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태아 산재
A씨는 병원 인공신장실 간호사로 일했다. 그는 2013년 3월 둘째 아이를 임신한 채로 9월까지 6개월 동안 투석액을 혼합하는 업무를 했다. 예산 문제로 기성품 투석액을 쓰지 않고 간호사가 직접 화학약품 등을 혼합해 투석액을 만들었다. A씨는 투석액 혼합 때마다 초산 냄새가 너무 심해 숨 쉬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그해 12월 출산한 아이는 뇌 표면이 손상된 ‘무뇌이랑증’을 진단받았다. 2015년엔 뇌병변 1급 장애진단을, 2017년엔 사지마비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최근 임신 중 유해환경에 노출된 간호사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질환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지난해 ‘태아산재법’ 시행 이후 첫 사례다. 산재 인정은 평가위원회에서 초산 흡입시 뇌 기형을 유발할 수 있는 저산소증이 발생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됐다.
태아 산재 문제는 간호사들이 유독 약품을 다루다 선천성 심장질환 아기를 잇따라 출산한 ‘제주의료원 사건’으로 공론화됐다. 2020년 대법원이 이 병원 간호사 4명에 대해 태아 산재 인정 판결을 한 후 태아산재법이 마련됐다. 공단이 태아 산재를 공식 인정한 것은 A씨 사례가 처음이다.
태아산재법은 임신 중인 노동자가 건강에 해로운 노동 환경에 노출된 탓에 자녀에게 선천성 질병이나 장해가 발생하면, 해당 자녀(건강손상자녀) 또한 산재를 입은 노동자로 보고 보험급여를 지급하도록 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2021년 국회를 통과해 지난해부터 시행됐다. 법 시행 이전에 산재를 신청했어도 소급 적용을 받을 수 있다.
태아산재법 시행 후 6건의 산재 신청이 접수됐다. 이 중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7∼11년 근무하다 선천성 질병을 가진 자녀를 출산한 노동자 3명이 제기한 건도 곧 산재 여부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노동자 배 속 아기의 안전까지 보호하겠다며 만든 게 태아산재법이다. 법을 만들었지만, 법 시행령에 화학적 유해 인자는 17개(1%)로 한정했다. 역학조사 절차도 복잡하고 길다. 그동안 부모가 겪는 고통은 엄청나다.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개선할 게 많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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