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코로나19 시대, 기억하고 남길 것들
최근 독감에 걸렸다. 약을 먹고 증상은 괜찮아졌지만 타인에게 전파될 위험이 있으니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이후 요새는 마스크 없이 지내왔기에 오랜만에 착용한 마스크에 낯섦을 느끼면서도 묘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것이 당연했던 게 아직도 생생한데, 고작 몇 개월 만에 낯선 기분을 느끼다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지난해 5월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 선포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그에 발맞춰 5월11일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선언을 하고 대부분의 방역조치를 해제했다. 그렇게 2020년 1월19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 3년4개월간 이어졌던 코로나19 비상사태는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그리고 2024년 올해는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 맞이하는 첫해이다.
다만 정부의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선언은 바이러스가 완전히 박멸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도 주변에서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온다. 바로 얼마 전에도 지인과의 약속이 코로나19 확진으로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으로서의 코로나19 위기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서랍 속에 넣어두고 잊었던 마스크처럼 지난 3년여의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지금 대부분 해제된 방역조치처럼 일상생활에서 체감되는 일들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던 코로나19 통계도 그러하다. 2023년 8월31일 코로나19가 4급 감염병으로 조정됨에 따라 더 이상 공식적인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때까지 집계된 코로나19로 인한 공식 사망자는 약 3만6000명이다.
3만6000명, 숫자만 봐서는 실감조차 나지 않는 이들이 그렇게 지난 3년4개월간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이러한 숫자 아래에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2020년 2월20일 국내 첫 사망자가 발생한 청도 대남병원은 장애·요양시설에 격리된 이들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3번의 검사를 받으면서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정유엽을 애도하며 유가족과 시민들은 공공의료가 부재한 사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2020년 5월 쿠팡 물류센터에서 총 152명의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계약직, 일용직 노동자들이 사망한 일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이렇게 떠나간 이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추모는 없었고, 탈시설, 공공의료 확충, 차별 해소, 일터에서의 권리 보장 등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조치들은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것은 유가족 등 피해자들의 몫으로만 남았다. 지난 4일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로 숨진 수용자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은 그 한 예이다. “저희 가족이 겪은 무력함과 억울함이 절대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라는 유가족의 호소문은 숫자로만 기록되거나 기록조차 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의 삶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바꾸어내야 하는지를 호소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계속해서 나온 말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바이러스 유행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위기를 맞아 모두가 직시해야 했던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과 같은 여러 위기 앞에서 근본적인 사회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면에서 비록 팬데믹은 종식되었지만 코로나19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코로나19가 남긴 질문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만들어갈 것인지는 남겨진 우리의 몫이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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