여 임금을 더 주고 싶어도 못 준다. 결국 사회적 대타협으로 풀어야 한다.”
-상생임금위는 어떤 결론을 냈나.
“답을 낸다기보단 TF 수준의 논의가 이뤄졌고, 곧 권고문이 나온다. 나는 대통령 직속의 ‘이중 구조 개선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중 구조의 문제는 직무급이냐 호봉급이냐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건 중심부 노동 안에서의 문제가. 주변부 노동과의 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청 업체 노사, 영세 상인, 청년 노동, 장년 노동, 여성 노동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한국판 베버리지 보고서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양극화하는 토끼와 거북이
-이중 구조 문제가 어느 정도 심각한가?
“양대 노총으로 대변되는 조합원들의 소득은 우리 사회 상위 10%, 최소 50% 안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노동자의 절반은 그 바깥에 있다. 하청 노동, 불안정 노동, 영세 소상공인,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1500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하루 8시간 이상 일하면서 연 2만달러(약 2612만원)가 안 되는 임금으로 살아간다. 이들에게 주52시간 근로제, 최저임금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임금의 양극화는 IMF 외환 위기로 시작된 건가..
“IMF 직전부터다. 경제 위기로 대량 해고 사태가 벌어지자 ‘나부터 살고 보자’는 기류가 노동운동 안에 확산됐다. 96, 97년 총파업에 놀란 자본과 기업이 정규직 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하청을 후려치고 비정규직 인건비를 쥐어짰다. 그게 3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중심부 노동의 임금은 토끼뜀을 뛰며 오르고, 주변부 임금은 거북이 걸음을 하며 격차가 벌어졌다.”
-양대 노총은 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나.
“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노조들이 얼마나 반발했나. 집회에서는 비정규직을 철폐하자 외치면서도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당신은 임금 투쟁이 아니라 연대를 외치더라. ‘사회적 임금, 사회적 소득 보전’을 주장한다.
“임금의 하후상박이 필요하다. 고임금 근로자는 임금을 천천히 올리고 저임금 근로자는 두껍게 올리는 것이다.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 사회연대기금도 필요하다. 양대 노총 조합원 250만명이 매달 1만원씩 기금을 모으면 단순 계산해도 연 3000억원이다. 노동계가 먼저 나서면 기업과 정부도 따라올 것이다.”
-민노총 입장은 어떤가?
“정부와 재벌이 책임져야지 왜 우리 임금을 낮춰가며 책임을 져야 하냐고 반발한다. 상위 10~20% 소득을 올리면서도 노동자는 사회의 밑바닥이란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억울하면 정규직 되라’는 말도 나올텐데.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왜곡된 능력주의로 간다면 한국 사회는 아수라장,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이 될 것이다.”
◇하청 노동자 없이 삼성도 현대도 없다
-노동운동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게 언제쯤인가.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투쟁으로 1년 7개월 수감돼 있을 때다. 우리는 더 이상 마르크스 엥겔스가 얘기하던 무산자 계급이 아니었다. 수많은 노동자가 집도 사고 주식도 하고 골프도 치고 해외여행도 다닌다. 노동운동이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는 임금의 양극화, 이중 구조에 있었다.”
-스스로를 실패한 노동운동가라고 했더라.
“고임금 근로자의 처우만 좋아지고 저임금 근로자는 방치되도록 놔둔 책임, 그리고 노동운동을 ‘소득 줄 세우기’로만 접근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득으로 줄을 세웠다니?
“쉰넷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중동 건설 현장에도 다녀온 막노동자였다. 어릴 때 아버지와 시내로 나가면 우뚝 선 건물을 가리키면서 ‘내가 지은 것’이라며 자랑스러워하셨다.”
-노동 그 자체가 지닌 가치를 간과했다는 뜻인가.
