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방심위 직원들을 응원한다

홍진수 기자 2024. 1.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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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라는 민간독립기구가 있다. 홈페이지에 나온 설치 목적은 ‘방송 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에서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정보통신의 올바른 이용환경 조성’이다. 방송 관계자 외에 이런 기구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름이 비슷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구분을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방통위가 2020년 11월 두 기관을 혼동하지 말라고 자료를 낸 적도 있을 정도다.

이렇듯 존재감이 없던 방심위가 지난해 가을부터 무서운 기세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요즘은 대통령 직속 중앙행정기관인 방통위보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이 더 많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역할이 가장 컸다.

지난달 25일 뉴스타파는 류 위원장의 ‘청부 민원’ 의혹을 보도했다. 그간 방심위 직원들과 부지런한 미디어 담당 기자들 사이에 돌던 ‘소문’이 처음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의혹은 명료했다. 류 위원장이 자신의 가족과 평소 알고 지낸 이들을 동원해 일부 방송사 뉴스를 심의해달라고 방심위에 민원을 넣도록 한 뒤, 본인이 직접 이를 심의해 과징금 등 중징계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대상은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파일 보도’를 인용해 보도한 방송사였다. 권익위에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류 위원장의 행위는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을 넘어 방심위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일이다.

류 위원장의 대응은 상식 밖이었다. 경향신문을 비롯한 언론의 해명 요구에 며칠간 답하지 않다가 갑자기 ‘민원인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제기했다. 방심위 내부에서부터 문제가 됐고, 언론이 보도한 의혹을 아예 없는 일처럼 취급하며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 류 위원장 주장으로는 ‘개인정보 유출자’, 그러나 누가 봐도 ‘공익제보자’인 직원을 색출하겠다며 검찰에 수사도 의뢰했다. 그리고 청부 민원 논란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야권 추천 김유진·옥시찬 방심위원의 해촉을 밀어붙였다.

의혹이 제기되고 한 달 가까이 흐른 지난 21일자 한겨레 보도에서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해명했는데 다음날인 22일 방심위 노조는 류 위원장이 당시 해당 사실을 보고받았다며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다행히 류 위원장과 일부 위원, 간부를 제외하면 방심위 자체는 아주 건강한 조직으로 보인다. 방심위 직원들은 지난해 가을부터 끊임없이 류 위원장에게 내부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방심위를 취재하는 경향신문 강한들 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그 시작은 지난해 9월 방심위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었다. 작성자는 아무런 논의 없이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만든 류 위원장에게 항의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방심위 사무처 팀장 27명 중 11명이 실명과 서명 날인까지 남긴 의견서를 온라인 게시판에 올렸다. 방심위가 ‘통신심의’에서 그간 한번도 다루지 않았던 인터넷 언론사 심의를 하겠다고 나서자 ‘위원회 내·외부의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입법적 보완과 심의 기준이 마련된 후 시행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였다. 팀장들이 ‘단체행동’에 나선 것은 2008년 방심위 출범 이후 처음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 소속 직원 4명 전원이 방심위 고충처리위원회에 고충을 제출했다. 표면적으로는 ‘원부서로 보내달라’는 요구였는데 실상은 류 위원장 체제에서 일어나는 무리한 ‘가짜뉴스 심의’와 가짜뉴스센터 운영에 대한 항의였다.

고충처리위를 통해서도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자 방심위 직원들은 더 단결했다. 지난해 11월14일 방심위 평직원 200여명 중 150명이 ‘연대 서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흐름이 지난달 익명 제보자의 청부 민원 권익위 신고로 이어졌다. 지난 12일엔 방심위 직원 149명이 권익위에 실명 신고서를 다시 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방심위가 ‘정상적’으로 방심위의 일을 하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처음 게시판에 글을 올린 탁동삼 방심위 디지털성범죄심의국 확산방지팀장은 지난 22일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직업인으로서 나 자신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직원들의 단체행동이) 그 정도 의미로 기억이 됐으면 좋겠다.”

부끄러움을 일깨워주기 위해 일상을 걸고 나선 이들을 응원한다.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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