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 실적만 급급… 보험사들, 10년 뒤 돌아올 부메랑을 날렸다
생명보험사의 단기납 종신보험과 손해보험사의 무해지 보험 판매가 과열 양상을 빚고 있다. 이 상품들은 10~20년 뒤 본격적인 보험금 지급이 시작되기 때문에 보험료를 낮추는 출혈 경쟁을 해도 단기적으로는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지금 팔린 보험들이 몇 십 년 뒤 보험사에 독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생보사들은 최근 단기납(납부 기간이 10년 이하) 종신보험을 두고 “가입 후 10년이 되면 낸 보험료의 1.3배를 돌려주겠다”며 환급률을 130% 이상으로 앞다퉈 끌어올렸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납입 기간이 통상 5~7년으로 기존 상품보다 짧은 사망보험이다.
단기납 종신보험을 둘러싼 과열 경쟁이 심각해지자 금융 당국이 현장 점검을 통한 개입에 나섰다. 주요 생보사들은 2월에 출시되는 상품부터 환급률을 120%대로 내리겠다며 일단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다.
손보사들은 ‘반값 보험’으로 불리는 무해지 보험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무해지 보험이란 납입 기간(통상 20~30년) 중에 해지할 경우 환급금이 없고, 납입 기간 후 해지하면 50% 정도만 돌려주는 상품이다. 환급금이 적은 대신 보험료가 동일한 보장을 하는 표준형 상품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으로 저렴하다.
업계에 따르면, 작년 4분기(10~12월) 업계 전체의 신규 계약(인보험 기준) 매출 중 무해지 보험의 매출은 911억원으로 47.4%를 차지했다. 1년 전 무해지 보험 매출이 차지했던 비율(21.6%)과 비교하면,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보험사들, 비합리적 ‘해지율’ 가정
단기납 종신보험과 무해지 보험은 보험사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손해가 될 수 있는 상품이다. 그런데도 보험사들은 어떻게 이런 상품을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것일까. 비밀은 해지율에 있다. 해지율은 보험 가입자가 중간에 보험을 해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한 보험 전문가는 “현재 보험사들이 단기 실적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지율을 가정하고 보험 상품을 판매하기 때문”이라며 “생보사들은 해지율을 낮게 가정하는 반면, 손보사들은 높게 가정하는 등 일관되지 않다”고 말했다.
예컨대 단기납 종신보험의 경우 생보사들은 기존 종신보험의 해지율을 적용한다. 종신보험은 사망할 때 보험금을 받기 때문에, 보험료 완납 후 해지율이 다른 보험보다 낮다. 하지만 단기납 종신보험은 가입자들이 완납 후 10년이 지나고 환급금을 받기 위해 바로 해지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종신보험보다 해지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10년 뒤 해지율을 낮게 잡는다면 단기납 종신보험의 수익성은 부풀려지게 되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무해지 보험은 손보사들이 해지율을 높게 가정한다. 나중에 고객들이 계약 해지를 많이 해서 미래에 나갈 보험금 지급액이 매우 적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납기 중 해지율을 해외 통계보다 10배 높게 가정하는 보험사도 있다”고 했다.
◇실적은 지금, 리스크는 미래로?
단기납 종신보험의 경우 10년 뒤 대량 계약 해지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금이 빠져나가 생보사들의 재무 건전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무해지 보험도 납입 기간이 끝나고 보험금 지급이 본격화되면 보험회사에 큰 손실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2040년부터 무해지 보험에서 손실이 나기 시작해 이후 30여 년 동안 100조원 가까운 손해가 누적될 것이라고 추산한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무해지 보험 때문에 1990년대 이후 보험사 5곳이 연쇄 파산했다.
일각에서는 출혈 경쟁이 치열해지는 배경에 CEO(최고경영자)들의 무책임한 경영이 있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CEO의 임기는 기껏해야 3~4년인데, 이런 문제가 불거져 보험사 손실로 드러나는 것은 10여 년 후이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보험사 상품은 7년, 10년 이상 가는 상품들로 구성돼 있는데 최고경영자나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은 단기 평가를 좋게 하려는 유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숫자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규제·감독 활동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사 실적 부풀리기에 악용되는 상품을 규제하거나, 해지율 관련 기준을 엄격하게 잡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경기교육청 “나이스 접속 장애 발생…수능에는 차질 없어”
- 돌아온 손흥민, 130경기-50골 대기록 눈앞에 뒀다
- 김혜경 ‘선거법 위반’ 사건 오늘 선고...검찰은 벌금 300만원 구형
- [속보] 검찰, '티메프 사태' 구영배·류광진·류화현 구속영장 재청구
- 美민주당 한국계 데이브 민, 연방 하원의원 첫 당선
- “비트코인 4억 간다”던 ‘부자아빠’…폭등장에 “욕심 금물” 경고한 이유
- “비트코인 뛰면 강남 아파트도 비싸진다” 부동산 교수가 말하는 이유
- 또 의문사?…우크라전 비판한 러 유명셰프, 호텔서 숨진 채 발견
- 잔디 탓, 날씨 탓 할 수 없다... 최상 조건서 쿠웨이트 맞는 홍명보호
- [더 한장]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