“창신동 봉제 공장 미싱사들과 동대문 시장에 가면 자기가 재봉질한 옷을 한눈에 알아보고 뿌듯해한다. 신발 만드는 제화 노동자들도, 대리운전 기사도 마찬가지다. 하청에 영세업이지만 노동의 가치와 보람을 그들도 느낀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일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부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하청 업체들이 없으면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가 글로벌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다. 저임금 노동자들 또한 GDP에 기여하고 실업률을 낮춘다. 우리 사회 밑바닥을 지탱하는 이들의 노동을 인정하고 호명해주는 것에서 대타협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통령이 하청 공단 노동자들의 어깨를 다독이고 격려해주는 모습을 보고 싶다. 기업에 초과 이윤이 나면 원청 노사만 성과급 잔치를 하지 말고 하청 노사와도 나눴으면 좋겠다.”
-청년 노동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더라.
“저출산의 늪엔 소득 불평등이 있다. 상위 10~20% 일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청년들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지만, 나머지 80%, 최저임금 노동을 하는 청년들은 결혼할 엄두를 못 낸다. 노조가 조직된 이들의 임금과 고용 조건을 지키는 데에만 집중하고 몰두해온 탓이다. 노동운동이 노조 밖 현실을 보지 못했다.”
◇전두환, 전태일이 바꾼 인생
-대학 시절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전두환과 전태일, 두 전씨(全氏)가 내 인생을 바꿨다(웃음).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체제 전복주의자였고, 거리에서 투쟁하다 죽을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운동에 반감을 가진 국민이 많다.
“80년대만 해도 많은 국민이 노동운동을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라며 응원해줬다. 요즘은 아직도 노동운동 하냐며 조롱한다. 노동운동의 방향이 변하지 않으면 이중 구조는 더욱 심화되고 국민에게서 완전히 고립될 것이다.”
-10여 년 전부터 노동계에 쓴소리를 해왔다.
“한석호가 민노총에서 언제 쫓겨나느냐가 술자리 안줏거리였다(웃음). 그런데 민노총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아프리카어로 ‘네가 있어 내가 있다’란 뜻의 우분투 재단과 금융산업공익재단 등을 만들어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연대기금을 모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존 보수·진보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했던데.
“윤 대통령이 이중 구조 문제를 화두로 던졌을 때 박수를 쳤다. 취임사에서도 ‘연대’라는 말을 여러 차례 쓰더라. 노동 인권 환경 여성은 더 이상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의제가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하면서 군인의 보수를 민간의 보수로 전환시켰듯, 보수의 새로운 철학을 정립해주면 좋겠다. 아데나워도, 베버리지도, 메르켈도 다 보수주의자였다.”
-당신의 연봉은 얼마인가.
“4천 정도. 상위 50%에는 속한다(웃음).”
-생활이 어려워 수학 학원 보내 달라는 딸의 말을 들어주지 못했다던데.
“노동계 사람들이 알음알음 공부 동냥을 해줘서 대학엔 갔다(웃음).”
-전태일 재단에서는 뭘 하나.
“영세사업장의 노사가 상생할 수 있도록 돕는다. 노동공제 실험 등 자체적으로 복지망을 구축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전태일 정신이 절실한 시대라고 했더라.
“전태일은 재단사, 그러니까 중간 관리자였다. 마음만 먹으면 사장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태일은 위가 아니라 아래를 봤다. 피 토하는 미싱사, 배 곯는 시다에게 버스비로 풀빵을 사서 먹이고 자기는 집까지 걸어서 갔다.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자신을 불살랐다. 나는 보수와 진보가 다 같이 아래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처럼.”
☞한석호
1964년 경북 예천 출생.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재학 시절 학생운동에 입문, 87년 6월 항쟁 때 명동성당 투쟁 동지 위원회를 결성해 투쟁하다 구속됐다. 노태우 정부 때 사면돼 인천에서 현장 노동자 조직 사업에 참여했고,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 민노총 출범 후에는 금속산업연맹 조직실장과 사회연대위원장을 지냈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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