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안 잡는’ 노동청…‘부실 조사’ 탓 97% 떼인 미용사

조해람 기자 2024. 1. 2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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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증거에도 조사 안 해
체불 인정 3년, 소멸시효 지나
1410만원 중 47만원만 받게 돼
A씨 “조사 의지 없다는 느낌”

한 노동자가 임금체불을 신고했다. 체불을 인정받기까지 진정만 세 차례, 3년이 걸렸다. 하지만 떼인 임금의 97%(약 1360만원)는 끝내 돌려받지 못했다. 노동청의 ‘불성실 조사’가 길어진 탓에 임금채권 대부분이 소멸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임금체불 엄단’을 말하지만, 현장에서 노동자가 임금체불을 인정받기란 여전히 ‘산 넘어 산’이다. 지난해 임금체불액은 1조7845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연은 2020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9년 9월부터 한 소규모 미용실에서 일한 미용사 A씨(38)는 사장의 직장 내 성희롱으로 2020년 10월 퇴사했다. 성희롱이 직접적 계기였지만 그 밖의 노동조건도 심각했다. 사장은 교육비 명목으로 50만원, 식비 명목으로 30만원을 매달 공제했다. A씨는 110만~140만원의 월급만 받았다.

A씨는 퇴직 후 곧바로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에 미지급 임금 1410만원, 퇴직금 220만원을 체불당했다고 1차 진정을 넣었다. 2021년 2월 마무리된 첫 진정에서는 퇴직금 미지급만 인정되고 임금체불은 인정되지 않았다. A씨가 실제로 일한 노동시간(오전 9시40분~오후 8시)과 근로계약서상 노동시간(낮 12시~오후 6시)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첫 진정에서 “사장이 낮은 임금에 맞춰 노동시간을 사실과 다르게 적은 것”이라고 진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된 퇴직금 미지급도 사업주가 A씨에게 곧바로 퇴직금을 입금해 기소유예로 끝났다.

A씨는 노동시간을 입증할 자료를 수집하고 노무사를 선임해 2023년 8월 2차 진정(재진정)을 넣었다. A씨가 35장에 달하는 새 증거를 들고 갔지만, 재진정을 담당한 B 근로감독관은 ‘일사부재리’ 원칙에 반한다며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B 감독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일사부재리란 ‘법원 판결이 확정되거나 형사처벌이 마무리되면 같은 사안을 다시 심리·재판하지 않는다’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A씨의 재진정 사건을 수사지휘한 검사도 “기소유예된 것은 ‘공소권 없음’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휘를 내렸다. 하지만 B 감독관은 3개월 동안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고 A씨의 재진정을 각하(사건을 구성할 요건이 되지 않아 조사하지 않겠다는 것)했다.

A씨와 노무사는 B 감독관의 ‘일사부재리’ 주장에 오류가 있다며 3차 진정을 넣었다. 임금체불과 일부 미지급된 퇴직금에 더해 최저임금법 위반까지 함께 진정했다. 3차 조사에서야 노동청은 A씨의 임금체불을 인정했다. 노동청은 B 감독관에게 ‘주의’ 조치를 내리고, 소속 근로감독관 전체를 대상으로 직무교육을 했다. 하지만 정작 A씨가 돌려받은 임금체불액은 최초 진정 액수의 약 3.3%인 47만원에 불과했다. 2차 진정이 길어진 탓에 3차 진정을 시작했을 때는 3개월치 임금을 제외하고는 임금채권이 소멸됐다.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다.

노무사가 급히 내용증명을 보내 소멸시효를 일시적으로 중단시켰지만, 3차 진정에서 다양한 쟁점을 다룰 시간은 부족했다. A씨 측은 기간 내에 소액이라도 임금체불을 인정받기 위해 ‘월 80만원’ 교육비·식비 공제 문제 등을 충분히 다투지 못했다. 민사소송 역시 비싼 소송비용 등을 고려해 ‘울며 겨자 먹기’로 포기해야 했다.

A씨는 28일 “(1·2차) 조사 과정에서 내 의견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재조사 때 ‘실익이 없다’는 답변을 들은 것이 가장 황당했다. 조사 의지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정부가 ‘법과 원칙’ ‘노사 법치주의’를 강조한다면 임금체불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를 대리한 하은성 샛별노무사사무소 노무사는 “악순환을 막으려면 임금체불 사건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해야 한다”며 “정부는 공허한 대책을 발표하기보다 일선 근로감독관들이 제대로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지부터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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