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의 손길] 재난을 대하는 권력의 예의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권력은 시민 삶에 별 관심이 없고
재난 앞에서 최소한 예의도 없다
그렇게 고통받는 이들은
냉랭한 체감온도 속 뒤로 남겨진다
우리나라에서 큰 ‘사회적’ 재난이 일어나면 반복되는 일이 있다. ‘진상을 규명하라’는 끊임없는 요구와 이에 대한 권력의 외면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런 요구는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이어진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이태원 참사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이 일으키는 재난에 대해선 그 책임을 온전히 인간에게 지울 수 없다. 다만 좋은 국가일수록 이런 자연재난에 맞서는 인간이 자기 책임을 다하였는지를 면밀하게 따지고 책임을 묻는다.
자연재난과 달리 ‘사회적’ 재난은 그 책임이 온전히 인간에게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이태원 참사에서 자연은 그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우리 인간이 평소에 혹은 특정한 시기에 필요한 대책을 소홀히 해서 생겨난 비극이다. 그렇기에 이런 재난에서 제대로 책임을 지는 이가 없다는 건 그 국가가 혹은 권력이 그만큼 부패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관련해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재난을 연구하는 존 머터 교수는 <재난 불평등>(2020)에서 이렇게 쓴다. 대규모 재난이 일어난 국가에서 “권력자들은 가식적 모습을 보여야 하는 선거 시기를 제외하면 시민의 삶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권력자들도 시민의 삶에 대한 자신들의 무관심이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기존 체계로는 재난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지는 이유다. 하지만 진상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권력이 이런 특별법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다. 세월호 참사 특별법에 이어 이태원 참사 특별법마저 원안과는 전혀 다른 ‘누더기’가 되었다는 오명을 쓰는 이유다.
실제 이번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정부와 여당의 요구와 입장을 상당히 수용하였다. 첫째, 특별검사 요구권 삭제. 둘째, 활동 기간 축소(18개월에서 15개월). 셋째, 피해자 범위를 희생자의 배우자·직계존비속·형제자매로 축소. 넷째, 조사위원에 대한 국회의 직접 추천권 명기. 다섯째, 청문회에 불출석하는 증인 등에 대한 동행명령권 삭제. 여섯째, 조사 불응·허위자료 제출·동행명령 불응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과태료로 변경.
세월호 특조위와 비교해보면, 유가족이 조사위원을 추천할 권리가 사라진 부분이 눈에 띈다. 이번 특별법에 따르면, 특별조사위원 11인에 대해 여당과 야당이 각 4인, 국회의장이 3인의 추천권을 갖는다. ‘편향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여당이 유가족 추천권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위해 이마저 수용했다.
그럼에도 여당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여야가 합의하지 못했다며 지난 9일에 있었던 국회 표결에 불참했다. 이제 이 법안의 운명은 대통령의 거부권에 달려 있다. 이에 지난 23일, 유가족과 시민들은 특별법이 시행되길 바라며 서울광장에 설치된 159개의 영정을 향해 밤새 1만5900배의 절을 올렸다. 이날 체감온도는 영하 21도까지 떨어졌다.
같은 날, 충남 서천특화시장에선 이날의 체감온도처럼 막막한 일이 벌어졌다. 22일 밤 시작된 불길이 점포 227개를 태운 뒤 23일 오전이 되어서야 진화됐다. 이날 오후 화재 현장을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의 수장인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찾았다. 피해를 본 상인들은 이들의 방문에 빨리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에 차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두 권력자의 관심도, 언론의 관심도, 대다수 평범한 이들의 관심도 서천시장에서 재난을 입은 상인들이 아니었다. 모든 관심은 지난 며칠 사이 두 권력자 간에 갑자기 불거진 권력다툼에 집중돼버렸다. 한동훈 위원장이 90도로 고개 숙여 윤 대통령을 맞은 이야기, 윤 대통령이 어깨를 툭 치며 악수를 청한 이야기,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과 특검 시절 입었던 점퍼 이야기, 그리고 두 사람이 대통령 전용열차로 함께 상경한 이야기 속에 재난에 고통받는 이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묻혀버렸다. 급히 다툼을 봉합한 두 권력자가 재난 현장에 함께 머무른 시간은 20분 남짓이었다.
결국 두 권력자의 행보는 재난을 바라보는 현재 권력의 시선이 어떠한지 알려준다. 더 암담한 이유는 “선거 시기”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권력이 “시민의 삶에 별 관심이 없다”는 데 있다. 이제 그 무심함이 재난 앞에서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킬 필요가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렇게 고통받는 이들은 얼어붙는 체감온도 속에 뒤로 남겨진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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