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떠밀린 캐피털사···이달만 1조 빚 갚아

김남균 기자 2024. 1. 2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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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 우려 두달째 회사채 순상환
내달 5조 만기 자금 부담 가중
당국 압박에 부실債 매각도 속도

[서울경제] 이 기사는 2024년 1월 28일 15:49 자본시장 나침반  '시그널(Signal)' 에 표출됐습니다.

금융사가 다수 위치한 서울 여의도 일대 모습. 연합뉴스

국내 캐피털사들이 이달에만 1조 원에 육박하는 회사채를 순상환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 사태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된 신용등급 ‘A+급’ 이하 비우량 캐피털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 빚 상환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금융 당국이 캐피털사를 포함한 여전업권에 고강도 구조조정을 압박함에 따라 이들 업체의 부실채권 매각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2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국내 캐피털사들은 원화 채권 기준 9295억 원어치의 캐피털채를 순상환할 것으로 집계됐다. 캐피털사들은 채권금리가 급락한 지난해 11월 2조 7167억 원어치를 순발행하며 자금의 숨통이 트이는 듯했지만 같은 해 12월 곧바로 7355억 원어치를 순상환한 데 이어 이달까지 두 달 연속 빚 갚기에 치중했다.

딱 1년 전만 해도 ‘연초 효과’ 속에 1월에만 1조 1569억 원어치의 캐피털채가 순발행된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대조된다. 다음 달에 5조 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예정돼 있어 중소 캐피털사의 자금 조달 고심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전성 관리는 캐피털사의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캐피털사들은 그간 사업성이 부족한 PF 사업장에 대해 만기를 계속 연장하는 방식으로 손실 인식을 늦춰왔는데 금융 당국이 이런 사업장 정리뿐 아니라 충당금 확보에도 속도를 내라고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앞서 “2023년 말 결산 시 사업성이 없는 PF 사업장은 예상 손실을 100%로 인식해 충당금을 적립하고 신속히 매각·정리하라”고 당부한 바 있다.

회사채 발행 마른 중소형 캐피탈사···“자금 조달 양극화 심화할 것” [시그널]

비우량 캐피탈사 다수 회사채 순상환

오케이·M캐피탈 등 발행 잔액도 급감

공격적으로 늘린 부동산금융이 발목

은행 계열 캐피탈사 순발행 대조적

“올해 제 2금융 수익성 저하 불가피”

‘애큐온캐피탈·M캐피탈·오케이캐피탈·한국투자캐피탈···.’

이들 캐피털사의 공통점은 올 들어 회사채 순상환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순상환 규모는 애큐온캐피탈 2500억 원을 비롯해 M캐피탈 1650억 원, 한국투자캐피탈 1500억 원 등에 이른다. 대부분 신용등급 ‘A+’ 이하 비우량 캐피털사다. 통상 캐피털 같은 여신전문금융회사는 은행의 예금 같은 수신 기능이 없어 필요 자금의 70% 안팎을 채권 발행으로 조달한다. 발행 채권 잔액이 줄어든다는 것은 사업을 위한 운영자금이 줄어든다는 의미이며 곧 사업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중소 캐피털 업체가 이달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를 차환 발행(새로 발행한 회사채로 기존 회사채를 상환하는 것)하지 않고 빚 갚기에 나서는 것은 그만큼 자금 조달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이들 업체의 자산 건전성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많아졌다. 공모 시장에서는 수요를 모으기 어렵고 사모 시장에서는 높은 금리가 부담이다. 실제 애큐온캐피탈(신용등급 A)은 지난해 12월 27일 170억 원어치의 3년 만기 사모 회사채를 6.8%의 금리로 발행했는데, 이는 당시 동일 만기 민평금리(민간 채권 평가사들이 평가한 기업의 고유 금리)보다 약 70bp(1bp는 0.01%포인트) 높은 수준이었다.

이들 캐피털 업체들은 보유 자산을 매각·유동화하거나 계열사 지원으로 운영자금과 차입금 상환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M캐피탈의 경우 1500억 원 규모의 할부·리스 채권을 유동화해 현금을 확보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오케이캐피탈은 모회사 오케이홀딩스를 비롯한 계열사로부터의 차입금을 크게 늘렸다.

이달 캐피탈채 만기 물량은 총 5조 1590억 원으로, 올 들어 4조 2295억 원이 발행돼 9295억 원(26일 기준)어치 순상환을 기록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지난해 말에 이어 두 달째 순상환 기조가 지속되면서 회사채 발행 잔액도 급감 추세다. 오케이캐피탈의 이달 말 회사채 잔액은 2075억 원으로 1년 전 1조 1254억 원의 18.4%에 그친다. 같은 기간 M캐피탈은 2조 7735억 원에서 1조 9685억 원으로, 애큐온캐피탈은 1조 9555억 원에서 1조 4235억 원으로 줄었다.

반면 은행계 금융그룹이나 대형 산업 계열 자회사로 신용등급 ‘AA-’ 이상의 우량 캐피털사들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이달 들어 우리금융캐피탈과 하나캐피탈은 각각 4100억 원, 3850억 원어치를 순발행했다. KB캐피탈·NH농협캐피탈 등의 회사채 잔액은 1년 전보다 늘었다.

지난 수년간 카드사나 신용등급이 우량한 캐피털사와 경쟁하기 버거운 캐피털사들은 부동산금융으로 사업을 확장해왔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캐피털사의 기업금융 자산 비중은 2015년 말 27.8%에서 지난해 6월 말 36.6%까지 늘었다. 할부·리스 자산 비중(31.7%)을 앞지를 정도였다. PF 대출이 기업금융 자산에 포함되는 만큼 저금리 시기에 좋은 수익원이 됐던 부동산금융은 이제 자산 건전성 위기를 초래하는 골칫거리가 된 셈이다.

특히 중소형 캐피털사일수록 손실 위험성이 큰 브리지론(사업 인가를 받기 전 토지 매입 등을 위한 고금리 단기 대출) 비중이 높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부동산 PF 정리 작업이 본격화되면 저축은행과 마찬가지로 제2금융권의 본격적인 수익성 저하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짚었다.

업계에서는 향후 하위 캐피털사의 신용등급 하향에 따른 자금 조달 여건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신용평가사들은 오케이캐피탈(BBB+)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M캐피탈(A-)은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DB캐피탈(BBB)은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내렸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건전성이 저하된 부동산금융 비중이 높은 캐피털사는 등급 하향 압력이 거셀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태영 사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제한적이라는 것이 확인되면서 은행 계열 캐피털사처럼 신용등급이 우량한 캐피털채에 투자하려는 수요는 오히려 높다”며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캐피털사별로 자금 조달 양극화가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균 기자 south@sedaily.com조윤진 기자 j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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