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같네’ ‘빨리 먹어’…요양병원 간호사의 고백 “병원 아니라 지옥”
상습적으로 욕설하고 반말
친구 부르듯 환자이름 불러
위생 관련 기본적 요청 무시
경상남도의 S요양병원에서 일했던 이세인 간호사(42)는 이곳에서 벌어졌던 환자 학대실태에 대해 어렵게 입을 뗐다. 그의 말에는 환자를 부당하게 대했던 요양병원 직원들에 대한 분노와 현실을 바꾸기 어려웠다는 무력감이 동시에 묻어났다. 이곳에서 2022년까지 근무했던 이 간호사는 요양보호사들이 환자들에게 자행하는 막말과 학대를 참지 못하고 퇴사했다. 당시 충격으로 미국행을 결심했다는 그는 두번 다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고 싶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요양병원 내 의료와 돌봄행위는 폐쇄된 공간에서 이뤄진다. 근무 경력이 오래된 간병인들과 환자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권력구도가 형성된다. 보호받아야 할 환자들은 병원에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매일 학대를 지켜보면서도 현실을 바꿀 수 없었던 요양병원에서의 삶은 악몽과 같았다고 이 간호사는 말했다.
환자들은 대소변을 본 후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는 기본적인 요청조차 무시당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본 이 간호사는 간병인에게 대변을 본 환자의 기저귀를 교체해 것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하는 일이 잦았다. 간호사가 퇴근 할 때까지 환자들은 대변 기저귀를 그대로 찬 채 방치돼 있기도 했다. 여러차례 본 소변이 기저귀에 흡수되면서 흡수제가 하체 곳곳에 하얗게 묻어났다.
지체장애가 있던 환자 박 모씨가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부탁하자 한 요양보호사는 “뭐 잘 했다고 자꾸 얘기하나. 똥 싸도 똥 쌌다 하지 말고 오줌 싸도 오줌 쌌다 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라고 화를 냈다. 이 간호사가 대소변을 본 환자에게 보호사를 불러 주겠다고 하자 경기에 들린듯 손을 내젓는 경우도 있었다. 보호사가 너무 무서웠던 것이다.
고열이 감지된 환자들의 피를 검사하면 요로감염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상당수는 배설물로 오염된 기저귀를 장시간 방치해서 요로 감염으로 이어진 경우였다.
요양병원 종사자들은 신체적 학대 못지 않게 욕설과 막말로 인한 정서적 학대 역시 환자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증언한다. 고령의 장기입원 환자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기능 저하로 인권침해가 일어나도 이를 인지하거나 표현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S병원의 한 요양보호사는 환자가 부탁을 자주 한다며 “저게 아침부터 열 받게 하네”라고 큰 소리로 소리쳤다. 또다른 입원 환자 서 모씨에게는 “진짜 짜증나게 하네”, “거지같네”라며 언어폭력을 상습적으로 반복하기도 했다. 환자들에게 보호사는 “옷 니가 갈아입어라”, “약 빨리 먹어라”라며 반말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환자 이름을 친구 부르듯이 외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아침 식사를 제공하며 “태x이 여기”, “영x이 여기”라는 식으로 반말을 일삼았다. 환자를 ‘저거’라고 부른 경우도 있었다.
세안수건을 나눠줄 때 일부 요양보호사들은 잠자는 환자 얼굴에 세안수건을 툭 떨어뜨리고 가기도 했다. 세안 수건이 거동이 부자유스런 환자의 코 위에 그대로 떨어지면 질식의 위험이 있다.
이 간호사는 “환자를 존중하지 않는 이들이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이라며 “신체적 학대는 눈에 보이지만 언어폭력 같은 정신적 학대는 감조차 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당 병원은 매일경제의 해명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병원은 학대를 저지른 일부 보호사들의 사직서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요양병원에서 발생한 학대 신고 건수는 78건으로 전년(59건) 대비 32%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요양병원 입원 환자 역시 2021년 34만9634명에서 2022년 37만5930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12월 뇌병변 장애를 앓는 환자의 항문에 위생 패드를 집어넣은 요양병원 간병인이 징역 3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간병인들은 요양병원 병실에서 상주하며 의료행위 외 돌봄을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통상 요양병원에서는 간병인이 6인실에서 환자를 공동 간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부 요양병원에서는 환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간병비를 할인하거나 받지 않기도 한다. 그 결과 요양보호사 한명이 수십명을 돌보는 병원도 있다. 간병의 질이 떨어지면서 관리 미흡에 따른 서비스 질 저하, 노인 폭행·학대 등 인권 침해 사례가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좋은 의료진을 만나는 것 만큼 좋은 간병인을 만나는 것이 큰 행운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지난해 말 요양병원 간병지원 대책을 내놓고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인력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실종된 환경에서 일부 인력확중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 는 미지수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요양병원 스스로 노인인권 신고와 예방을 위한 자체 위원회 구성과 활동 등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며 “요양병원을 평가하는 적정성 평가 항목에 환자의 인권보호 항목을 포함하는 등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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