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시장·기업 대한 불신이 불러” [차 한잔 나누며]

김수미 2024. 1. 2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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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낸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
4300만원→1000억대 ‘슈퍼개미’
‘주주가치 훼손’ 韓 시장에 일침
“터널링·물적분할 등 관행, 문제
합법적으로 주주 권리 빼앗아
‘투자 자랑스런 나라’ 일조하고파”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결국은 우리 자본시장과 기업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주식농부’ 박영옥(64) 스마트인컴 대표는 최근 국내 증시 하락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s)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주식은 어려울 때 투자해야 돈을 번다”고 강조했다.
‘주식농부’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항상 낮은 자세로 감사하며 사는 것이 좌우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박 대표는 회사에 다니며 모은 종잣돈 4300만원을 주식에 투자해 1000억원대 이상으로 불린 개미투자자의 신화로 잘 알려졌다. 농사를 짓는 마음으로 투자한다는 그의 철학 때문에 ‘주식농부’로 불린다. 그동안 개미투자자들을 위해 투자 원칙과 철학, 주주행동주의를 설파하고 다녔던 그가 최근 책 ‘주주 권리가 없는 나라’(김규식 공저·센시오)를 펴냈다. 책에서 그는 “한국 주식시장은 합법적으로 주주 권리를 빼앗는 나라”라며 한국 주식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날카롭게 짚었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스마트인컴 사무실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순자산가치 대비 주가를 뜻하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대만은 2.2배, 미국 4.45배인데 비해 우리나라에는 1배 미만으로 낮은 기업이 많은 것에 대해 그는 “100만원짜리 돈통에 매년 10만원씩 들어온다면 돈통의 가치는 100만원이 넘어야 하는데 우리는 20만원, 30만원에 거래되는 기업이 많다는 것”이라며 “투자를 해도 주주가 비례적 이익을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 투자자조차 지배주주나 경영진이 그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인식하고, 회사를 견제·감시해야 할 이사회는 대주주의 이익만 대변하며, 법과 제도도 투자자의 권익을 보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주요 요소로 지배주주의 배임·횡령·터널링(상장사의 이익을 내부거래를 통해 지배주주가 소유한 비상장사에 이전하는 수법)과 물적분할 관행 등을 꼽았다.

박 대표는 “미국의 알파벳은 구글, 유튜브 같은 알짜회사를 갖고 있지만 알파벳만 상장했는데, 우리나라는 지주사가 자회사를 물적분할해 모자 동시 상장을 한다”면서 “배터리 보고 투자한 회사가 배터리 부문을 물적분할해서 모회사를 껍데기로 남겨놓는다. 증권시장을 자금조달 창구로만 이용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기업에 투자하지 않고 부동산이나 해외 시장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박 대표는 최근 정부가 대주주 양도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주주환원 정책들을 추진하는 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했다. 그는 “일본도 아베 정권이 기업 거버넌스를 개선하고 자본 효율성을 높이면서 ‘재팬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3년간 12% 성장했다”면서 “정부가 자본시장을 이해하고 대책을 내놨으니 투자심리만 회복되면 국내 주식도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100% 국내 기업에만 투자한다. 현재 150개 기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 중에는 그의 표현대로 10년 이상 ‘동행’한 기업들도 있다.
박 대표는 ‘투자한 기업은 내 회사’라고 생각하며 회사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2022년 삼성물산과 KT&G에 주주서한을 통해 주가 관리를 위한 자사주 소각을 요청해 관철했고, 지난해 농심홀딩스 주주총회에서는 액면분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신동원 당시 농심 회장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17년간 투자한 회사에 내부거래가 의심돼 회계장부 열람을 신청했다가 ‘주가조작범’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면서 “참 씁쓸했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나. 내 소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와 장시간 인터뷰를 하면서 기자는 세 번 놀랐다. 생각보다 소박한 그의 사무실과 낡은 가죽지갑, 그 지갑에 간직하고 있는 사진 속 어머니 이야기를 하다 목이 멘 그의 모습은 ‘슈퍼개미 투자자’가 아닌 선한 농부 같았다.

박 대표는 “주식시장은 상생의 장이자 중서민에게는 희망의 사다리”라고 말한다. 일곱 살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자라며 중학교도 못 갈 뻔했던 그를 천억원대 자산가로 만들어 준 것도 주식이다. 박 대표는 “주식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의 터전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주식 투자가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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