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천 칼럼] 돈의 분열증, 부동산과 금융의 공생

기자 2024. 1. 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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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순리대로 돌아야 인간을 위한 돈이 된다. 그러나 정작 돈의 생각은 다르다. 자기가 경제와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굽신굽신해야 다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 돈은 어떻게 돌고 있을까?

돈은 유동성이 최고인 재산 중의 재산이며 모든 여타 재산에 대한 일반적 등가권(title)이다. 생산적으로 투자되면 유용한 가치를 창출할뿐더러 일자리와 임금소득을 보장한다. 화폐-생산-노동-임금으로 이어지는 생산적 화폐순환 또는 소득경제 순환이 일어난다.

생산적 투자의 위험부담이 싫을 경우 돈은 본성상 자산적 투자로 흐른다. 물론 그 고삐를 풀어주는 제도적 조건이 따라야 한다. 인간의 살림살이에 유용한 필요 물자의 조달이라는 책임에서 해방되어 교환가치증식에 몰두하는 화폐-자산-화폐의 순환 또는 화폐-화폐의 순환(채권자-채무자)이 발전한다. 자산시장이 팽창하고 불로소득 잔치판이 벌어지는 가운데 부가가치생산과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하는 실질경제 순환은 쪼그라든다. 안정적 일자리와 임금소득은 옛날이야기로 밀려난다.

자산적 축적에 특유한 거시경제동학과 함께 자산불평등이 확대된다. 일반 대중의 삶과 심성도 자산경제 돈잔치판과 투자자 욕망에 흽쓸린다. 너도나도 내 집의 주인은 물론 워너비 건물주가 되고 싶어한다. 이로써 불로소득자본주의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데 이것이 피케티가 놓친 21세기 자본체제의 지배적 모양새다. 자산경제 동전의 뒷면에 있는 것은 부채의 폭증이다. 가계부채와 자산투자기업 특히 부동산개발기업의 부채(부동산PF대출)가 그 선두를 달린다. 화폐창조권을 사유화한 은행과 각종 금융기관들이 자산·부채경제의 공모자로 변질해 그 흥망, 자산인플레와 이어지는 부채디플레, 고물가·고금리·경기침체와 운명을 같이한다.

자본주의라면 어디든 법적 소유권보장체제가 돈의 정신분열증을 떠받친다. 인간의 살림살이는 그 분열증을 원천적으로 피할 도리는 없다. 그럼에도 공공적, 제도적 조절양식 여하에 따라 병증은 상당 정도 치유될 수 있다. 돈 권력의 본성 대 사회공공성 논리 간의 이중운동에 따라 축적체제 양상은 큰 역사적, 국민적 다양성을 보인다. 해방적 나우토피아를 만들 수도 있다. 이는 법적 소유권이 돈의 방종적 축적놀이와 불로소득청구권을 보장한다 해도 그 지배권의 현실적, 시공간적 실현과정은 사회세력 간의 치열한 투쟁의 장이 되고 정치적, 정책적 쟁투와 제도화를 통과해야 함을 말해준다. 돈의 민주화 길도 그만큼 복잡하다.

폴라니는 토지, 화폐, 노동을 사회의 본원적 공동자산(사회의 실체!)으로 보고 시장사회가 이를 허구적 상품으로 포섭해 사회의 실체적 경제와 생태적 균형을 파괴한다고 갈파했다. 이 놀라운 통찰에 우리의 축적체제론을 더하면 돈의 분열적 축적 길과 이에 종속된 인간의 살림살이 운명은 부동산과 금융의 조절양식, 양자의 접합방식에 크게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다. 부동산시장은 그 자체 자산적 축적의 큰 소굴이다. 하지만 부동산 및 금융시장 양쪽 모두의 탈규제와 상호의존적 공생, 그에 따른 부동산의 금융화를 통해 자산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판도라 상자가 열린다. 한국에서 결정적으로 이 뚜껑이 열린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다.

민주 대 반민주 대립이 널리 통용되고 진영정치 기준도 되지만 부동산과 금융의 통제고삐 여하라는 시각으로 보면 다른 인식이 가능하다. 이 시각이 갖는 함축은 의미심장하다. 왜 한국경제가 개발주의에서 불로소득주의로 압축전환했는지, 왜 우리가 민주화의 역설에 빠졌는지를 밝히는 중요한 열쇠다. 박정희 시대에 오늘의 부동산공화국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고 말하지만 어폐가 있다. 박정희식 개발주의는 산업경제를 위한 금융통제를 시행해 부동산과 금융의 사이 좋은 공생의 길을 막았고 금융의 주요 물줄기는 부동산투자로 흐르지 못했다.

외환위기 이후 다시 박근혜 정부 때 빚내서 집 사라로 대표되는 줄푸세정책이 자산경제 물길을 새 단계로 올려놓았다. 윤석열 정부는 묻지마 줄푸세 2.0정부다. 미국 바이든의 정책(확장재정, 부자증세, 친노동, 학자금부채탕감)의 절반만 해도 정권도 살고 나라살림과 민생도 숨이 좀 트일 텐데 시대착오적 역주행으로 나라살림은 엉망이고 민생은 벼랑 끝에 몰렸다. 숨막히는 긴축재정 기조에도 세수부족이 엄청 심각한데 눈앞 선거라고 또 감세폭탄을 던진다. 심지어 안전진단 없는 재건축이라니(1·10대책). 안전판 없는 윤석열리스크, 매우 불안하고 위험하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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