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백언불여일도표

2024. 1. 2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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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국가 경제 성적표서
한국, 35개국 중 2등 '우등상'
前 정권 실정 극복하고 거둔 성과
국민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해
단순 숫자 전달 아닌 시각 정보가
경제 성과 전달에 도움 될 것
복거일 사회평론가·소설가

영국 런던에서 나오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3년부터 ‘올해의 국가(country of the year)’ 상을 수여해 왔다. 해당 연도에 ‘가장 크게 개선된’ 국가에 주는 상이다.

2023년도엔 두 부류의 국가들이 고려됐다. 하나는 이웃 강대국의 협박에 용감히 맞선 약소국들이었다. 유럽에선 러시아의 위협과 공격에 맞선 우크라이나, 몰도바, 핀란드, 스웨덴이었고, 아시아에선 중국의 겁박에 맞선 필리핀과 중국의 영향권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호주와 조약을 맺은 투발루였다. 흐뭇하게도, 중국에 맞서기 위해 관계를 개선한 한국과 일본도 그 속에 들었다.

둘째 부류는 민주주의나 자유주의를 지켜낸 국가들이었다. 브라질, 폴란드 및 그리스가 유력 후보들이었다. 어려운 경제 개혁에 끝내 성공해서 2023년도 ‘부국들의 경제 성적 순위’에서 1위에 오른 그리스가 2023년도 ‘올해의 국가’로 선정됐다.

부국들의 경제 성적 순위는 5개 지표를 써서 35개 부국의 성적을 평가한다. 5개 지표는 근원 물가상승(core inflation), 물가상승 폭(inflation breadth), 국내총생산(GDP), 일자리 및 증권시장 상황이다. 이 중에서 근원 물가상승은 변동이 심한 품목들을 제외해서 근원적 물가상승 압력을 드러낸다. 물가상승 폭은 소비자 물가 산정에 쓰인 품목 가운데 전년보다 2% 이상 오른 품목들의 비율이어서 물가상승 압력의 지속성을 드러낸다.

이 경제 성적 평가에서 한국이 2위를 했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으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인데, 윤석열 정권이 회복의 운동량을 찾아낸 것이다. 아쉽게도, 현 정권은 이 반가운 소식을 활용하지 못했다. 여당에선 반응이 전혀 없었고, 경제 부처도 침묵했다. 결국 윤 대통령 자신이 그 소식을 전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이 크고 신뢰받는 잡지다. 그런 잡지의 평가에서 2위를 했다는 것은 현 정권에 대한 최고의 칭찬이다. 그것도 직전 정권의 실정으로 어려운 처지에서 나라를 되살렸다는 내용을 담았다.

총선거는 본질적으로 정권의 치적에 대한 평가다. 그 평가를 권위 있는 외국 잡지가 가장 바람직한 방식으로 해줬는데, 그런 선물을 대통령의 ‘자화자찬’으로 쓰고 버린 것이다. 왜 국민들에게 자세히 알리지 않는가? 이제 사정이 나아지고 있으니, 조금만 더 함께 애쓰자고 호소하지 않는가?

어차피 총선거에선 ‘정권심판론’이 우세할 터이니, 현 정권의 치적이 논쟁의 중심이 될 것이다. 그때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는 제 몫을 할 수 있다. 이 자료의 좋은 점은 전년과의 대비를 통해 평가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것을 앞뒤로 확대하면 문재인 정권의 실적과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시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든 집값 폭등과 나랏빚의 가파른 증가까지 포함한다면 이 자료는 총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장경제에 어긋나는 법률을 마구 만들고 경제 정책 시행에 필요한 입법을 방해해온 야당의 행태가 문제를 낳은 사례들을 함께 제시하면 효과는 더욱 클 터이다. 지금까지 야당이 일방적으로 나쁜 법률을 통과시키면 여당 의원들은 퇴장으로 대응했다. 그런 법안이 해로운 이유를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호소한 적은 없었다.

여기서 현실적 중요성을 지닌 것은 ‘숫자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숫자는 추상적 기호여서, 우리는 그것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계산해야 한다. 그래서 통계를 나열하면 알아듣기 힘들고 효과도 제한적이다. 반면에 도표는 시각적 정보여서, 우리는 그것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 막대그래프나 추세곡선과 같은 도표로 된 통계는 누구나 한눈에 파악하고 오래 기억한다.

근년의 집값과 나랏빚의 추세를 도표로 보이면 어떻게 될까? 노무현 정권과 문재인 정권에서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한 집값이 출산율 하락의 주요 요인이고 문재인 정권에서 현기증이 날 만큼 가파르게 팽창한 나랏빚이 우리 앞날을 어둡게 만들었다는 사정을 시민들이 스스로 깨우칠 것이다. “아직도 문재인 정권을 탓하냐”는 반론도 나오지 못할 것이다. 백언불여일도표(百言不如一圖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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