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만에 자수한 日 테러범... 말기암에 “본명으로 죽고 싶소”
지난 25일 일본 가나가와현의 병원에서 말기 위암 환자가 병실 간호사에게 말했다. “내가 기리시마 사토시(70)요. 죽을 때는 본명(本名)으로 죽고 싶소. 경찰에 알려주시오.” ‘기리시마 사토시’는 1975년 4월 도쿄 긴자에 있던 ‘한국산업경제연구소’ 출입문에 사제 폭탄을 설치해 폭파한 사건의 핵심 용의자로 급진 좌파 무장 조직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의 일원이었다. 49년째 경찰에 쫓기던 일본 최장기 수배자 중 한 명이었다. 갑작스러운 자수 소식에 경찰이 병원으로 긴급 출동했다.
경찰은 “신장 160㎝를 포함해 신체적 특징이 일치하고, 진술에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있어 본인일 가능성이 크다”며 “범죄 당시 용의자 지문이 없기 때문에 그의 친척에게 유전자(DNA)를 제공받아 신원을 확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남성이 기리시마가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49년 동안 중단됐던 기소 절차가 재개돼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17년간 수사망을 피했던 미국의 연쇄 테러범 유나바머(Unabomber·본명 시어도어 카진스키)보다 훨씬 오랫동안 잠행한 테러리스트가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수한 것이다.
일본 언론은 장발에 뿔테 안경을 쓴 그의 젊은 시절 사진과 함께 검거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경찰은 “단독으로 50년 가까이 도주 생활을 이어갈 수는 없다”며 “도피에 협조한 인물이 없는지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중간중간 의식을 잃을 정도로 상태가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4년에 태어난 기리시마는 메이지가쿠인대 재학 중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에 가입해 조직원으로 활동했다. 이 단체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 지배를 도운 전범(戰犯) 기업을 응징해 대가를 치르도록 한다”는 행동 강령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1974~75년 미쓰비시중공업·미쓰이물산 등의 본사와 공장을 표적으로 테러를 벌였다. 기리시마가 범행 표적으로 삼은 한국산업경제연구소는 한일 국교정상화 이듬해인 1966년 일본 생산성본부의 산하기관으로 설립됐다. 한국의 산업 및 노동 관계에 대한 정보 제공,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 촉진과 기업인 방한 지원 등이 주 업무였다.
기리시마는 이 기관이 자기들이 대상으로 삼은 ‘전범 기업’에 한국 관련 정보를 넘겨주는 거점이라고 보고 1975년 4월 도쿄 긴자 사무실 출입문에 사제 폭탄을 설치해 폭파했다. 사건은 한밤중에 발생해 사망자나 부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테러를 주도한 7명은 1975년 모두 검거됐지만, 기리시마만 종적이 묘연했다. 테러 직후인 1975년 5월에 도쿄의 시부야구에 있는 한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한 게 확인된 마지막 행적이었고, 히로시마현의 친가에 전화해 아버지에게 “여자 친구와 같이 있다”고 알린 뒤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49년째 수배 상태였던 그의 사진이 부착된 포스터는 지금도 철도역과 파출소 등에 붙어 있다. 그가 반세기 가까이 수사망을 피할 수 있었던 데는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허술한 일본의 행정 시스템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주민등록증과 같은 필수 신분증이 없는 데다, 지문 등록도 의무가 아니다. 보통 운전면허증이나 의료보험증으로 신분을 증명하는데 지방은 여전히 행정 전산망이 미비하다. 이런 빈틈을 이용해 가명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기리시마가 ‘우치다 히로시’라는 가명으로,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의 목조건물 2층에서 혼자 수십 년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며” “가명으로 지역의 한 토목 회사에 입사해 20여 년간 근무해 생계를 유지했으며, 이웃들은 말수가 적고 교류가 없는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그가 어떻게 신분을 속여 수사망을 피했는지 구체적 수법을 조사하고 있다.
일본에선 지명 수배범이 수십 년간 행방이 묘연하다 뒤늦게 잡히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1970년대 폭동을 일으킨 극좌파 조직원 오사카 마사아키(74)는 46년간 도주하다가 2017년에야 체포됐다. 역시 극좌파인 일본적군파 여성 조직원으로 ‘테러의 여왕’이라 불리던 시게노부 후사코(78)도 25년간 해외 도피하다가 2000년 검거됐다. 지하철역 독가스 살포 사건으로 지명 수배된 신흥종교단체 옴진리교 간부 히라타 마코토(58)는 17년간 도주 생활 끝에 2012년 경찰에 출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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