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해지지말자’ 구글도 한국 법원에 졌다…법원, 빅테크에 연이은 철퇴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을 새로 산 당신, 어떤 일을 먼저 하나요? 기본으로 탑재된 구글의 앱마켓 ‘플레이스토어’에 들어가 카카오톡, 네이버 등 국민 앱(애플리케이션)부터 다운로드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아무렇지 않게 진행해왔던 이 과정 뒤에 10년이 넘게 이어진 구글의 ‘갑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최근 한국 법원이 구글의 행태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단호하게요.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지난 24일 서울고등법원 제6-3행정부(부장 홍성욱·황의동·위광하)가 입정한 법정에 간단명료한 주문이 울려퍼졌습니다. 구글LLC·구글코리아·구글 아시아퍼시픽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처분 등 취소소송에서 기각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구글이 졌다’입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면 구글은 구글LLC 2200억, 구글코리아 2200억, 구글아시아퍼시픽 Pte Ltd 1900억원 총합 6400억원 상당의 과징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물론 구글은 제재를 피하기 위해 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 갈 확률이 높습니다.
주문을 읽는 데는 단 1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스토리는 아주 깁니다. 짧게는 재판이 진행 된 2년, 더 길게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구글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2016년부터 7년동안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 구글의 유명한 경영 모토입니다. 테크 기업으로서 이용자의 편의와 관련 산업 육성을 바탕으로 ‘착한 기업’을 키우겠다는 각오죠. 하지만 검색 시장, 스마트폰 운영체제(OS·Operating system), 앱 마켓 등 구글이 주요 사업에서 사실상 독과점 기업으로 군림하면서 구글의 모토는 비꼼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구글이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사의 출현을 막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죠. 한국 법원이 이를 어떻게 판단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판결은 공정위가 2021년 구글에 부과한 과징금에서 시작됐습니다. 공정위는 2016년부터 구글이 기기 제조사에 안드로이드 OS를 강요했다는 의혹을 조사했고 2021년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모바일 OS는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운영체제입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애플의 iOS가 가장 유명하죠. 하드웨어를 제어하고 각종 앱(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는 일종의 소프트웨어 인프라입니다. OS가 없는 스마트폰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깡통’ 기기입니다.
공정위는 구글이 모바일 앱 유통계약(MADA)과 안드로이드 사전접근권 라이선스 계약(ALA‧APSLA)을 체결하면서 기기제조사의 사실상 안드로이드 OS를 강제하는 의무를 부과했다고 판단했습니다.
MADA는 구글의 유명 앱을 사용하기 위해 체결하는 라이선스 계약인데요. 앱 다운로드를 도와주는 플레이스토어, 절대적 지위의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 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맺어야 합니다. 구글은 MADA 체결 조건으로 파편화 금지 계약(AFA) 또는 안드로이드 호환성 약정(ACC)이라는 별도 의무(파편화 금지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구글이 공인한 OS가 아닌 다른 OS를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안드로이드가 탑재된 기기는 물론 앞으로 출시 예정인 기기까지 의무를 지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플레이스토어와 유튜브를 사용할 수 없는 스마트폰, 여러분이라면 구매하시겠나요? 고착화된 스마트폰 사용 패턴을 생각하면 제조사로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파편화 금지 의무를 지킬 수밖에 습니다. 공정위과 법원 모두 이러한 방식의 파편화 금지 의무가 사실상 안드로이드 OS만을 사용하도록 강요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구글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2008년,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정식 공개하고 소스코드를 무료로 공개했습니다. 이를 오픈소스라고 하죠. 2005년 구글이 OS 개발사인 안드로이드를 인수하고 수년간 막대한 금액을 투입해 개발한 것을 감안하면 과감한 결정이었습니다. 덕분에 개발자들은 법적 위험 없이 안드로이드를 기반으로 한 앱을 만들거나 안드로이드를 약간 변형시킨 새로운 OS(포크 OS)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포크OS 난립으로 사용자들이 불편해져 파편화 금지 의무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구글의 주장입니다. 개발자들의 역량이 포크OS 에도 몰리면서 생태계 발전이 더뎌졌다는 것이지요.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풀고 포크 OS 난립을 막으면서 다양한 안드로이드 기반 앱과 서비스가 출시됐고, 제조사들은 OS 개발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아끼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법원은 재판을 하면서 공정위에 기기 제조사들이 제출한 입장을 다각도로 살펴봤습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하드웨어 제조사는 물론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까지 한목소리로 구글의 안드로이드 강요가 문제라고 토로했습니다. 판결문에 나온 제조사들의 호소입니다.
