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나폴레옹의 몰락·아이폰의 대성공… ‘마더 머신’이 숨은 공신이었다
최근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 1위 싸움이 치열하다. 애플이 증시 사상 최초로 3조달러를 돌파한 작년, ‘파이낸셜타임스’가 분석 기사를 실었다. 노키아 휴대전화 사용자가 10억명에 다가서며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자 곧 노키아는 사라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 배경으로 공작기계를 통한 애플의 제조 혁신을 꼽았다. 선반이나 밀링으로 대표되는 공작기계는 기계를 만드는 기계라는 의미로 ‘마더 머신(mother machine)’이라고 한다. 흔히 공작기계는 한물간 산업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산업혁명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보듯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제임스 와트는 획기적 증기기관을 고안했지만, 제작이 불가능했다. 당시 기술로는 실린더와 피스톤 간격이 무려 12mm가 넘었기 때문이다.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이래서는 증기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할 수 없이 일단 특허를 내고 기다렸다. 그러던 중 계몽주의 지식인 모임에서 윌킨슨(John Wilkinson)을 알게 되면서 해결 단서를 찾는다. 당시 윌킨슨은 대포의 결함을 극복하는 가공법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때 윌킨슨이 개발한 공작기계가 구멍을 뚫는 ‘보링(boring)’ 머신. 이를 와트의 설계에 적용하자 12mm가 넘던 공차가 2.5mm로 줄면서 1776년 비로소 증기기관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정밀 가공(precision machining)과 공차(tolerance)라는 개념이 시작된다.
증기기관을 탄생시킨 정밀 가공은 곧이어 나타난 천재적 가공 엔지니어 헨리 모즐리(Henry Maudslay)를 통해 더욱 발달한다. 1791년 모즐리는 목재로 만들던 공작기계를 철로 대체해 1797년 정밀 나사산(screw) 가공에 성공한다. 나사산은 공작기계에서 제품과 공구의 이송을 제어하므로 정밀 가공의 핵심이다. 모즐리의 혁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모즐리는 특정 제품의 대량생산에는 범용 장비보다 전용 장비가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중장비 제조에 필수적인 도르래를 금속으로 만드는 전용기를 개발한다. 모즐리의 공작기계는 도르래를 1년에 무려 13만개 가공했고, 생산 인원은 비숙련 노동자 단 열 명이었다.
사이먼 윈체스터는 저서 ‘완벽주의자들(2020)’에서 “영국이 프랑스와 벌인 전쟁을 우위로 끝낸 것은 정밀 공학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영국이 압도적 해군력으로 전쟁을 지배한 배경에는 공작기계를 이용한 함선 건조 능력이 있었다. 게다가 보링 기술로 대포 성능이 월등했다. 산업혁명이 탄생시킨 신형 대포는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하고, 여기서 나폴레옹의 몰락이 시작된다. 세계사에서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는 아편전쟁의 승패를 결정한 것도 네메시스(Nemesis)라는 증기선 단 한 척이었다. 이 배에 장착된 60마력짜리 증기기관 두 대에 청나라가 무너졌다.
1960년대 IT 혁명으로 정밀 가공에 CNC(컴퓨터 수치 제어)가 도입되며 혁신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가공 정밀도가 목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사이버 공간에서 재현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물리적으로 단절된 공작기계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연결되기 시작했다. 가상 공간에 생산 시스템을 만들어 문제점을 미리 파악하고, 위험 요소를 제거하며 생산을 최적화한다. 이를 확장하면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 된다. 공장 전체를 가상 공간에 재현해서 미리 생산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한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의 기가팩토리에 디지털 트윈을 도입하며 전기차 생산을 최적화할 수 있었다.
이 흐름은 제조업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이전까지 CNC 5축 머신은 워낙 고가 장비라 금형이나 시제품에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만약 이들을 양산에 적용한다면 몇 대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수만 대가 투입되어야 한다. 비용도 문제지만 공작기계의 수리 보수 기간을 생각한다면, 매일 기계가 수십 대 작동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미 IT에서는 이런 상황을 경험하고 있었다. 2000년대 이후 급속히 발달한 클라우드 컴퓨팅, 즉 병렬 처리 기술이다. 이 기술과 경험을 CNC 머신을 통한 양산에 결합한 것이 애플 제조 공정이다.
애플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공작기계를 대량으로 이용한 노트북 제조 라인을 구축한다. 초기에 애플은 노트북 생산에 무려 1만대 이상 CNC 머신을 도입하며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금형이 필요하지 않은 CNC 머신의 특성상 제품이 바뀌거나 디자인이 바뀌어도 가공 프로그램만 수정하면 어떤 물건이라도 깎아낸다. 즉 이 생산 라인은 확장이 쉽다. 금세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로 생산 품목이 넓어졌다. 후발 경쟁자들이 서둘러 CNC를 도입하려 했지만 이미 애플이 공작기계를 엄청나게 많이 선점한 뒤라 쉽지 않았고, 밀려난 업체들은 몰락했다.
보링 머신이 탄생시킨 1차 산업혁명은 나폴레옹을 무너뜨렸다. 서구가 과학을 앞세워 동양을 지배하기 시작한 아편전쟁의 승패는 120마력짜리 증기선 한 대가 결정했다. 오늘날 소형차 엔진 한 대의 성능이었지만, 제국이 무너졌다. 정밀 가공이 만들어낸 양산 기술은 포디즘으로 상징되는 2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져 1·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좌우했다. 아마도 이념 대결이라는 냉전의 승패는 1960~70년대의 서구 IT 혁명에서 이미 결정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4차 산업혁명은, 물론 그 실체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것이 마더 머신이 가져올 미래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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