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트럼프와 헤일리의 격차

박영준 2024. 1. 2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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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 듣고 싶은 말 하는 트럼프
자신이 하고 싶은 말 하는 헤일리
트럼프, 헤일리 대체 가능하지만
반대는 성립 안 돼… 대세론 계속

압도적이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첫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이 열린 아이오와주의 한 행사장에서 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모습과 그의 지지자들 반응이 그랬다.

이날 트럼프가 모습을 드러내자 지지자들은 열광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슬로건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가 적힌 하얀 모자를 쓰고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올라서는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the USA) 음악에 맞춰 어깨를 흔들고, 한참 동안 무대를 좌우로 오가며 손을 흔들었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연설은 명쾌했다. 그는 “조 바이든은 열을 내며 마가와 싸우겠다고 하는데, 마가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뜻이다. 아주 간단하고, 정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구”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와 싸우고 있다는 공격이다.

바이든을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이라고 공격하고, 경쟁자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가장 인기 없는 주지사였다”고 조롱했다. 2020년 대선이 조작됐다고,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언론들이 헤일리를 띄워 주고 있다고 했다. 국경이 무너졌고, 미국은 약해졌다고 했다.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자신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바이든의 민주당은 아이오와를 버렸지만, 자신에게 아이오와는 최우선이라고 했다. 바이든에 이어 자신을 향하는 고령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연설은 1시간40분 동안이나 이어졌다.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한마디 한마디에 열광했다.

헤일리는 유세장을 압도하지 못했다. 트럼프 행사 한 시간쯤 뒤 열린 유세에서 헤일리는 자신의 이름을 연상케 하는 영화 ‘록키’의 주제가 ‘호랑이의 눈(Eye of the Tiger)’을 배경으로 무대에 올랐지만 장내 분위기는 트럼프의 열기에 한참 못 미쳤다.

헤일리는 경제 문제로 연설을 시작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코로나19 경기 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시절 경험을 살려 정부 지출을 줄이고, 주 정부의 권한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유류세를 없애고, 중산층에 대한 세금을 인하하고, 중소기업 세금을 감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경 문제, 공교육 문제,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고, 참전용사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25분간 이어진 빽빽한 연설 틈틈이 환호가 나왔지만, 행사장 한쪽에 자리 잡은 자원봉사자들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트럼프 지지층을 의식한 탓인지 트럼프를 겨냥한 직접적 공격은 없었다. 에둘러 75세 이상 고령 정치인에 대한 정신 감정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할 때는 유세장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유엔 대사 시절, 테러·독재국가들을 상대했다며 중동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과 이란의 핵무기 문제, 대만해협에 대한 중국의 위협 등에 대한 해결책을 설명할 때는 유세장에 정적이 흘렀다.

현장에서 만난 지지자들 반응에서도 트럼프와 헤일리의 유세만큼 차이가 느껴졌다. 헤일리 지지자들은 하나같이 트럼프가 훌륭했다고 답했다. 트럼프가 싫어서가 아니라 헤일리를 더 좋아해서 유세장에 나왔다고 했다. 한 지지자는 트럼프가 훌륭하지만 사법리스크가 우려돼 헤일리를 지지한다고도 했다.

반대로 트럼프 지지자들은 헤일리가 아닌 트럼프여야만 한다고 했다. 헤일리는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약하다거나, 차기 또는 차차기에나 대통령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일리의 지지자는 트럼프의 지지자이기도 했지만,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았다.

헤일리는 아이오와에 이어 뉴햄프셔에서도 패배하며 후보 중도 사퇴 기로에 놓였다. 현장에서 느낀 트럼프와 헤일리의 가장 큰 격차는 지지자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느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느냐의 차이였다. 같은 이야기를 얼마나 더 쉽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느냐도 차이를 만들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의 겨울 폭풍을 뚫고 미 중부 벌판을 달려온 아이오와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그랬을 것이다. 대선까지 아직 10개월이 남았지만 트럼프 대세론이 좀처럼 식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박영준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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