“적어도 7개의 스마트TV OEM 사업자들이 구글에 대한 계약상의 의무 또는 안드로이드 설치가 요구되는 다른 사업에 대한 불이익을 가하는 구글의 보복 행위에 대한 우려로 불가능하다고 언급했습니다”, “현행 파편과 금지 의무는 스마트폰이 아닌 새로운 기기를 개발할 때 특히 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기기별 특성에 맞춰 안드로이드 OS를 수정·변형해 경쟁력 있는 신규 기기를 시장에 출시할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를 바탕으로 구글이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명확한 ‘갑’이라는 뜻이죠. 구글은 또다른 OS 사업자인 애플과의 경쟁 등을 이유로 시장지배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019년을 기준으로 애플을 제외한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97%, 애플을 포함한 시장 점유율은 82%에 달한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또 앱마켓에서도 구글이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OS와 앱 시장은 사실상 연결돼있기 때문에 OS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앱마켓 시장으로 ‘전이’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공개하고 파편화 금지 의무를 규정한 것은 독점 사업자가 되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판단했습니다. 2010년 구글 이사회에서 발표한 내용이 근거가 됐습니다. 자료에는 파편화 금지 의무, MADA 계약 등이 ‘파트너와 경쟁업체가 포크 OS를 개발하고 단독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재판부는 “구글은 이타적인 의도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목적에서 오픈소스 형태로 제공하고 OS를 통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홍보해 이용자들을 유인했다”며 “영향력을 가진 다음 파편화 금지계약을 체결해 포크 OS 출현을 차단하고 경쟁 사업자를 배제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했습니다. 구글이 초기 사업 구상 단계에서부터 시장을 지배할 목적이었다고 본 것입니다. 구글이 불공정 행위로 논란이 될 때마다 강조하는 ‘선한 의도’를 부정하는 셈이죠.
한국 법원의 단호한 판결은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지난 9월부터 미국 법무부와 운명을 건 한판 승부 중입니다. 미국 법무부는 2020년 10월 구글이 반(反) 독점법을 위반했다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미국 검색엔진 시장의 90%를 장악한 구글이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주장입니다.
구글이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에 기본 검색엔진으로 구글을 탑재하고 다른 회사의 제품을 배제하기 위해 스마트폰 제조사와 통신업체 등에 연간 10조원 가량을 지불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구글의 이같은 행위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빙(Bing)과 같은 경쟁 검색엔진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오는 5월 최종 변론이 진행되고 나면 빠르면 연말에 결과가 나올 전망입니다. 구글이 패소할 경우 관련 사업을 매각하거나 기업을 분할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 법원은 구글 외에도 다양한 테크 기업에 견제구를 날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또다른 빅테크 애플도 한방 먹었습니다. 이른바 ‘배터리 게이트’ 사태에 애플이 책임이 있다며 소비자 1인당 7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것이죠.
2017년 1월 애플이 운영체제(iOS) 업데이트를 통해 도입한 성능 조절 기능이 소비자에게 정신적 손해를 입혔다는 판결입니다. 애플은 아이폰 전원이 갑자기 꺼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특정 조건 하에서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성능이 떨어지도록 했습니다.
소비자가 불편할 수 있는 업데이트이기 때문에 애플이 이를 미리 알리고, 업데이트 선택권을 줘야 했다게 법원 판단이었습니다. 배터리 게이트는 전세계에서 문제가 됐는데요, 법원이 직접 애플에 손해배상 책임을 내린 것은 한국이 처음입니다.
법조계와 업계는 한국 법원의 판결이 소비자는 물론 전세계 규제 당국과 법원, 테크 업계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보고있습니다. 전세계를 호령하는 글로벌 빅테크에 한국 법원이 날린 한방,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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