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홋카이도 해저 2000m에 車 20만대분 CO₂가 묻혔다
지난 18일 오후 일본 홋카이도 남서쪽 도마코마이시(市) 해안에 있는 ‘CCS 실증센터’에 들어서니 굵은 파이프가 연결된 약 2m 높이의 회색 기계 두 대가 보였다. 센터 관계자는 “이 기계 아래로 바다 밑 1000~2000m까지 파이프가 이어진다”고 했다. 인근 정유공장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파이프를 타고 CCS 실증센터로 옮겨진 뒤 바닷속 깊이 매장된다. 도마코마이 인근 바다엔 이렇게 모인 이산화탄소 30만t이 묻혀 있다. 승용차(주행거리 1만5000km 기준) 20만대가 1년에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규모다.
‘탄소 중립’으로의 움직임이 가속하면서 미국·일본·호주 등 주요 국가가 탄소 포집·저장(CCS·Carbon Capture and Storage) 사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제철·정유 등 산업 현장에선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탄소를 모아 한곳에 저장하는 CCS 기술은 ‘탄소 제로(0)’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이 때문에 CCS 사업을 두고 친환경 차원에서 ‘쓰레기 매립장’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실증센터를 운영하는 일본CCS(JCCS)의 사와다 요시히로 총괄매니저는 “일본 최초로 이산화탄소가 섞인 부생(副生) 가스 운반부터 포집, 저장까지 한 번에 이뤄지는 유일한 곳”이라고 했다. JCCS는 탄소 매립 외에도 해저에 묻은 이산화탄소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저장한 탄소를 건설 소재나 연료 등 쓸모 있는 물질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탄소 포집·저장에다 활용(Utilization)까지 포괄하는 산업 육성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CCUS법’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일찍이 CCS사업에 뛰어든 일본, 미국, 호주 같은 선진국보다 크게 뒤처진 상황이다. 12년 전부터 가동된 일본 최대의 CCS 시설을 직접 방문해 CCS 사업의 가능성과 숙제 등을 점검해 보았다.
◇자동차 20만대분 이산화탄소, 해저에 매립
CCS 사업은 탄소를 매립할 대규모 공간이 필요하고, 외부로 유출되지 않게 하는 안전성 등의 문제로 ‘님비(NIMBY) 시설’로 취급된다. 꼭 필요하지만,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비용을 계속 투입해야 한다는 특징도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개입과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나카 지로 JCCS 부매니저는 “탄소 포집과 저장은 현재 비용만 발생하는 구조여서 정부의 지원 없이는 시작하기 어렵다”며 “국가가 장기적인 책임 의식을 갖고, 법을 만들고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가능한 사업이지만 미래의 잠재성은 큰 사업”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일찌감치 CCS 기술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2008년 CCS 실증센터 건설·운영에 필요한 전력, 석유 개발, 플랜트엔지니어링 등 여러 분야 민간 회사들이 출자한 JCCS를 설립했고, 2012년부터 300억엔의 건설비를 포함한 모든 운영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보다 먼저 이정도 규모의 CCS사업을 시작한 나라는 노르웨이, 캐나다 정도뿐이다.
이런 지원 속에 JCCS는 2016년부터 이산화탄소 30만t을 해저에 저장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내 최대 규모이고, 2018년 9월 인근에서 진도 6.6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에도 탄소가 누출되지 않아 안전성을 입증했다.
◇미국과 기술 격차 5년… ”국제 협력도 필수”
이달 초 CCUS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산업 육성에 속도가 붙을 예정이다. 수천t급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플랜트를 구축한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국내 탄소 포집·저장은 아직 초보 단계이다. 지난해 7월 기준 전 세계에서 41개의 CCS 프로젝트가 상업 운전 중이지만, 국내에선 일부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포집 실증만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대비 기술 격차가 5년 정도 뒤지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도 국내엔 이를 묻을 땅을 구하기 어려운 것도 난관이다. 전문가들은 국제 협력을 통해 이산화탄소 저장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권이균 공주대 교수(전 K-CCUS 추진단장)는 “CCS는 사실상 시설 투자이기 때문에 초기 인프라 구축과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인 정부 지원을 열심히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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